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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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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가만히 누워 생(生)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가 아니라, 나는 어디서 왔을까, 왜 왔을까, 정말 이유가 있어서 왔을까, 사실 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이 모든 것이 무용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 불현듯 서럽고 무서워지면서, 계속 이렇게 불안한 상태로 사느니 차라리 빨리 죽어 끝을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진다. 산다는 건 참 그렇다. 불안과 삶은 뗄 수 없는 관계여서, 사람은 늘 불안을 삼키고 살아가는 듯 하다. 나는 언제 죽게될까, 어떻게 죽게 될까, 어떤 사람으로 살게 될까, 그 삶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죽을 때는 많이 아플까. 그런 기우들은 불안에서 파생되어 나와 때로 삶을 잠식한다. 너무 깊게 빠져들면 의미라곤 없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순간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참 쉽지가 않다.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는 사실 <리모노프>보다도 빨리 읽었다. 자살을 시도하던 백인 교수와 얼떨결에 그를 구한 흑인 목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극 형식으로 다루고 있는 이 짧은 소설을 읽는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던 반면, <리모노프>는 워낙 장편의 대서사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셋 리미티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독서 후 생긴 동명의 영화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다. 영화 선셋 리미티드를 꼭 보고 싶어 찾아다녔는데 찾지 못해서 아직도 그게 조금 아쉽다. 극 형식의 소설이라지만 사실 희곡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재담을 가지고 펼쳐지는 이 소설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참 궁금하다.

 

물론 단순히 영화를 보지 못해 글을 쓰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어떻게, 무엇이라고 적어야 할지 꽤 오래도록 고민해야 했다. 소설은 단순히 '자살'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해 살아가는 르네상스 이후의 인간, 혹은 근대의 인간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나는 그 일원으로서, 그것도 이 소설에 나오는 백인 교수와 꽤 비슷한 생각을 오랫동안 해온 근대인 중 하나로서, 이 글에 대해 '쓰기'시작할 때 그 행위가 내게 미칠 여파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글을 쓰다가 우울해질까봐 글을 쓰는 일이 꺼려졌다.

 

소설에서 나오는 흑인과 백인은 인종을 넘어서 흑과 백, 그리고 서로 반대되는 방향에 있는 인간군상을 드러내보인다.

목사인 흑인은 자신이 신을 '체험'했다는 것을 들어 백인의 자살을 막으려고 하지만, 백인은 신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그는 비단 신 뿐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한다'라고 합의되어진 가치의 절대성 자체 마저 신뢰하지 못한다. 문화, 예술, 문명의 가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가 믿는 그 가치들은 결국 "연기가 되어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굴뚝으로 날아가버린" 가치들일 뿐이다.

 

<영화 '선셋 리미티드'의 한 장면으로 추측됨. 사진 출처는 구글>

 

이런 백인 교수는 인간의 지성을 대표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이성으로 파악한 세상은 부조리하고, 도통 모든 일에 '의미'가 있는 조화로운 세계 같지 않다. 그는 그래서 인간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규범에 냉소적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도 어려움에 처해있으면 도와야한다는 목사의 말에 그는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며, 모든 것은 '합의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말하자면, 그의 세계에 절대적인 가치나 믿음은 없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 존재할 수 없는,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그의 삶이란 척박하고 끔찍하다. 그래서 그는 시속 130km로 달리는 기차 선셋 리미티드에 뛰어들려 하는 것이다.

 

그런 반면, 그 백인 교수를 말리기 위해 그를 잠시 자신의 집으로 끌어온 흑인 목사는 살인전과가 있지만 신을, 예수를, 성경을 믿는다. 일반적인 눈으로 볼 때 얘기하기 껄끄러운 장소인 교도소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는 그곳에서 자신은 신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살 하려 했던 교수를 술꾼에 비유하며 "술꾼이 걱정하는 건 술로 죽을 기회가 오기도 전에 술이 떨어지는 것"이라 단언한다. 술꾼은 진짜로 원하는 것, 즉 하나님의 사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은 진짜로 원하지도 않는 술을 끊임없이 갈구한다는 것이다.(이 부분에서 라캉이 연상되는 것은 나 뿐일까?) 그렇게 말하며 목사는 교수가 갈구하는 죽음이 바로 이 술꾼의 술과 같은 것이라 단언한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원하지만 얻을 수 없는 것 같기 때문에 교수는 죽음을 원하는 '체' 한다는 것.

 

이렇듯 서로 너무나도 다른 포지션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끊임없이 대립하고 계속해서 대화하지만 끝내 생각의 차이를 좁혀가지 못한다. 백인 교수는 흑인에게 이끌려 잠시 생을 연장했지만, 결국 다시 떠나간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그 자체만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의 비유처럼 느껴진다. 잠시간 믿음의 세계에 이끌려왔지만, 결국 끝에는 그곳에서 떠나가야하는 인간들에 대한 비유 말이다.

 

언젠가 수업에서 역사학과의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인간의 권리라는 것, 이른바 '천부인권'이라는 것은 모두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한 것이 아니라 존엄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교수님은 거기에 첨언하시기를, 그렇게 만들기 까지,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보장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노력이 필요했는지를 상기하고 그 소중함을 느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현존하는 어떤 종교 교리 내에서의 신과 같은 존재는 믿지 않고, 그런 신들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신'이라고 우리가 규정하는 어떤 존재의 현존은 정말이지 믿고 싶다. 그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지와 무관하게, 그런 것이 있으리라 믿고 싶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과 달리 정말 의심의 여지조차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며, 우리 삶에 어떠한 종류의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는 존재일테니까.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욕구와 함께 의문이 따라온다. 신이 정말 있다고? 그렇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그 신은 왜 우리를 만들었고, 우주를 만들었는데? 하는 의문 말이다. 아마 이런 끊임없는 불안을 생산해내는 능력이 지성을 발달시킨 인간에게 주어진 원죄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늘 결론은 하나로 귀결되는데, 에잇, 어차피 죽을 용기는 없으니 어찌됐건 필연적으로 끝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일단 살아보자!는 것이다. 끝이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일단 주어졌으니 살아보자는 것. 하지만 아무렇게나 살 수는 없다.

 

<선셋 리미티드>의 교수가 어떤 중요성도 부여하지 못하는 인간의 규범과 존엄성은 물론 만들어진 개념이다. 현대에서 인식하는 사랑, 연애 그런 개념이 만들어졌듯. 하지만 그 개념들이 만들어진데에는 이유가 있고, 그 개념들의 효과로 우리는 지금 동등하게(혹은 서로가 동등하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맹신하지 않지만 나는 간혹 생각한다. 그 존엄성이 보장되지 않던 시기에 내가 태어났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었을지를. 그 상상을 하다보면, 존엄성 자체의 절대적 가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존엄성의 필요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아마도 그래서 지금 규범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지켜져야하는 것이 아닌지, 변화하더라도 아주 조심스레 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생각해도 불안하다. 산다는 건,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발버둥 친다는 건 항상 불안을 품고 있는 일이니까. 매카시가 건드리는 인간의 필연적인 고뇌를 읽으며 또 한 번, 이깟 인생, 하고 생각할 만큼 항상 요동칠 준비를 하고 살아간다는 건 버겁고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아, 무엇이 어찌되었든 나는 살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덜 아프게 살고 싶다. 나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삶의 매 순간마다 죽음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으니, 살아 있을 수 있을 때는 항상 최선으로 살고 싶다. 그러나 그 일은 왜 그다지도 어려운가? 왜 우리는 생에 충실하자 다짐하면서도 미지의, 그러나 반드시 올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불안감 앞에서는 이토록 무력한가?아, 산다는 건 정말이지, 전부 이런 것일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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