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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우리나라 땅 독도 일본에 만행에도 독도는 확실한 우리나라 땅이죠

이런 자랑스런 독도를 자세히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신청 했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섬을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해 온 독도를 일본은 자꾸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독도를 차지하기 위한 일본의 작업은 날이 갈수록 교묘하고 치밀해지고 있다.

자국의 교과서에 왜곡된 역사 정보를 싣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가 직접 나서서 독도 관련 행사를 벌이거나 공개적으로

독도가 일본 땅인 것처럼 발언하여 우리늘 분노하게 만든다.

독도는 512년에 처음 우리 땅이 되었다.

그 뒤로 천오백 년이 넘는 세월을 우리 역사 속에 자리매김해 왔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이백리 그러니까 배를 타고 두 시간 정도를 가면 섬 독도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 끝이지요.

울릉도의 높은 곳에 서서 보면 독도가 바로 보인다. 그만큼 독도와 울릉도는 가깝다.

독도는 바닷새들과 해양 생물들의 천국이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귀한 동식물이 깃들여 살고 있다.

특히 식물은 험한 독도의 환경에 적응하며 독특한 특징을 이뤄 왔다.

독도의 생물들은 대부분 나라에서 관리하는 국가 보호 종들이다.그래서 하루에 방문할 수 있는 인원과 둘러볼수 있는 지역이

제한되어 있다.

독도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섬과 89개의 크고 작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두 개의 바위섬 중 동쪽에 있는 섬을 동도 서쪽에 있는 섬을 서도라고 부른다.

동도에는 배를 댈 수 있는 시설이 있고 독도를 지키는 경비 대원들이 머무는 경비 초소 등대가 있다.

서도에는 1991년부터 이곳으로 옮겨 온 주민 한 가구가 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전 세계에 왜곡된 사실을 퍼뜨리고 있다.

세계지도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고 동해를 일본해 로 표기하도록 부추기도 있다.

일본 국민에게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날조 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아이들이 보는 교과서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담은 교육용 동영상을

만들어 퍼뜨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일본의 농간 때문에 독도를 일본 땅인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일본 정부가 말도 안되는 억지를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 땅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독도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땅이었다는 사실을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친구들에게도 잘 설명할수

있도록 독도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더 깊이 알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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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기억들이 쌓여 인생을 이룬다면 한 사회의 기억들이 모여 역사가 됩니다. 무엇을 기억할지,

또 어떻게 기억할지에 따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달라지겠지요.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답니다.'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전문 작가들과 일러스트레이터가 함께 만든 새로운 형식의 한국사 통사 입니다. 별나게 친절한 용선생과 별나게

열정적인 아이들이 등장해 독창적인 수업을 만들어 갑니다.

생생한 역사의 현장속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질문하는 재미,알아가는 재미,생각하는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새로 발굴된 희귀한 문화재를 비롯하여 2천여 장의 중요한 유물 유적 사진 스토리가 있는 100 컷의 그림지도, 정보의 핵심을 한눈에 보여 주는 인포그래픽은 각 시대의 모습을 풍성하게 그려 냅니다.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는

1교시 백성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다

2교시 나라를 개혁하고 외세를 거부한 흥선 대원군

3교시 나라의 문을 열고 개화 정책을 펴다

4교시 조선,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5교시 대한제국이 세워지다

6교시 나라의 주권을 잃다.

로 이루어져 있다.

19세기 조선에는 사회 곳곳의 변화를 담아낼 만한 새로운 틀이 필요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의 정치 상황은 이러한

사회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 오히려 수십년 동안 세도가들이 권력을 틀어쥐고 있어서 정치를 어지럽혔다.

그로 인해 백성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참다 못한 백성들이 여기저기서 약속이나 한 듯이 우르를 들고 있어

났다.

최제우는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동학이라는 종교를 창시했다. 사회의 문제를 종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한 거다

그러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속인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다.

나라를 개혁하고 외세를 거부한 흥선 대원군

19세기 동아시아는 밀려드는 서양 세력 앞에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중대한 시기에 조선의 운명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인물은 흥선 대원군이었다.

그가 내세운 다양한 정책들은 당대에도 여러 계층의 환영과 반발을 동시에 샀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당시 조선과 흥선 대원군에게는 그만큼 무건운 숙제가 주어졌던것이다.

나라의 문을 열고 개화 정책을펴다.

흥선 대원군이 물러난뒤 조선은 거센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되었다.

그 시작은 강화도 조약이었다.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은 본격적으로 서양의 문물과 제도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조선은 여전히 준비가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서로 조선을 차지하려고 군침을

흘리는 가운데 조선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조선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개항뒤,조선은 더 이상 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밀려오는 외국 세력에 마냥 휘둘리지 않으려면 개혁을

통해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다. 변화를 원한 건 나라를 이끌어 간 권력층이나 지식인들만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새로운 조선을 원하고 있던 것은 이름 없는 백성들이었다. 새 세상을 향한 백성들의

열망은 동학이라는 종교와 맞물려 거대한 불길을 일으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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