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로 80-8   새남터 기념성당.

       '새남터'는 억새와 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한자로 음역해서 '사남기(沙南

       基)'라고도 한다.

 

        59쪽

     

        이곳은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으로 사용됐고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

     형장이었던 곳이다.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들이 피를 뿌린 곳이며, 1801년

     부터 1866년까지 10명의 외국인 사제를 포함한 11명의 목자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임금이 살고 있는 성안에서는 죄인을 처형하지 않는(피를 보지 않는) 법이었기 때문에 성

       밖으로 죄인을 끌고 나가 사형을 집행 하였으니 새남터를 비롯하여 서소문 밖과 양화나루의

       절두산 등이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 처형 장소인 셈이었다. 절두산에서는 산봉우리에서

       죄인의 목을 쳐서 강물로 던져 버리니 시체 처리가 손쉬웠고, 새남터 역시 옛날엔 민가가 적

       고 나무가 울창한 곳인데다 넓은 모래밭이 있고 또 한강이 가까워 처형하고 뒤처리를 하는

       데 최적지었다.

                                                                                      서상요 / 한국교회사연구소

 

      

 

          성모상 옆이 지하의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기념관에는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의 역

       사를 전시했다. 특히 새남터 모래 사장에서 목이 베이는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양

       손은 뒤로 묶이고 귀는 긴 꼬챙이가 꽂히고 무릎 꿇은 채 끌려가는 장면이 생각난다. 양쪽

       귀에는 왜 꼬챙이를 꽂았을까? 잘못된 것을 들은 귀라고 그랬을까? 목을 치는 것보다 더 잔

       인하다.

 

          여기서 나오면 녹색의 한강철교가 보인다.

 

 

          58쪽.

 

         1900년 한강에 놓인 최초의 근대적 다리였던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때 퇴각하는

      군인들에 의해 폭파된 적이 있다.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이 강을 건너는 상황에서 이

      루어진 성급한 폭파였고,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500명이 폭사하였다. 희

      생양이 필요했으므로 권력은 폭파의 책임자였던 공병감을 전쟁 기간에 처형했다.

      이 책임자는 사후 12년 뒤의 재심을 통해 무죄 판정을 받았다. 다리는 장소와 장소

      를 이어주기도 하지만, 장소와 장소를 단절시키는 참혹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권력은 무력하기 때문에 사악할 수 있다"                - 칼의 노래 / 김훈

 

 

          한강철교 다음 다리가 노들섬이 있는 한강대교이다. 한강에 놓인 다리들을 이렇게 가까이

        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 건너보기로 한다 시작점에서 보니 대교 좌우에 '직녀까페'와 '견우

        까페'가 서 있다. 이름도 기가 막히게 지었다.

          다리 난간에는 유명한 운동선수, 연예인들의 이름과 함께 길게 뭔가를 적어 놓았다. 아마

        도 난간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적어 놓았나 보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3년 7월 말까지 5년간 한강 다리 가운데 마포대교(110명)에서

        자살시도가 가장 많았으며 한강대교(64명)가 두 번째라고 한다.

            

    

 

   

 

   

    

     '1부 오래된 망각편' 답사는 여기서 마친다. 용산역과 전자상가는 기회가 되면 가야겠다.

     너무 오래되서 잃어버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들, 새남터, 청파동, 효창공원, 한강철교...

     무언가 있겠지, 뭔가를 느낄 수 있을거야 하고 가보지만 기대만큼의 느낌은 아니다.

      그 장소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어리석었다.

 

      12쪽.

 

       장소는 시간을 앞지르지 못한다. '장소는 시간의 몸을 입고 있으며 내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장소를 둘러싼 야이기는 완전히 드러날 수 없으며 이해를 받을 수도 없다.

    장소의 의미가 타오르던 극적인 순간은 결국 사라진다.

 

      어떤 호명에 의해서도 장소의 의미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장소는

     이름으로부터 초연하다. 하나의 고독한 시선이 장소를 발견했다고 해도 장소는 그의

     고독을 완성해주지 않는다. 장소는 시선보다 절대적인 고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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