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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희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이진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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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작가의 오랜 천착을 엿볼수 있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갈등하는 인간 내면을 은밀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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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 파열된 풍경이고, 주관은 그 속에서 활활 타올라 홀로 생명을 부여받는 빛이다. 그는 이들의 조화로운 종합을 끌어내지 않는다. 분열의 원동력으로서 그는 이들을 시간 속에 풀어헤쳐 둔다. 아마도 영원히 이들을 그 상태로 보존해두기 위함이다. 예술의 역사에서 말년의 작품은 파국이다.


아도르노의 후기 베토벤에 대한 정의는 아주 바람직하게 다가온다. 사실 오늘날 해체주의라는 것도 그 원류를 따져가 보면 베토벤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늦은 밤에는 이런 잡생각을 자주한다. 심심하고 무료하다가도 생각에 또 이어지는 생각이 나를 한움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또 그런 시간들이 흐르면 다시 무한한 위로가 찾아들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내가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불면에 대처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그저 '아 또 밤이구나'하는 건조한 독백 속에 멀뚱멀뚱 어둠을 응시할 줄 아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불면이라는 것은 의식하면 할수록, 극복해내야 한다고 속으로 다짐하면 할수록 더욱 더 불면에 사로잡히게 할 뿐이다. 이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밤은, 아니 정확히 불면은 아직 철없이 꿈꾸기만 하는 나에게 현실을 바라보게 하고 이 삶에 불과불 (한계를)'인정'해야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조화로운 나보다 분열되고 위태로운 나를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우습게도....


그 밤에 나는 꼿꼿이 고개를 든다. 이는 내가 어둠이 주는 무수한 상상의 공포를 의연히 받아들이겠다는 우호의 표시이다. 그리고 소통의 창구인 오감을 열어 둔다. 위로는 부지불식간에 그 통로를 통해 나에게 찾아들므로.... 그러나 그 소통의 대상이 사람일 수는 없다. 그 특수한 공간은 자신의 삶 외에 다른 삶이 끼어들 자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짙은 어둠이 내린 그 공간에서 나는 오감을 개방시킨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오디오를 켜고 브렌델이 연주한 음반을 플레이시킨다. 혹자는 그 밤엔 조용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더 어울리지 않느냐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모르는 소리다. 오히려 감정을 건드리는 자극적인 음악은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건조하고 심심한 음악이 제격이다. 그러나 나에게 건네지는 건조하고 스산한 그 소리는 순간 나의 감정과 부딪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28번 이어야만 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29번을 베토벤 후기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베토벤의 '분열'이 가장 완성도를 갖는 작품이 바로 29번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삶은 아직 모순과 불안의 진행형이다. 어떻게 분열을 그럴 듯한 완성품으로 포장할 수 있을런지는 아득한 일일 뿐이다. 28번은 적당히 불안하고, 적당히 덤덤하다. 조화와 분열이 어우러진다.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조화와 분열은 은근히 그것에 익숙해지게끔 나를 단련시킨다.


그리고 브렌델의 연주여야만 한다. 혹자는 강철 타건의 폴리니 연주를 명반으로 꼽지만, 이런 밤에 화려한 정열은 나에게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낮에는 더없이 훌륭하지만..) 조신하고 겸손한 학생이 엄한 선생님을 곁에 두고서 연주하듯, 진지하면서도 약간은 긴장된 음악이 더욱 어울린다. 브렌델의 연주가 주는 느낌말이다. 음표 하나하나에 충실히, 과장없이 덤덤하게.... 그런데 이를 귀기울여 듣는 나는, 이 음악을 심심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베토벤과 브렌델 사이, 악보와 연주자 사이의 '거리'가 내가 나를 바라보고 반성하는데 꼭 필요한 만큼의 거리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거기에 존재하는 건조함이야말로 나를 인정해 주는 따뜻한 위로이고 내가 혼자가 아님을 인식하게 해주는 포근한 안식이다. 


이렇게 나는 불면과 함께하는 밤을 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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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 새물결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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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편형된 시각을 갖고 잘못된 사관들을 구축해왔다. (245)


그동안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유럽(서양)중심사관에 대해 유럽인 스스로가 반성하고 거기에 반한 새로운 역사관을 제시하는 저작이다. 구체적인 역사관을 치밀하게 분석해내고 이를 반박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사 전체를 굵직굵직한 주제로 정리하고 그것을 탈유럽의 관점(일종의 세계사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서양사 전체를 일관된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중심사관에서 벗어난 유럽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이점이 있다. (300쪽 정도의 책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 과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 온갖 희망들, 즉 실현되지 못한, 그러나 그렇다고 실패하지도 않은 희망의 저장소를, 요컨데 하나의 미래가, 예언의 합당한 대상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미래를 꿈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일임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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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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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은 흥분하기 쉽고, 올바르지 못함은 항상 의기 양양하고 뻔뻔스러운 침착함을 과시한다. 열정적으로 선의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선함과 유익함 따위는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 자에게 지게 마련이다.  (32)


시대정신에 대해 내가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 것일까? 나는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만 조용히 관찰을 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을 뿐이다. (78)


구성은 거칠고 서사는 불친절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좋지 않은 소설인가? 그렇지 않다. 소설의 힘은 리얼리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현실, 곧 도래하고 꿈꾸어야 할 세상을 그리는 것도 소설의 중요한 임무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입학한 야곱 폰 군텐의 이야기는 귀족 출신이면서도 하인이 되고자 하인학교에 입학한 한 개인의 이야기다. 끊임없이 세계를 관찰하는 주인공은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듯 자만심 가득한 말투로 관찰한 세계를 말(언어)로 옮기지만,  현실이라는 구조에 결코 순응적이라 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상황이나 심리를 정확히 묘사하지 않는 것으로 주인공이 처한 현실을 변주하고 비튼다.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소설의 핵심 메시지를 정확하게 꼽아 밝히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가 투사도 아니요, 강건한 신념을 지닌 자도 아닌 야곱 폰 군텐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은 그의 말이 곧 내 눈 앞에 놓인 세계에 대한 발언이고 또 야곱 폰 군텐은 그 세계와 맞서며 정형화된 세상을 철저히 거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보잘것 없는 인간이 주어진 세계를 받아들이기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에서 나는 적어도 무모함을 느끼기보다, '용기'라고 하는 인간성의 소중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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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생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이레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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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농밀한 자신의 내면 탐구. 그러나 처연하지 않고 덤덤하게.. 나쓰메 소세키의 최고작품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그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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