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카는 이와 같은 반응미디어가 그들의 뇌를 바꾸고 생각을 증발시킨다고 주장했다. 물론 생각을 증발시켜버렸다는 그의 주장에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변화가 오고 있음은 분명하다.
살아본 적 없는 미래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시간 속의 이주민’인 셈이다.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임신의 도구가 아니라 인생의 주체다.
가만 생각하면 좀 이상하다. 배 속의 아기는 그렇게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임신한 여성의 건강과 근무환경에는 어쩜 이리 무관심할까. 그저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세포덩어리인 배아에는 인격까지 부여해 그 생명의 소중함을 주장해대면서 진짜 인생이라는 걸 살아내고 있는 여성의 존재는 아주 쉽게 무시해버린 대한민국 법무부처럼 말이다.
사람들의 무지는 어째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지. 그들의 무례는 어찌나 당당한지. 왜 설명은 모두 내 몫이어야 하는지. 과거와 현재의 임산부들은 도대체 얼마나 수모를 겪어온 건지. 왜 달라지지 않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