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3주

동화든 전설에서든 절대 빠지지 않는 - 특히나 주로 악역 담당인 동물이 바로 늑대! 늑대가 나타났다~~~ 하면 십중팔구 절대 좋은 의미는 아니며, 늑대는 인간이나 여린 동물들을 습격하는 무서운 위협으로 등장하곤 한다. 게다가 이러한 이미지가 인간의 상상력과 결합하면 늑대인간이라는 공포스러운 괴물로 변용되기도 하며, 어쩌다 음흉함의 대명사까지 되어 늑대 하면 여자를 홀리는 남정네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또 한편으로는 일찍이 늑대의 강함과 고고함을 숭배하기도 하며 늑대와 관련된 위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 형제라든가, 푸른 늑대의 후손이라는 몽골의 시조신화라든가... 또한 실제로 충절 강한 일처다부제에 외로우면서도 사회생활을 할 줄 알 며 영리한 늑대의 본모습이 '시튼 동물기' 등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알려져있기도 하고 소설이나 영화에도 꼭 험한 모습만이 아니라 친근한 모습으로도 종종 등장한다.  

그럼 이 늑대들의 이미지가 영화속에서는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한번 찾아볼까.  

 

 레드 라이딩 후드 (2011)
그림 동화 중의 하나인 <빨간 두건>이야기를 새롭게 탄생시킨 영화로, <빨간 두건>의 21세기적 재해석이라고 하기엔 그다지 동화 원래의 뼈대도 주제도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동화의 요소들을 차용했다는 정도로 보는 게 나을 듯 싶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의 전설이 전해지는 마을. 동물을 제물로 바치며 불안속에 살아왔지만, 발레리의 언니가 죽임을 당하면서 오랜 규칙은 깨진다. 그리고 드디어 마을을 습격하며 모습을 드러낸 늑대는 발레리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함께 떠나자'고 요구한다. 전설의 늑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마을사람들 속에 위장해 숨어있는 늑대인간이라 주장하는 솔로몬 신부와, 늑대의 말을 알아들어 마녀로 몰리는 발레리.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 마녀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발레리의 할머니, 그리고 비밀을 가지고 있던 부모님... 도대체 이 중 누가 늑대일까.
동화에서 흉폭하기 보다는 음흉하고 비밀스런 음모로 순진한 빨간 두건 소녀를 덮쳐왔던 늑대는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의 곁에서 은밀히 그녀를 삼켜오는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여기에, 늑대의 정체가 과연 무얼까 하는 무지의 공포까지 더해졌으니..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발레리의 위험한 사랑과 늑대의 진실을 추적하는 스토리는 그야말로 '로맨틱 스릴러'라 할 만 하다.   

 

 블러드 & 초콜렛 (2007) 
<레드 라이딩 후드>에 이어 '늑대'와 '로맨틱 스릴러'라는 키워드로 떠올린 영화. 제목에서부터 그러한 의도가 이미 감지되지 않는가. 피와 초콜렛이라니. 그런데 제목이 무색하게도 그 키워드를 성공적으로 조합시키지는 못한 영화이기도 하다.
소수의 늑대인간들이 인간들 속에 숨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루마니아. 사냥꾼들에게 몰살당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키지만, 만월밤에는 인간 하나를 잡아와 게임을 하듯 미끼로 풀어놓고 이를 뒤쫓아 잡아먹는 사냥의식을 행한다. 쾌감마저 느끼는 듯한 본능밖에 느껴지지 않는 사냥과 포식의 현장에서 그들의 모습은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모습이다. 재미있는 건, 요즘 여타 영화들에서 늑대인간이 반인반수같은 괴물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데 비해, 이 영화에서는 매우 고전적으로 동물 그대로의 늑대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공상의 괴물이 아닌 순수한 짐승이 인간을 공격할 때의 공포'와 '그저 늑대라는 동물의 모습 자체에서 느껴지는 웬지모를 우아함'이라는 매우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주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늑대인간이란 존재 자체도 한편으로는 인간을 사냥하는 위협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인간의 박해를 두려워하는 소수 약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인간과 늑대 사이에서 정체성이 모호한 상태에서, 이들 중 여주인공만이 가장 확실하게 늑대의 본성을 이성으로 컨트롤하는 '인간'에 가까운 존재이다. 그리고 그녀가 '인간'과 사랑에 빠져 종족 무리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스토리는 진행된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재미있는 소재를 그다지 잘 풀어내지 못하고 밋밋해져 버린 영화라 안타깝다...  

 

 폭풍우 치는 밤에 (2005)
이번엔 늑대인간이 아니라 늑대 자체가 등장하는 동화 한편. 보통 동화속 늑대란 연약한 주인공 동물들을 괴롭히는 절대 악이다.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라든가... 늑대는 아무 죄없는 아기 염소들을 잡아 먹고 엄마 염소에게 복수의 대상이 되지 않던가. <폭풍우 치는 밤에>의 세계에서 역시 늑대는 염소를 잡아먹는 공포의 대상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어린 염소 메이가 늑대의 습격으로 엄마를 잃는 장면이 무시무시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예쁘고 연약한 염소와 대비되는 거칠고 포악한 늑대는 전부 사악한 존재인가? 비록 세상에서 염소고기를 제일 좋아하는 '늑대'지만 우연히 친구가 된 염소와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늑대가 여기 있다. 폭풍우 치는 어느 밤,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허심탄회한 대화로 친구가 되어버린 염소 메이와 늑대 가브. 늑대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간이 배밖에 나온 염소도 대단하지만, '먹이'인 염소를 친구로 대하려고 애쓰는 늑대에게서 정말 무한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비록 다른 늑대 무리들은 여전히 악당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긴 하지만, 그만큼 서로 상극인 두 존재가 서로에 대한 편견 없이 순수하게 우정을 지키는 모습은 더욱 부각된다. 어찌 보면 가브는 동화속 늑대 이미지 개선의 선봉에 서 있다고나 할까. 그가 겪는 그 처절한 시련도 모두 선구자가 겪어야 할 길인지도... 또 그래서 더 찡한 것이고...  

 

 늑대개 (1991)
이번엔 완전히 친근한 존재로서의 늑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들. 인간의 누구보다 가까운 동물 친구라면 뭐니뭐니 해도 개가 최고. 그리고 늑대와 개는 친척지간 아니겠는가. 늑대를 길들인 게 개의 시초가 되었다는 말도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충성스럽거나 사랑스러운 개에 대한 영화들이 많은데, 크게 보면 1991년 영화 <늑대개>도 그런 부류에 넣을 수 있겠다. 제목 때문에 늑대의 피가 섞인 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영화의 주인공은 순수하게 '늑대'이며 새끼 때 한 소년에게 구해진 이후 소년의 둘도 없는 충직한 친구가 되어 여러가지 모험을 겪어나가는 이야기이다.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어린 시절에조차 꽤 감동적으로 보았던 추억의 영화로, 아마 그래서 더 늑대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남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울프스 레인 (2003)
마지막으로, 이것은 영화는 아니지만 '늑대'에 관한 이미지 변용 중 최고봉이라고 생각하여 덧붙이는 애니메이션 작품.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함이 가득한 세계. 늑대는 이제는 사라진 동물이지만, 사실 그들은 인간들 속에 숨어 살아가도 있다. 환영처럼 인간의 모습을 하고... 그리고 달의 꽃과 함께 낙원을 찾아가는 그들의 여정... 달을 향해 고독한 울음을 내지르는 고고한 늑대의 이미지를 기가 막히게 살려내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한편의 환타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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