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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하기 -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설득과 소통의 법칙
윤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8월
평점 :
내가 노무현대통령이 말하는 걸 처음 들은 게 아마도 80년대 말쯤인가,
TV로 생중계된 5공비리 청문회 때였지 싶다.
불려나온 증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말을 토해내는
초선 국회의원시절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2002년 대선후보시절, 노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전율을 느꼈다.
코끝이 찡해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때 경험은
내겐 놀랍고도 당혹스럽기까지 한 일이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내가 정치인연설을 듣고 눈물까지 흘리게 될 줄이야.
사람마음을 움직이는 노무현대통령 말하기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이 밥먹으며 한 말까지 기록했던 윤태영은
노대통령 말하기에 대해 조목조목 들려준다.
그 중에서도 내가 노대통령 말에 끌리게 된 이유는
솔직하고 쉽고 편한 말하기 스타일 때문이었다.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한 대화체라 할까.
하지만 재임기간 동안 노무현대통령의 이런 말하기 스타일은
종종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언론은 이를 부풀려 보도했다.
서민의 아들로 태어나 고졸학력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마침내 이 나라 최고권력이라는 대통령까지 됐지만
평생 몸에 밴 서민적 말투는 고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그 말투를 즐기고 고수했다고 봐야지 않을까?
맘먹고 고치려했다면 못할 거도 없었을 테니.
대통령이 뭐 별거냐, 주권자가 뽑은 5년짜리 임시계약직일 뿐이란
노대통령 평소 생각을 보면,
왜 그가 대통령이 됐으면서도 그토록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한 모습을
보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사실 국민이 주권자란 건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다른 대통령들이 노대통령만큼 실천할 생각이 없었거나 못했을 뿐이지.
노대통령이야말로 헌법이 명시한대로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민주공화국의 본래 주인인 국민에게 권력을 되돌려주려 노력했던
최초의 대통령이라 생각한다.
노무현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이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고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듣겠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 국민들은 대통령을 맘껏 욕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 같으니까, 욕해도 안 잡아갈 거 같으니까.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란 유행어까지 생겼을 지경이었으니.
이제 대통령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편하다 못해
속된 말로 만만해 보일 정도가 됐으니까.
노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 불렸던 유시민은 이런 변화를 두고
대통령을 욕하는 게 국민적 레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노대통령은 말을 참 많이 했고 좋아했다.
대통령이라고 근엄한 모습으로 언론에 잠깐 나와서
뭔가 있어 보이지만, 알듯말듯한 말 한마디 툭 던지고 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이렇습니다.’라고 더 많은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런 면도 곱게 바라보지 않았다.
대통령답지 않게 뭔 말이 저렇게 많아, 나라 시끄럽게, 체통 떨어지게.
유시민은 울나라 국민 중엔 아직도 조선시대 문화유전자가 흐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몸은 21세기를 살지만 정신은 아직도 19세기 왕조문화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고 언제라도 탄핵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왕이고 국민은 백성이라는 심리가 남아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국민들과 격의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내 나라 대통령에겐 품위없어 보인다 비난하고,
주권자로서 책임은 망각한 채 정치를 외면하면서도
마치 왕이 백성을 보살피듯 대통령이 다 알아서 해주길 기대한다.
말하기 스타일 땜에 하도 욕을 먹어서 그런지,
노대통령은 자신의 말하기 스타일을 후회한 적이 있다고 했다.
어찌보면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림일 뿐이다.
말투나 단어하나 꼬투리잡고 비난하기보단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진심이 뭔지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들어준다면
괜한 오해와 비난도 줄어들지 않을까?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이 더럽네 어쩌네 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