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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추천신간
이번 달엔 어째 한국 소설이 많다. 심지어 장르소설도 눈에 들어오는
게 별로 없는데, 타닥타닥 빗소리 들으면서 간만에 ‘문학’에 빠져야 할 모양이다. 번역서를 많이 읽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 소설에
소홀해지곤 하는데, 국내의 젊은, 혹은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에
기대가 쏠리는 것이 참 반갑다.
[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이거 재미있겠다:)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도망쳤던 할머니, 개잡년이니 뭐니 하는 욕을 들으며 자식들한테는 전쟁 때 죽었다고 알려졌었다.
이제 와 새삼 돌아와 하는 말이, “너희들에게 줄 재산이
60억 있다.”는 말. 사투리와 욕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과연 본문은 얼마나 구성질지.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라는
평을 받았다는데, 또 ‘할머니’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마냥 웃기기만 할 리 없다. 일본 사람과 만난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존재가 지워졌다. 60억을 지닌 지금에야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돈은 유산으로 상속될 때만 가족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족들이 주판을 튕기는 대상은 할머니 개인이 아니라 그 돈이다. 분명 할머니가 다른 남자랑 도망갔다고 말하느니 병으로 죽었다고 말하길 택했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보고 개잡년이라고 욕부터 한다. 분명히 살아서 ‘돌아왔’는데도 인간으로서는 받아들여지기가 힘들다.
제목이 [오빠가 돌아왔다]를
연상시키는데, 모양새만 따온 줄 알았더니 어쩌면 주제도 관련 짓자면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소설로 “모든 할머니들이 조금이라도 위로 받는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일제강점기와 전쟁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창작물이 나오길 바랐다. 역사교과서도 아닌 이상 엄숙주의를 고집할 필요도 없고, 그 역시 창작물이 택할 수 있는 한 방법이고, 그래야 마음 속에서부터
애착도 생기고 이해도 가니까. 이 책은 어떨지 기대된다.
[코끼리는 안녕], 이종산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1회 수상작. 귀엽다. 발랄하다는 말을 붙이면 엇나갈 것 같은데, 귀엽긴 귀엽다. 하지만 귀엽기만 하면 실망할 거다. 그보다는 깊이 있는 글을 원하니까. 기성 작가들보다는 80년대 생들의 감상에 관심이 많이 간다. 이전 세대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을지 몰라도 그보다 더 고차원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지금의 20-30대가 보여주는 분노, 절망, 능청, 허튼소리
같은 것에 매력을 느낀다. 그것들은 보통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지금의 현실에 맞는 진정성과 흡입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 책에선
어떨지, 문학동네에서 어떤 글을 뽑았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소설에서 늘어놓는다는 ‘딴청’이 과연 얼마나 매력적일지 읽어보고
싶다.
[아홉 개의 붓], 구한나리 지음, 문학수첩 펴냄.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당선작. 전통적인 혹은 한국적인 요소가 강한데, 그런 이야기 대부분을 좋아하다 보니 눈길이 간다. 아홉 감(신)과 그들이 만든 아홉 개의 붓에 관한 이야기들, 붓을 모두 모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말. 붓이라는
신기가 주는 축복이 소유자의 ‘행복’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조화’라는 점에서 친밀감이 마구 솟아나고 있다. 서양 쪽의, 기사들이 갑옷 입고 칼 들고 설치는 전형적인 판타지도
좋아하긴 하지만, 역시 한국의 고전 설화 같은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반갑다. 이건 좀 재미있을지도.
책에는 불만이 없는데 책 소개가 줄거리 나열에 그친 것 같아 좀 아쉽다. 어떤
의미를 품는지, 어떤 앎을 얻을 수 있는지 등도 소개해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문단 쪽 문학에 대한 소개글은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와닿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데, 환상문학 쪽은 반대로 너무 피상적이라 안 와닿을 때가 있다. 결국, 읽어보고 확인해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삼풍], 문홍주 지음, 선앤문 펴냄.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당시의 이야기를 재현한다고. ‘삼풍’ 두 글자만으로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유명한 사건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를 다룬 창작물은 거의 없다. 어쩌면 이 시기에 책을 살필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이름을 남긴 책은 딱히 없는 듯 하다. 미국에서 9/11 이후 이를 다룬 창작물(예를 들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같은)이 쏟아져 나온 걸 생각하면 좀 비교되는 일. 이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의 잠재성을 품고 있는 사건인데 왜 다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뿐이다. 그런 점에서 관심이 가는 책이다.
소개글만으로는 흥미롭다는 감이 안 오는데, 미리보기에 나와 있는 문장들은
또 괜찮아 보인다. 재난 소설에서 꼭 희망을 역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재난과 그 한복판에 선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것은 흥미로운 과정이리라 생각한다.
[여신과의 산책], 이지민 외 지음, 레디셋고 펴냄.
젊은 작가들의 단편집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저번 달에 나온
것도 채 못 읽었건만 이번 달에도 하나 나왔다. 이건 좀 읽어보고 싶어서 몸이 단다. 한유주 작가의 팬이 되고자 나온 책들을 읽고자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박상 작가의 발랄함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지민 작가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등등. 인터파크에 연재되었던 소설들을 추려 모았다는데, 그럼
최소한 실망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예전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모은 [오늘의 문학]도 참 괜찮았었기에 인터넷에서 검증됐다는 말에 신뢰가
생겼다.
특히 이 단편집은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강한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환상소설로는 흐르지 않는 잔잔한 현실성, 그런 걸 그려내는 한국 소설에 관심이 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남미 출신 책이라면 고민할 거 없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할 텐데, 그건 또 아니고. 현재로는 열심히
읽어봐야 알 일이다.
[바람의 그림자 1,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문학동네 펴냄.
잊혀진 책들의 묘지, “이곳의 기본 수칙은 첫 방문 시 자신만의 책
한 권을 얻을 수 있는 대신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누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 책에 관한 책은 언제나 신난다. 게다가 적당한 환상성과 미스터리가 버무려져 있는 모양이다. 저 책들의
묘지에서 얻게 된 책을 시작으로 하여 겹겹이 쌓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스페인에서 150주 이상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다고. 그런데 여기에 “성인 한 명이 일 년에 평균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스페인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이라는 말이 붙어있는 걸 보니, 스페인도
어지간히 소설 안 읽는 모양이다. 또 그런데도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다면, 전 국민적인 화제가 됐을 법 하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항상 만족스러운
책인 건 아니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책에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대된다.
[내 욕망의 리스트],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김도연 옮김, 레드박스 펴냄.
일확천금의 꿈은 지루할 정도로 통속적이지만, 일확천금을 얻은 사람들의
양태에는 시사점이 많다. 270억 원짜리 로또에 당첨된 후의 이야기,
남편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어느 날 당첨금 수표가 아예 사라져버린 걸 알게 된 주부, 몰래
돈을 펑펑 쓰다 270억 중 5억 밖에 못 쓰고 외로움과
괴로움에 시달리다 연락을 해온 남편, 둘의 이야기는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을까.
저자의 본업은 카피라이터라는데,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흥미를
이끌어내는 문장을 쓴다. 예를 들어 “우린 다시 읽지 않는
메일을 보내고 문자를 날리지요. 맞춤법이 주는 우아함이나 예의, 사물의
의미를 잃어버렸어요. 전 아이들이 제가 그토록 싫어하는 페이스북에 자기 사진들을 올려놓는 걸 봤어요.”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나는 이 말이 대체 어느 내용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서라도 읽어볼 예정이다.
[아멘 아멘 아멘], 애비 셰어 지음, 문희경 옮김, 비채 펴냄.
강박장애의 증상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행동, 다른 하나는 자꾸만 이를 유발하는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생각이다.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인 자꾸만 손을 씻는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보통 빨리 씻지 않으면 손이 오염되리란 생각에 시달린다. [아멘 아멘 아멘]의 주인공 애비는 차가 지나갈 때마다 기도를 한다. 그래야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일을
빼먹으면 사고가 날 것이고, 사람이 죽을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그것은 무시무시한 공포다.
많은 어른들은 자기가 기도를 하는 것과 교통사고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
잘 닳아서 희박한 확률의 불안에는 시달리지 않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비에게는 세상이 무탈하게
자신을 받쳐주리라는 확신이 없다. 어리석은 두려움이지만, 그래서
더 안타깝다. 자기가 살아가던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걸 테니까,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자기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생각에 시달릴 테니까, 그리고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을 테니까.
강박증, 우울증, 거식증은
서로 가까운 관계다. 저자인 애비는 이 모두에 시달렸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다행히 저자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어 증상에 괴로워할 때마다 엄마가 등을 쓰다듬으며
안아주었다고 한다. 주인공 애비 역시 의지할 만한 엄마가 있고, 또
소녀에서 자라나 한 어머니가 된다고 한다. 그 과정에는 사소한 깨달음이 있다. 사람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누구나 죽는다는 것, 자식은 부모가
된다는 것, 삶은 계속된다는 것. 딸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딸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말이다. 나도 그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