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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의 힘]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2012, 황금가지.


 

1.

 

[개의 힘]에는 정도가 지나친 폭력이 굉장히 자주 나온다. 한 살인 장면은 이렇다. 그는 남자의 이마를 칼로 짧고 날카롭게 베었다. 그리고 피부를 잡고 아래로 벗겨 내렸다. 바나나 껍질처럼 가슴께까지 얼굴 껍질이 벗겨지는 동안 남자는 필사적으로 발을 굴렀다. 그는 발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자의 입에 총을 넣고 쏘았다. 배신자는 뒤통수를 쏘고 밀고자는 입 안을 쏜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폭력은 만성이다. 언제나 새로운 폭력이 있다.

 

폭력은 멕시코의 광경이다. 미국인이 살해당하면 전쟁이 벌어지지만, 멕시코인이 학살당하는 것은 언론보도에서도 묻힐 수 있다. 같은 중앙아메리카지만 멕시코는 가난하고 혼란한 나라다. 마약, 살인, 총과 화약, 범죄는 전부 아랫나라 멕시코에서 일어난다. 미국인은 휴가차 혹은 업무차 아래로 방문한다. 멕시코인은 살기 위해 혹은 일자리를 찾아서 국경선을 넘어 달린다. 멕시코에서 미국, 혹은 미국으로의 여정을 뜻하는 말은 엘 노르테(북쪽)’. 마약은 정제되어 북으로 올라간다. 검은 돈은 남으로 내려간다. 돈이 흘러가는 곳은 멕시코 정부가 아니라 그곳의 마피아들, 마약왕의 주머니다. 마약과 돈을 가진 자들에게 멕시코는 거대한 노름판이다. 영화 <대부>를 떠올려도 좋다. 다른 점은 더 현대적이라는 것과 더 대규모라는 것이다.

 

2.

 

이 책은 1975년부터 2003년까지 30년 정도의 마약전쟁을 기록한다. 멕시코의 티후아나, 과달라하라,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가 무대다. 주인공은 따로 없지만, 꼽아보자면 마약수사관 아트 켈러가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그가 마약전쟁에서 활동한 경력과 때를 같이 한다. 그는 CIA 출신이지만 마약 단속국으로 옮겨 경찰에서 활동한다. 쉽진 않다. 팀장은 CIA 출신인 그를 고깝게 여겨 현장에 홀로 버려둔다. CIA 수장은 착한 사람이 아니고, 믿어도 될 사람도 아니다. 멕시코 연방경찰은 마피아의 수하다. 그들에게 즉시 출격을 목적으로 증거와 증인을 들이대면, 이런 말이 돌아온다. “여기는 멕시코입니다. 세뇨르, 이 일들은 시간이 걸립니다.” 옆동네 온두라스의 마약 단속국 사무소는 사건 부족을 이유로 폐쇄되었다. 아트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힘이 필요하다.

 

전쟁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아트와 쌍을 이루는 적군은 바레라 가문, 그 중에서도 아트의 후견인 노릇을 했던 티오 바레라와 친구였던 아단 바레라이다. ‘바레라들의 이름은 멕시코에서 왕과 같다. 아니면 재앙이거나. 사람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입을 다물어버린다. 멕시코에서 마피아들에 관해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정말로 한순간에 비명횡사하기 때문이다. 마피아는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함과 행동력을 보이지 않으면 동료나 부하에게 제거당할 수 있다. 그들은 거의 항상 전쟁 중이다. 남들보다 빨리 뛰지 않으면 잡아 먹힌다. 그렇게 뛰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이 작품을 영상으로 만든다면 장편 드라마가 아니고선 힘들 것이다. 30년 분량의 기록에, 방대한 내용만큼 등장인물도 매우 많다. 각 조직의 거물이나 보스, 운전사, 신입 조직원, 경찰, 용병, 매춘부, 정치인, 그리고 중요한 이름이 될 만큼 살아남지 못한 포로들, 주민들, 젊은이들. 영상과 달리 제약이 없는 책이기에 담아낼 수 있는 방대한 세계다. (그리고 혹시 누가 누군지 까먹었다면, 책에 첨부된 주요 인물 및 단체 목록을 참고하시길.)

 

개중에는 실존인물과 사건이 뒤섞여 존재한다. 이들은 중요 인물이지만 작품 내에서는 보통 주변인이다. 하지만 작품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 두어 명이 선거 전에 사망했다, 마피아의 짓이다. 선거 득표수를 세던 컴퓨터가 갑자기 정지하고 관리자들이 사망했다. 마피아의 짓이다. 국가기관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수근댈 법한 음모론이 여기서는 사실이다. 정확히는, 사실로 보인다.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악당들은 진상을 밝히지 않고, 이 일을 알 정도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추적자 노릇을 하지 않는 법이니까.

 

3.

 

폭력을 주재하는 것은 악이다. 폭력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개의 힘이 느껴진다. 이 힘을 쥐면 복수를 하거나 돈을 벌 수 있다. 마피아의 대부분이 악에 발을 담그다 못해 머리까지 빠진 사람들이다. 한번 들어서면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악은 추진력이 있어서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었다. 물리학의 법칙이다. 잠들어 있는 몸은 계속 잠들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는 몸은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 뭔가가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친구를 구하기 위해 총을 쏜 젊은이 칼란의 경우, 정말 오랫동안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살아남기 위해 발을 내딛을수록 중심 인물이 되었고, 빠지고 싶어졌을 때는 너무 유명해진 다음이었다. 혹은, 휘두를 때는 사소했던 악이 길고 거대한 복수를 불러오곤 한다. 아트는 동료의 죽음을 보상하기 위해 또다른 악인이 된다. 그러는 동안 개는 침을 흘리며 주위를 맴돈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 악을 선택하는 위치에 있지만 실질적인 선택권은 없다. “충분한 힘으로 거대한 악을 활동하게 한 사람이라도 일단 악이 활동을 시작하고 나면 그 움직임을 멈출 힘이 없다는 사실을 티오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악과 결탁하기를 멀리하는 일이며 지속하다가 멈추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 시작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살기 위해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악에 휘둘린다. 악이 거대한 밀물처럼 밀려오는 세상에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다. 악의 힘을 휘두르며 살려고 달려나가는 것, 그러다 고꾸라지는 것, 아니면 정원을 돌보고 신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뿐이다. 반대되는 모든 증거에 대항하며.

 

4.

 

마약전쟁은 2003년에 접어들면 일단락된다. 그런데 무엇과 싸우는 전쟁인가?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을까? 전쟁의 선두에 섰던 아트 켈러는 결과에 만족했을까? “미국 내 비 마약위반사범의 3분의 2가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의 해법은 똑같이 무익한 비 해법이다. 그 질병은 무시한 채, 더 많은 감옥을 짓고 더 많은 경찰을 고용하며 증상을 치료와 관계없는 일에만 수십억 달러를 썼다. 내 관할 구역에는 마약을 끊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량 건강 보험이 없으면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며, 그런 보험에 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조금을 받아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대기자 명단이 6개월에서 2년 정도 밀려 있었다. 코카인 농작물을 못 쓰게 만들고 아이들을 유독물질에 중독시키는 데에 거의 20억 달러를 쓰고 있으면서, 마약을 끊고 싶지만 돈이 없는 사람을 도울 돈은 없었다. 미친 짓이었다. / 아트는 마약 전쟁이 외설스런 부조리인지, 부조리한 외설 행위인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두 경우 모두 피로 더럽혀진 비참한 광대극이었다.”

 

미국은 멕시코 마약을 소탕하기 위해 거대 농장에 대량의 고엽제를 살포한다. 붉은 양귀비 꽃은 전부 불타오르고, 고엽제는 사방으로 날린다. 그렇게 살해된 지역은 어떤 농작물도 자라지 못하는 죽음의 땅이 된다. ‘개의 힘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거대한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서는 다른 악의 힘이 필요하다. 아니면 그저 신을 희망하거나.


어느 쪽이건,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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