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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끌림]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2012, 열린책들.

 

욕망은 결핍에서 나온다. 끌림은 갈망에서 나온다. [끌림] 안에는, 인간의 갈망과 그로 인한 약함이 담겨 있다. 인간의 가장 연약하고 부드러운 부분은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어머니, 가족, 연인, 이해자, 그런 관계들이 사람을 에워싸고 지배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상처받고 가슴 떨리고 갈망을 한다. 이 책은 연애소설치고 달콤한 로맨스는 없지만, 대신 관계에 대한 갈망과 연약함이 어떻게 사람을 뒤흔들고 끌어당기는지가 나타난다.

 

[끌림]의 소재는 감옥, 여자, 빅토리아 시대다. 밀뱅크 여자 교도소와 그 죄수들, 책의 화자인 두 명의 여자,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사회와 관습이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처음 봤을 때는 참, 퓨전 요리처럼 낯선 조합의 재료들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셋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예를 들어,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밀뱅크라는 실제의 감옥과 빅토리아 시대라는 사회적인 감옥이 등치되면서 어우러지는 부분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미혼 여자라면, 그것도 노처녀라면, 게다가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어두운 열정을 품고 있다면, 사는 게 감옥의 죄수와 같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화자인 마거릿이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감옥 방문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갇힌 감옥을 자각한다.

 

이야기는 마거릿과 셀리나 두 여자의 일기로 교차 진행된다. 마거릿은 숙녀출신이고, 우울증을 겪고 있다. 친밀하게 지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큰 충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친구분이었던 살리토 씨는 그녀에게 감옥에 여죄수들을 교화하러 방문하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한다. 죄수들에게는 숙녀의 모범과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거릿은 무슨 일이라도 할 일이 필요했기에 제안을 받아들인다. 셀리나는 감옥에서 만난 영매다. 젊고 아름답고 차분하며, 다른 죄수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그녀는 강령회 중 한 사람을 다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놀래켜 죽게 만들었기에 감옥에 갇혔다. 죽은 사람은 그녀의 후원자였다. 책의 첫 장면은 바로 이 사건부터 시작한다. 법정은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잘못은 그녀가 불러낸 영혼이 했지만, 영혼의 죄를 입증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셀리나가 갇힌다. 이후 마거릿의 일기에서는 밀뱅크에서 둘이 만나게 된 후의 이야기가, 셀리나의 일기에서는 사건이 있기 전 셀리나가 영매로 생활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둘의 이야기는 동등한 것 같지만, 독자는 마거릿의 시점에 더 잘 이입한다. 마거릿의 일기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그녀는 밀뱅크 감옥의 면면을 묘사하고 그에 대한 감상을 적는다. 걱정거리나 흔들림, 고민, 추측 또한 솔직히 기록한다.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것도 그녀다. 반면 셀리나의 일기에는 내면의 고민이나 고백은 없다. 일기 아닌 사무적인 일과의 기록도 종종 섞여있을 정도다. 어쨌거나 셀리나의 일기는 과거의 기록이기에 현재 마거릿과의 사랑에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독자가 따라가기에는 마거릿의 시점이 보다 우세하다.

 

마거릿에게는 문제가 있다. 어떤 문제인지 중반까지 결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짐작하기는 쉽다. 그녀는 우울증을 겪고 여자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자살은 죄이며, 자살미수자는 감옥에 갇힌다. 마거릿은 높은 집안 출신의 숙녀라는 이유로 감옥의 여자들과는 다른 처우를 받는다. 죄수가 되는 대신 약을 처방 받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자신이 다른 여자들과는 이질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더불어 그렇기에 다른 여자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강박을 죄책감처럼 품고 있다. 결혼식 때 쓸 천의 무늬로 꺅꺅거리며 수다를 떨거나, 어머니 말에 순종하며 집안에서 조신하게 지내야 한다. 이것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굴레다. 이에 순종하는 마거릿의 미래는 늙어가는 어머니 옆에 진흙색 드레스를 입고 노처녀인 채로 굳어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마거릿은 여전히 어머니에게 순종할 수가 없다. 아버지 없는 집안에 있는 것도 힘들고, 감옥에 가는 것을 그만둘 수도 없다. 그녀는 밀뱅크 감옥의 척박함을 묘사하면서, 잔인하지만 눈을 뗄 수 없다고, 기묘한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처음엔 그로테스크한 예술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과 비슷한 줄 알았다. 아니면 밀뱅크의 비일상적인 척박함이 오싹하지만 좋은 구경거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마거릿이 감옥 방문을 그만두지 못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녀는 죄수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자기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고. 그녀의 마음 속에는 자기가 저지른 ’(혹은 문제”)에 대해 마땅한 처벌을 받고 있지 않다는, 스스로라도 자신을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집에 있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꺼끌한 사실을 되씹는 것보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것이 편안하다. 마거릿은 자신 역시 죄수들이나 교도관들처럼 밀뱅크에 사로잡혔다고 느낀다.

 

셀리나. 그녀와 친밀해지면서, 마거릿이 감옥을 방문하는 것은 그녀를 만나기 위한 것으로 변한다. 셀리나가 영매라는 점은 셀리나와 마거릿의 삶에 새로운 차원의 감옥을 더한다. 영혼을 보는 영매가 된다는 것은 빨간색을 보지 못하는 색맹들 사이에서 홀로 색을 보는 것과 같다. 화려한 색채들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도, 이해 받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한번 보기 시작한 것을 잊어버릴 수도 없다. 마거릿은 이 이야기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힘들 게 뭐 있을까, 그녀의 삶이 바로 그렇게 외톨이였는데. 그리고 셀리나의 설명에 이끌려 이라는 두 번째 감옥을 느낀다. 우리는 의복이나 육체에 얽매여 살지만, 영혼 상태가 되어 자유로워지면 몸이나 성별 따위는 소용이 없다. 그것이 영혼과 영매의 시점이다.

 

이제 감옥은 마거릿 개인의 몸으로 옮겨온다. 셀리나가 그녀의 인식을 확장시킬수록 마거릿의 감옥은 견고해진다. 대신 이는 자유를 약속하는 감옥이다. 몸을 감옥으로 느끼기 시작하면, 그에 따른 성별, 나이, 체면, 그런 것들은 모두 벗어버릴 수 있는 대상으로 변한다. 마거릿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셀리나와 같은 종류의 감옥에 갇혀 있음을 느낀다. 밀뱅크 감옥에 가지 않아도 마음이 충분히 편안하다. 그 동안 답답했던 이유는 자신이 갇혀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갇혔으니까. 탈출은 지상명제고, 기다리는 것은 해방이다.

 

그리고 반전이 있다.

 

영혼, 영매,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이야기. 이게 어디까지 진짜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런 이야기에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 끌린다는 점은 확실하다. 끌림은 갈망에서, 갈망은 연약함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책의 여자들은 모두 귀퉁이가 짓무른 잎사귀처럼 마음 한 켠에 연약함이 존재한다. 멀쩡히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렇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약하고 부드러운 부분을 살살 건드리고 달래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상대방도 동일한 약점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영혼 이야기는 배경이 빅토리아 시대이기에 어울리는 소재다. 덜컹거리는 테이블이나 어둠 속에서 빛나는 손자국 같은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패티코트나 양복을 입은 유럽인들이어야 할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여자로서, 혹은 사람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갇혀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관계가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는가, 우리는 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발 더 나아가, 지금 쥐고 있는 한 줌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를 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관계의 어긋남에 대한 날카로운 공감을 느낄 것이다.

 

좋은 반전이 그렇듯, 이 책도 다 읽은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색다른 시선으로 읽힌다. 책을 다 보고 나면 첫 장면으로 돌아가보기를 권한다. 셀리나가 감옥에 들어가는 이유가 되는 사건 말이다. 그 장면에서 셀리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읽고 영매의 현실을 알게 되면, 현실 세계에 그녀가 어떻게 발 디디고 서있는지가 보인다. 거기에 그녀의 약점이, 홀로 내던져진 불쌍한 소녀가 갖게 되는 약점이 있다. 이를 통해 글 안에서는 뚜렷이 표현되지 않은 그녀의 연약함과 갈망을 추측해볼 수 있다. 셀리나는 이야기의 반을 담당하는 인물인데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기에 놓치기 쉽다. 마거릿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셀리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길. 책을 읽은 후의 여운이 훨씬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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