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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딱히 좋아하는 계절은 없는데, 특히 더 싫어하는 계절은 있다.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겨울, 그다음은 여름, 봄, 가을. 추위가 많이 가셨다고는 하지만 얼마 전처럼 맹추위가 온 세상을 덮을 정도라면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겨울이 싫다.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은 기본이고, 그때 내가 사는 이곳에 내린 눈은 30cm정도였다. 그러고도 계속 내리는 눈이었다. 정말 오들오들 떨면서 보낸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하게 싫다. 날씨가 조금 풀리고 기온이 점점 올라간다고 해도, 지금의 추위가 금방 가시지는 않을 듯하다. 겨울이니까 추운 게 맞는데, 이번 겨울의 혹독함은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기도 한데, 앞으로 이런 겨울이 또 오지 말란 법도 없으니 걱정이 앞선다. 또다시 겪을 추위를 생각하면, 어쩌면 이 책의 저자처럼 겨울 2~3달 정도 따뜻한 나라에서 지내고 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저자의 경우 원래 여행자이지만, 여행자가 아니어도 이런 방식의 겨울나기는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을 정도다.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 그녀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도 있고, 한 번 다녀왔던 곳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간 곳도 있다. 낯선 지역에서 살아보면서 그곳을 있는 그대로 담아보려 애쓴 흔적도 보이고, 다시 찾아간 곳에서 언젠가의 기억이나 감각을 불러오기를 바라는 애달픔도 느껴진다. 아예 그곳에 자리 잡고 사는 지인들을 방문하고, 인연이 인연을 물고 와 또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고마운 시간을 허락한다.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는 곳이 어디 이곳들뿐이겠느냐마는, 이곳들이 주는 그 보통의 시간에 더해진 특별함이 분명 있을 터였다. 피한으로 간 그곳에서 그녀가 분명 찾고 싶은 어떤 것을 주는 것. 이 지역들은 ‘따뜻한 나라’라는 것과 그녀가 오롯이 쉬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나고 싶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컷 게으름을 피우면서 말이지. 그곳의 생활자가 되어, 그곳의 방식대로 슬로우 라이프를 몸에 바르고, 한정된 시간이지만 그 삶을 만끽하게 되는 것. 혹시라도 그 시간에 모자람이 느껴진다면 다시 그곳을 향해 짐을 꾸리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품게 한다.

 

사람들이 어딘가 달랐다. 모난 곳이 없는 것 같다고나 할까. 목소리도 낮고, 몸집도 자그마하고, 키도 작은 사람들. 눈이 마주치면 잘 웃었다. 매사에 서두르는 법도 없이 느긋했다. 이방인에게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는 일도 없었다. 적당히 더 붙여 부르고 부른 만큼 설렁설렁 깎아줬다.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싸우는 사람도 없었다. 그악스러운 일상은 간 곳 없고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물가의 조약돌처럼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둥글둥글한 삶. 이곳에 머물면 어쩐지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245페이지. 치앙마이)

 

이 책의 제목에 딸려오는 부제가 마음에 드는 이유다.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쉴 수 있는 체류 여행’이라는 어감이 좋았다. 그런 지역 사람들의 특징 중에 ‘느긋함’이 있다는 것이 부러워지면 찾아가고 싶어진다. 그게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게 당연한 일상이라는 게 필요해질 때 그곳을 향하고 싶어질 것 같다. 여행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흥분과 설렘, 어딜 ‘다녀오는’ 잠깐의 외출 같았는데, 저자는 이 여행에서 ‘체류’라는 제법 긴 시간의 외출을 그린다. 그것도 이 추운 겨울에 딱 맞게, 정말 여기를 피하고 싶은 순간에 말이다. ‘따뜻함’을 넘어서서 고온의 습한 기운을 주는 때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쪽의 추위를 피해 어디든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을 때 금방 떠올릴 수 있는 곳이긴 하다. 물리적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 체류 기간 알뜰하게 생활하면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는 생활비보다 비싸지 않을 계산도 한 번 해보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조건인 그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런 겨울나기는 정말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지 않을까. (그 시간을 낸다는 게 마음의 문제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이렇게 핑계를 댈 수밖에 없겠지. 현실을 살아가는데 그 시간이란 문제가, 그 마음 먹기가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어서 이 ‘체류 여행’을 실행에 옮기기에도 선뜻 가벼운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저자가 여행자여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여행 경험으로 생긴 노하우와 그녀의 직업이기도 한 여행에서만큼은 크게 얽매이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

 

이렇게 더운 나라 한 곳에 갈 때마다 두 달여의 시간을 그곳에 머물면서 현지인처럼 생활하는 그녀다. 그 시간 동안 머물 방을 구하고, 짐을 풀고, 가져간 책을 꺼낸다. 가끔 생각한다. 여행자들의 짐 속에서 책이 나올 때마다, 다른 필요한 것을 꾸리기에도 벅찬 여행 가방일 텐데 책을 저렇게 많이(?) 가져가도 괜찮을까 싶은. (저자의 짐 가방에서 나온 책은 열권이 넘는다. 열다섯 권일 때도 있다) 일단은 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질 거고, 그곳의 많은 것을 보고 듣기에도 모자랄 시간일 텐데 여기서 가져간 책이 얼마나 여유롭게 읽힐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런데도 그녀의 짐 속에 책이 당연하게 들어가 있다는 게 이해가 되는 거다. 나 같은 게으른 독자도 며칠 동안 어딜 다녀올라치면 ‘무슨 책을 가져갈까’ 하는 고민부터 하는 걸 보면, 이상하게 공감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왜인지... 저자와 나의 차이라면, 나는 기껏해야 두세 권, 그것도 무거워서 짐을 꾸린 가방에서 한 권을 꺼낼까 말까 고민이 더해진다는 것뿐이다. 하긴, 한두 번도 아닐 텐데 그녀에게 이런 짐 꾸리기는, 그 안에 책을 몇 권을 가져가든, 그녀만의 노하우와 필요에 의한 것일 테다. 제법 오랜 시간 머물기 위한 당연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돌아가면 입지도 못할 옷을 굳이 사 입는 이유는 뭘까. 현지인 혹은 다른 여행자들과 섞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조금 더 과감하게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단지 편안해 보여서 일수도 있다. 어쨌든 여행지에서 옷은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되어준다. 나도 돌아갈 때면 발리식 나염 원피스 한 벌이 배낭 속에 들어 있지 않을까. (52페이지. 발리)

 

이곳에서 보낸 3주 동안의 나를 돌아보니 마치 10년 만에 만난 옛 애인에게서 변하지 않은 점만을 찾아내려고 안달 난 고집스러운 여자 같았다. 세월과 함께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면을 인정하지 않고 비명을 질러댔다. 당신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고. 어차피 내가 알던 그 사람도 그라는 사람의 지극히 적은 부분일 뿐이었다. 나는 그걸 전부라 믿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했을 뿐이고.

이 거리의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는 이 도시의 사람들의 달라지지 않은 마음도 남아 있을 것이다. 단지 이제 이방인의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이 도시로 돌아왔나 보다. (392페이지. 라오스)

 

이 책이 여행에 관한 세세한 설명서는 아니다. (여행 팁을 보고 싶다면 이 책에 따라온 소책자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저자가 머문 그곳의 시간에 대한 감상에 가깝다. 낯선 땅에서 보고 듣는 것들에 찰나로 찾아오는 울컥거림도 있고, 그곳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도 있다. 그곳에서의 체류 시간을 통해 저자의 가슴 속에 저절로 담긴 어떤 것들이 자신이 내일을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곳의 겨울을 피해 따뜻한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일 테다. 그 시도가,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싶은 방식이 궁금하다면 만나도 좋을 책이다. 추운, 지금...

 

 

 

 

딱, 이러고 싶어서 떠나는 건지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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