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재처럼 - 자연으로 상 차리고, 살림하고 효재처럼
이효재 지음 / 중앙M&B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집에 김장을 했다. 어떤 집은 몇 백 포기씩 한다지만, 우리는 식구가 적어 삼십 포기 정도를 한다. 그것도 결혼한 언니들이 가져갈 몫까지 하느라 그 정도다. 집에 있는 두 식구 먹어야 얼마나 먹는다고, 게다가 김치는 그리 많이 먹는 편이 아니어서 나는 김치에 대한 애착(애정? ^^)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왜 이렇게 많이 담그느냐.’, ‘대충대충 하자.’, ‘그냥 사먹으면 되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직접 하고 그러냐.’ 하면서 엄마에게 투덜댄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손이 너무 많이 가고 힘이 드니까 좀 편하게 먹고 살자는데 말이다. ‘김치 뭐, 그냥 담그면 되지’ 하겠지만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김장을 하는데 보통 3일 이상이 걸린다. 배추 손질하고 절이고, 배추 속 준비하고 담그고……. 어렵고 힘들다. 김치 담그기, 그리고 김치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음식들이 가벼운 인스턴트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시간과 정성 노력이 필요한 것들뿐이다.

솔직히 고백하겠다. 얼마 전에 집에 김치가 없어서 곧 김장을 할 것이니까 담그지 말고 그냥 사먹자고 해서 주문해서 먹었다. 맛있게 먹긴 했는데 뭔가가 많이 서운하다. 그게 뭘까 고민 해봐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좀 서운한 끝맛을 느꼈을 뿐이다. 게다가~!! 사먹는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려니까 너무 아까워. ㅠㅠ 그 이상한 조화는 무엇인고. (그래서 정말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김치를 담가먹는구나.)

한때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나는 손맛이라는 것은 타고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같은 설명서대로 끓인 라면도 누가 끓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걸 보면 그 ‘손맛’이라는 거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손으로 만드는 음식, 손으로 만드는 작은 소품들, 같은 것을 보고 눈에 담았는데도 그걸 또 멋스럽게 활용하는 것 역시도 타고나는 거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큰언니는 쓰레기도 주어다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손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에는 배우고 노력하면 된다지만 그 노력 이상의 것을 해도 타고난 사람의 것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특히나 이효재의 이 책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한복 디자이너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뛰어난 살림의 대가로 이미 유명한 분이라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만난 이효재는 한복이란 것 하나의 뛰어난 재능이 아닌, 흔히 어머님들이 그 내공을 자랑하는 ‘살림’의 고수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그녀의 손을 통해 만들어내는 모습은 신의 경지에 가깝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미치도록 부럽다.)


처음에는 외딴집에 산다는 그녀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래도 일 하는 사람이고, 살림도 잘 하지만 굳이 그렇게 외진 곳에서의 생활이 필요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본 누구나가 이런 마음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그곳에서 살고 싶다.” 라고. 흔히 어른들 하시는 말씀이 (우리 엄마도 그렇지만) ‘아파트는 싫다.’, ‘땅 밟고 살고 싶다.’ 라고 바라는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녀의 집은 공간도 넓었지만 말 그대로 ‘자연’이었다. 그녀가 직접 일구는 땅, 그녀의 손길 하나로 반짝거리는 집안의 살림살이들, 구석구석 모든 것이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나 이 책의 페이지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감탄사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담아내던 모습들. 아무리 만들어내도 이렇게 만들어낼 수 없지 않았을까 싶은 경지에 놀라울 뿐이었다. 예전에 우리 외할머니 댁은 우물이 있을 정도로 옛날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놓은 민속촌 같은 집이었는데, 그녀의 집이 그랬다. 직접 밭에서 일구어낸 채소들을 마당의 한편에 있는 샘 같은 곳에서 씻어내고, 흔하디흔한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같은 것이 아닌 장독 항아리를 열어 장을 꺼내고,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를 느끼게 해주는 것 투성이었다. 오늘날 노래를 부르듯 외치는 친환경 그대로 말이다. (아~ 배고파.) 음식 편식이 심한 나 같은 사람도 그 밥상을 보는 순간 손도 안 씻고 덤벼들고 싶을 정도로 자극한다. (경고한다.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이 책을 펼쳐들도록~!)


우리의 토속 음식부터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까지 모든 음식의 역사가 담겨 있는 듯하다. 깊은 맛을 내는 장을 이용하고, 모든 재료를 땅에서 직접 얻어낸다. 물론 그녀의 손길로 잘 키워서 말이다. 기본적인 재료부터 양념까지 사용하는 도구까지 모든 것들이 옛 방식이다. 정말 하나도 편하고 쉽게 만들어 낼 수 없는 절차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들어내는 그녀의 정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모든 음식들을 함께 먹어줄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그녀의 살림이야기에 남편이 자주 등장한다. 그녀가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내고 살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은 그 모든 것의 대상인 남편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가 맛있게 만들어낸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 나는 그녀가 도시락을 싸놓고 출근을 한다는 말에 감동했다. 그녀는 출근을 하고 남편은 집에 있고, 흔히 그런 경우 알아서 챙겨 먹겠지 싶은 마음이 자주 있었던 나에게는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나가는 사람을 위한 도시락은 봤어도 집에 남겨진 사람을 위한 도시락을 전혀 생각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 그녀의 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기서 나는 또 하나를 배운다. 도시락은 나갈 때만 싸가지고 가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삶은, 그녀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 남편과 그녀 두 사람의 공동의 삶이었다. 부부가 그래야 하거늘…….

한 권의 책에 그녀의 레시피가 몽땅 담겨있다. 일반적인 요리책 속에 있는 레시피와는 사뭇 다르다. 오직 그녀가 고전의 방식 그대로 만들어내는, 그녀가 직접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생생한 장면들을 담은 사진에 그녀만의 음식들이 눈에 그대로 담을 수 있게 참 아름다운 색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의 소중한 레시피와 함께.


그녀의 손재주 하면 음식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뚝딱 요술 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의 손끝에는 분명 요술 방망이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 집안의 작은 소품들부터 요리에 필요한 것들까지, 모든 인테리어가 어디서 사다가 보기 좋게 걸어놓은 것이 아닌 그녀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걸 정말 사람이 만들 수 있단 말이야?’ 싶은 것들뿐이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그녀는 비단 한복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적으로 태어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그리고 만드는 자기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 내가 내 손으로 만들어낸 오직 ‘그 것’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아, 이 책 한권을 모두 스캔을 떠도 모자랄 지경이다.)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고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동안 내가 못한다고 포기했던 것들, 이런 손재주 부럽다고만 외쳤던 것들이. 사실은 그걸 만들면서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저절로 포기되었던 것들이었는데 말이다. 흔히 말하는 ‘정성’ 같은 거. 그걸 만들면서 사용할 사람에 대한 애정과 뿌듯한 내 마음이 같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무언가가 탄생할 텐데 나는 그걸 빼먹고 시도하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이 만들다가 버리고, 다시 시작했다가 만들기를 포기하고, 손대기를 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녀가 그녀의 아름다운 삶과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먹는 음식 하나 집안 살림 하나에도 그 모든 마음과 열정을 담아낸 것을, 그랬기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 그녀의 손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너무도 당연하게.


내가 좋으면 된 거다. 그거면 충분한 거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졌던 생각들은 ‘굳이 뭐 하러 그렇게 어렵게 하나.’ 싶은 것들이었다. 어쩌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생각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편한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생활 방식을 이해 못할 지도 모른다. 이해를 못해도 좋다. 그녀가 좋으면 되는 거다. 그녀가 좋아서, 극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여도 그녀가 좋다면 된 거 아닌가? 자신이 하는 것들, 만들어 내는 것들, 그 안에서 자신이 편하면 된 거고 만족하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녀의 살림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그녀를 따라하거나 배우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는 거다. 배우고 따라하고…….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도 흥분되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는 그녀의 살림 노하우를 훔쳐오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이제 아파트 생활을 고집하던 나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버렸다. 엄마가 원하시는 ‘땅 밟고 사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내 손으로 일구어낸 그 무언가가 음식의 재료가 되어 가족들의 입안으로 만족스럽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생각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 뿌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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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2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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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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