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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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동네 한 집에 있던 TV. 마당이 너른 그 집 대청마루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손등이 반질반질하도록 코를 흘리던 개구장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점잖은 표정을 지으며 안 보는 척 안 웃는척 하는 어른들이 서너분 고정적으로 계셨다.

자꾸만 아이들에게 집에 가라하던 어른들. 꼴밤을 맞으면서도 꾸역꾸역 버티다보면 어른들과 한 편이 되는 순간이 왔다. 일주일에 한 번. 코미디프로그램을 하는 날. 아이들은 아이답게 웃었고 어른들은 어른답게 웃었다.

프로그램 중간쯤에 우스꽝스런 분장을 한 작은 남자와 여자가 나와 말을 주고 받을때면 그 이야기가 뭔지도 모르고 어른들을 따라 까르르 숨이 넘어가게 웃곤 했다. 아버지가 장에 소를 팔러 가다 낳아서 이름이 장소팔이 되었다는 남자와 고추처럼 매워서 고춘자라고 했던 그 사람들이 주고 받던 이야기가 '만담'이라는 걸 조금 더 커서 알았다.

무슨 내용인지는 잘 기억도 안나고 이해도 못했었지만 말을 탁구 치듯 던지고 받던 그이들의 숨가쁜 모습이 기억난다.

'이봐요 장소팔씨~'라고 여자가 불렀고 '이봐요 고춘자씨'라고 남자가 불렀던 것은 기억이 또렷하다.

만담은 내게 경쾌한 재미와 웃음이 보장된 이야기였고 작은 공연처럼 각인되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빈틈없이 잘 짜여진 웃음. 그것이 받쳐주지 않으면 재미도 의미도 없어지는 아슬아슬하고 흥미진진한 곡예처럼 말이다.

 

독서 만담.

두 단어가 갖는 이질감에 살짝 갸우뚱했다. 가장 개인적이고 심지어 고독한 행위라고까지 하는 책읽기와 주거니 받거니하며 상호간 호흡을 들어야 하는 만담이라는 말이 엮인 제목.

어쨌든 배꼽을 잡았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펼쳐 읽기 시작한다.

장서가이자 애서가인 한 남자의 에피소드들이다. 책 한 권을 구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 때때로 비겁해질 수 밖에 없던 일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인 아내와의 이야기, 딸과의 이야기 일상의 모든 일들이 책 이야기와 연관되거나 책 이야기가 일상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옳지! 이래서 만담이로구나. 이해가 된다.

일상과 책이 주고받는 대화. 책을 구하거나 읽거나 하는 일이 일상 밖의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일이며 서로 드러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관계라는 것. 그래서 그 절묘한 호흡에 웃음이 지어지는 것.

 

'책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반문하곤 했다.

나는 책을 좋아하나? 책이라는 물성을 지닌 대상을 좋아하는건가? 책 속에 있는 의미나 지식을 좋아하는 건가? 아님 문자를 읽고 해독하는 것이 좋은건가? 책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거지? 하고 말이다.

안방을 서재로 쓸만큼의 여유나 배짱이 없기에 딸 아이가 쓰던 방에 책을 쌓아두고, 옷무덤과 책무덤을 번갈아 쌓고 부수고를 반복하지만, 나는 책을 좋아한다.

비슷한 일상에 비슷한 정보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새록새록 새로운 의미와 지식을 알아가는게 재밌는 나는 책을 좋아한다.

늘 쓰던 단어들을 조금은 비틀어 읽고 좀 다른 의미와 붙여서 읽어보는 것이 흥미로운 나는 책을 좋아한다.

오래전 부터 고리타분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나의 취미는 '독서'였고 여전히 '독서'다.

 

일상과 연결되는 책들. 희귀본에 대한 이야기들. 그런 책들 속에 내가 읽은 책이 툭 튀어나올때면 격하게 반갑다.

내가 어렵게 구했던 책이름이 나오면 고개까지 끄덕이며 동의하게 된다.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맞아 맞아' 하며 오래 웃을 이야기다.

책 읽는 사람들이 궁금한 사람들은 '정말 그래?'라며 호기심이 들 만한 이야기다.

 

'이봐요 박균호씨~'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처럼 불러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오래 웃으며 읽어냈다. 책 읽기가 부담스러워서..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꼭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괜히 만담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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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2-28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저보다 더 정겹게 잘 쓰시네요. 박균호씨라는 사무적인 호칭이 정답게 느껴질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