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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스틴 ㅣ 평화징검돌 8
권윤덕 지음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4월
평점 :
시골 마을에서 소소하게 자라온 탓에 사회적인 일에 무관심했던 나였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뉴스를 즐겨보고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3년 봄이었던가? 학교 내에 있었던 사건으로 친구들과 피켓 시위를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정치란, 역사란 나와 무관한 삶이 아니란 것을. 이후 동아리 활동을 하며 근현대사를 알게 되고, 내가 겪는 현재의 삶은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광주에서 온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내가 알지 못했던 역사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근현대사에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16살 청소년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책을 받아들고 M16과 하얀 동그라미가 그려진 총을 보고 순간, 숨이 멈칫했다. 계엄군의 총 M16. M16의 눈으로 그려진 1980년 광주의 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표지를 열었을 때 보이는 얼룩덜룩한 군복의 무늬가 나타났다. 왠지 모르게 군복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요즘 내가 만나는 군인은 그렇지 않은데, 어릴 때 만났던 군인의 삼엄한 눈빛이 떠올랐다. 삼엄함을 넘어 공포감을 자아내던 그 눈빛이 나에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어 그것만으로도 긴장이 되었다.
M16은 계엄군의 총이었다. 광주에 투입되기 전, 폭도와 빨갱이들의 무자비함과 그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교육받은 대로 폭도와 빨갱이들을 처단했고, 그들을 돕는 자들까지도 공격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는 그들의 삶이 광장에 널브러지며 M16은 느끼게 된다. 크림빵을 든 딸, 트럭에 실려 간 친구, 장사 나온 우리 엄마, 회사에 간 신랑을 찾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가 만난 사람이 폭도나 빨갱이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시민을 향해 서게 된다. 시민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하고 신랑이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빠가 광주에 투입됐던 부대 나왔어. 그런데 다행히도 2월인가 3월에 전역하셨대.”
몇 해 전, 촛불집회가 열릴 때 집회에 나온 사람과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은 방어막을 들고, 죽창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마주한 20대 초반의 또 다른 청년은 일렬로 선 군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반갑게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차마 할 수 없어 멀어져 가는 시선으로 맥없이 서있는 모습이 느껴졌다. 그들의 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상명하복의 문화가 지배하는 군인이라는 조직에서 자신의 신념과 뜻을 달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법을 날카롭게 공격하던 대치된 상황, 그러나 불법은 어디에서 명명되었으며, 누가 규정한 것이었던가?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잃은 시선은 허망했다.
만약 그 날, 아버님께서 광주에 계셨더라면, 나는 지금 아버님을 원망했을까? 상상하기 싫은 생각을 하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 날, 민주주의를 논한다는 이유로 희생되었던 많은 분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기 위해,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