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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 상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틱낫한의 치유 수업
틱낫한 지음, 권선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 *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틱낫한 스님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지하철로 거의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라 이동하면서 읽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틱낫한 스님의 책 <화 anger>를 비롯하여 명상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스님의 책을 통해 명상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되었다. 즉, 예전에는 조용한 공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리가 먹고, 걷고, 사랑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명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상실과 슬픔,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 이 책에는 고통을 외면하는 대신 올바로 마주하고 돌보는 방법, 강한 감정의 폭풍을 다스려 평온함을 찾는 방법, 고통을 자양분으로 삼아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 등이 담겨 있다. 실제로 명상을 하면서 내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방법들도 소개되어 있다.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왜 연락도 안 했어?" 하자 "지방이라 멀어서..."라고 말끝을 흐리던 지인은 항상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해 주신 아버지가 독감으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족 모두 충격이 크다고 했고, 본인은 때때로 환청이 들릴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오래 고생하시고 가시는 것보다는 낫지...라고 말해준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이런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옆에 있는 가족으로서는 "그래도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5년이라도, 아니 1년이라도 더 살아계셨더라면..." "전화를 좀더 자주 했더라면...""좀더 자주 찾아뵈었더라면..." 등 후회가 밀려들 터였다.
위로의 말을 하는 대신 이 책을 내밀면서 마침 여기까지 오는 길에 슬픔과 상실과 마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읽고 있었다고 했다. 책장을 넘기던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더구나 그것이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일이라면 마치 발 아래 땅이 사라진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라는 문장을 보고 자신이 정말 그렇다고 했다. "사랑하는 이는 단지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모든 것에서, 구름 속에서, 아이 속에서, 바람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와 같은 문장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아픔을 내가 똑같이 느낄 수는 없지만,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눈 앞에서 사라졌는데, 이제는 손을 잡을 수도, 포옹할 수도,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데 사랑하는 이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와 같은 말이 가슴에 와닿을 리가 없다. 그래도 말했다.
"나는 너의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릴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이 죽는 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우리 몸을 벗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아버지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 말을 듣더니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날이 무척 춥고 좋지 않았는데, 입관할 때 따뜻한 햇살이 비추었고, 그 때 아버지가 곁에 계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정말로 아버지가 곁에서 함께 하셨을 것이라고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실 거라고 말해 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나 또한 지금까지도 상실을 경험했고, 앞으로는 더 견디기 힘든 슬픔과 상실을 겪을 것이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식되어 나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것은 떠나간 사람이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땅에 떨어진 빗방울이 금세 사라지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증발해도, 여전히 공기 중에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상태의 변화를 겪을 뿐 죽음이 존재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우리의 부모님과 조상들이 우리 몸의 모든 세포 속에 살아있으며, 우리는 언제까지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슬픔과 상실에 잠식되는 대신 고통 속에서 행복이라는 연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타계하셨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인생의 지혜를 전해 주시며 생생하게 살아계신 것처럼 말이다.
<책 속의 문장>
이 책에는 필사하기 좋은 문장들이 많이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며 좋은 구절들을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깊은 명상을 하는 느낌이 들고 어수선하던 마음에 고요와 평화가 찾아든다. 늘 옆에 두고 필사하면서 고요와 평화를 맞이하려 한다.
폭풍이 몰아칠 때 나무 꼭대기에 있는 잎과 가지는 거세게 흔들립니다. 나무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아주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나무의 몸통으로 시선을 가져오면, 매우 평온하고 고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튼튼하고 견고하며, 흙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폭풍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4~25쪽)

우리는 모두 자비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자비에 대한 마음챙김 수행을 하면 내면에 있는 자비의 씨앗이 강해지고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이 됩니다. 내면에서 평화와 기쁨, 행복을 더 많이 일구면 슬픔과 절망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와 싸우거나 억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긍정적인 씨앗에 선택적으로 물을 주고 부정적인 씨앗에는 물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81쪽)

<작가 정보>
틱낫한Thich Nhat Hanh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그리고 영향력 있는 영적 스승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26년 베트남 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에 승려가 되었다.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했으며, 불교 사상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며 다양한 사회 운동을 했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각지를 돌며 반전평화운동을 펼쳤고, 이로 인해 정치적 탄압을 받아 1966년 고국 베트남을 떠나야 했다.
1967년에는 노벨평 화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여 플럼 빌리지 Plum Village라는 참여 불교 국제 공동체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창의적이고 다양한 수행법을 전파했고,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방문자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을 안내했다. 그 결과, 플럼빌리지는 현재 유럽 최대의 불교 사원이자 전 세계 수행 센터의 중심지가 되었다. 80년 가까이 가르침을 펼치며 명상과 마음챙김, 참여 불교에 대한 글 뿐만 아니라 시와 동화, 전통 적인 불교 저술에 대한 해설을 아우르는 백여 권의 책을 펴냈다. 2014년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고향인 베트남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던 중 본인이 출가했던 베트남 중부 후에의 뚜 히에우 사원에서 2022년 1월 22일 향년 96세로 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