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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평점 :
아주 고통스럽게, 겨우 읽었다. 이전에도 오츠의 작품인 『좀비』와 『대디 러브』를 읽다 덮은 적이 있다. 현대사회의 각종 미디어, 뉴스 헤드라인을 채우는 폭력적 일상을 산다는 인지 속에서도 유독 오츠의 소설 읽기는 힘들게 느껴진다. 그녀가 택하는 소재가 소설 안에서 전개되는 방식이 주는 현실감이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과 사건에서 획득하는 생동감? 그러한 파도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기록문학처럼 비정한 현실을 담담하게 들려주는데서 압도당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두터운 벽을 사이에 두고 '들여다보았다'는 표현이 나을 것이다. 문학은 허구임을 알고 있음에도 설명하기 힘든, 외면하고 싶은 어떤 감정이 치솟는… 설명이 힘들다.
『그들them』의 배경은 1937년에서 1967년, 대공황 막바지에서 디트로이트 폭동이 일어나는 시기다. 3부로 구성된 작품은 로레타와 그녀의 아들 줄스, 딸 모린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쓰레기장’이라고 지칭되는 빈민가에 사는 열여섯 로레타가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태어난 자녀들의 삶이 부모의 전철을 밟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빈곤과 폭력에 노출된 일상의 삶은 무엇으로,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도 전에 가출을 하고, 집에서 벗어나기를 꿈꾸지만 이 ‘디트로이트’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 거대한 도시 위를 흘러가는 30년 세월은 ‘그들’을 화이트트래쉬의 삶에 붙들어두는 덫이자, 인생 그 자체로 기능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 모두는 시대와 환경의 피해자이다. 대공황으로 인한 아버지의 실직과 몰락, 어머니의 부재중 범죄를 저지르는 오빠. 로레타는 비정한 현실과 동떨어진 사랑의 꿈을 꾼다. 첫 경험 후, 동이 트기도 전에 오빠 브록은 동생의 침대에 누운 버니의 머리에 총알을 박는다. 사건현장을 본 경찰 하워드는 로레타를 강제로 취하고, 임신한 그녀는 웬들이란 성을 얻는다. 첫아이 줄스는 영특하고, 둘째 모린은 외모가 예쁘지만 막내 베티는 그렇지 못해 가정에서도 찬밥 신세다. 한편 2차대전은 대공황으로 침체되었던 이 자동차도시의 경기를 빠르게 회복시키는데, 급격하게 늘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인구수는 인종적 긴장을 불러온다.
산업 사고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줄스와 모린은 슬픔을 느끼기보다 탈출의 꿈을 꾼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가르침을 얻지 못한다. 무기력했던 하워드. 로레타는 무책임하며, 생각을 하기보다는 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존재다. 아이들을 사랑하노라 말하지만 가출한 줄스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가 보내오는 20달러에 더 신경을 쓴다. 언제든 사랑에 빠진 여성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1950년대 웬들 가에서 그나마 모범적인 인물은 열세살의 모린이다. 좀도둑질을 일삼는 베티와 달리, 엄마가 방치한 가정을 돌보면서도 학업에 충실하려 애쓴다. 학급서기를 맡으면서는 비서가 되어 이 가정에서 탈출하기를 꿈꾸지만 학급회의록을 잃어버리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희망이 좌절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줄스는 첫사랑 버니의 아이라 암시되며, 엄마에겐 특별한 존재다. 그녀가 ‘잃어버린’ 아들은 비행기 추락 사고의 현장을 목격하고, 타오르는 불에 매혹되며 이미 두 살 때 가출을 시작한다. 영특함으로 사랑받던 소년은 이제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게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평가를 받으며 자란다. 착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모린이 탐탁지 않은 로레타는 아이의 노동력을 가정에 구속시키며, 침대를 빼앗아 못 자게 하는 등 감정적인 학대를 일삼는다. 결국 성적이 떨어지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아이는 집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른 방안을 떠올린다. ‘돈’을 위해 거리에 나선 것이다. 분노한 계부의 구타로 소녀는 혼수상태가 된다.
줄스는 가출했고, 베티의 비행은 통제불능 상태이다. 엄마의 외모를 닮았지만, 알맹이는 너무도 다른 모린이 화이트트래쉬의 삶을 벗어나는 것을 질시한 걸까? 아니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던 걸까? 로레타는 모린에게 학대와 애정이 공존하는 기묘한 태도를 취한다. 아이의 모범적인 기질이 결국 땅으로 떨어지자, ‘엄마’로 돌아온 것이다. 깨어나서도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은 것인지 의도적으로 단 음식을 주기에, 아이의 외모는 점점 변해간다. 모린이 일어날 수 있도록 보살핀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돌아온 외삼촌 브록이다. 한편 줄스는 부촌에 사는 네이딘에게 한 눈에 반하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자동차를 훔쳐 텍사스로 향하지만 줄스가 병을 얻자 그를 떠나 버린다. 오빠가 남부를 돌아다닐 동안, 육체 안에 잠들어 있던 모린도 깨어난다. 다시 10년이 흘러, 1966년이 되었다.
디트로이트로 돌아온 줄스는 성공한 백부와 연락이 닿아 일자리를 얻는다. 그러나 우연히 마주친 네이딘에게 다시 빠져 들고, 정신이 불안정한 그녀에게 총을 맞아 쓰러진다. 독립한 모린은 비서로 일하며 디트로이트 대학에서 야간 수업을 듣는다. 그녀는 부인과 세 아이를 둔 대학 강사 랜돌프와의 미래,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을 욕망한다. 소설의 시점을 공유하는 두 남매는 모두 부자의 삶에 대해 애정을 느낀다. 분노와 질투가 아닌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다. 줄스는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에 관련되면서, 타오르는 불로 과거를 정화시켰다고 믿는다. 모린은 웬들이라는 성을 떼냄으로써 과거와의 결별을 이룩했다고 생각한다. 정돈된 삶을 ‘경험’한 로레타는 자신의 과거를 수치로 느끼고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감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운 줄스와 자신이 무감각하기에 두려운 모린… 어쩌다 폭동에 가세한 줄스. 그가 인권운동에 투신하계 된 계기와 의도는 이 사건을 조금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게끔 한다.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던 열여섯의 로레타와 스물여섯의 모린의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 결국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모린의 삶… 케네디의 저격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는, ‘여기 디트로이트에도 간단히 총을 맞는 사람이 있잖아’라고 말하는 모린… 줄스의 지적처럼, 정말 모린은 ‘그들’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그들’이라는 단어가 주는 벽의 느낌, 나는 아직 그 너머로 넘어 갈 용기가 없다. 그 존재와 삶을 인지했을 뿐이다.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Lose yourself」, 영화를 편집한 영상이다.
-1990년대 모타운을 배경으로 한 영화 《8마일》은 에미넴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8마일’은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도로 M-102를 가리키며, 부유층과 빈민층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다. 화이트트래쉬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 작품에서, 트레일러에 살며 아들의 동창과 사랑에 빠진 엄마 역은 킴 베이싱어가 맡았다. 『그들』에 등장하는 모린의 연령대와 비슷하지만, 로레타의 이미지에 가깝다. 에미넴이 연기한 래빗은 결국 줄스와 모린의 아이들, 그 다음 세대이다. 2014년 파산이 종료된 디토로이트의 현재와 관련, 오츠의 작품과 함께 생각해볼만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