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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평점 :
16세기는 스페인의 황금시대였다. 그러나 정치·외교적 결합은 영토 내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지 못했고,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의 내적 통일을 위해 가톨릭을 강조한다. 이는 사회·경제적 발전을 시작한 타국에 비해 스페인이 뒤처지는 배경이 된다. 금서 목록의 선포는 출판물의 검열로 문학 발전을 저해했다.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 참전영웅으로, 포로로 붙들려 5년간 노예생활을 한다. 가까스로 돌아온 고국은 짙은 패배감에 빠져 있다. 네덜란드는 독립하였고 무적함대는 영국에 격파 당했으며, 국가는 파산했다. 도덕적 가치를 부르짖던 시절은 역사 너머로 사라졌다. 따라서 그는 당시 스페인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는, 기사소설을 패러디하는 노인 편력기사가 등장하는 소설을 구상한다.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에 푹 빠진 한 노인이 옆집에 사는 농부를 꼬드겨 종자로 삼고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 영감에게 풍차는 거인으로, 창녀는 귀부인으로, 놋쇠 대야는 전설의 투구로 보인다. 따라다니는 시선들은 그를 ‘광인’으로 취급한다. 재미있는 것은 기사소설에 관련된 상황에서만 모험을 빙자한 사건·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다른 주제를 다룰 때 이 이달고의 통찰력과 판단력은 정상이다. 돈키호테는 정말 광인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기사소설을 ‘패러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라 모레나 산맥에서 둘시네아로부터 버려졌다는 ‘설정’의 고행을 시작하는 장면을 보자.
이미 내가 말하지 않았나? 돈키호테가 말했다. 아마디스를 모방하여 여기서 절망한 채 어리석고 분노에 찬 자로 지내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곁들여 용감한 돈 롤단도 모방할걸세. … 그중에서 제일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큰 틀에서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작정이네. (355)
돈키호테가 미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도 기사도와 정의를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광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모험을 계속하는 것일까. 편력기사가 되어 정의로운 이상을 펼치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변화된 스페인에서 기사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적 가치들은 비웃음의 대상이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돈키호테를 조롱하면서도, 그들 역시 기사소설에 통달한 이중성을 보여준다. 작품 초반에 돈키호테의 서재에서 불온서적을 골라내던 신부와 이발사, 미코미코나 공주 행세를 했던 도로테아, 객줏집 주인과 그 가족, 이후 만나게 되는 교단 회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돈키호테만큼 기사소설을 좋아한다. 객줏집 주인은 그 내용이 허구라는 말에 분개할 정도이다.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면서도, 그 때를 상징하는 ‘기사소설’의 가치와 그 상징을 박대하는 당시 스페인 사회의 모순인 것이다.
돈키호테로 대변되는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에서 잘 드러난다. 서문의 ‘자유는 황금으로도 살 수 없다’는 말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이는 세르반테스가 노예 생활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던 인간의 존엄으로, 자유를 강제하는 것을 무자비하게 여겨 자신의 의지에 반해 끌려가는 포로들을 풀어주는 돈키호테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무어 여인 소라이다와 함께 등장한 포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아베드라 아무개는 세르반테스 자신이며,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편력기사로서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그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것이다.
그의 주장은 남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었으며, 최고의 가치는 아름다움과 순결이었다. 결혼 후 ‘집안에 갇혀 살던’ 카밀라, 정인이 있음에도 아버지가 결정한 사람과 결혼해야 했던 루스신다, 천과 망으로 창문을 가려놓은 집에 살았던 클라라는 당시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세르반테스는 목동 마르셀라의 순결에 대한 이야기와 비혼 선언을 비호하는 돈키호테를 통해, 여성 역시 남성과 평등하며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자유의지가 있음을 알린다. 이 외에도 신분 차이와 같은 갈등으로 이뤄지지 못했던 남녀를 맺어줌으로써, 자유연애를 거쳐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을 장려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돈키호테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불도저 같은 인물로 해석되던 시기가 있었다. 시대착오적 인물로, 계몽적 인물로 또 실존적 인물로 해석되기도 했다. 시대별로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작품이 전달하는 힘이 그만큼 생생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황 시절을 그리워하는 대한민국은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던 스페인과 닮았다. ‘섬’을 얻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산초 판사의 욕망 역시 로또 1등을 염원하는 현대인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섰던 산초 판사가 돈키호테의 이상에 어느 정도 공감하여 동화되어 가는 것처럼, 가치 있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열정은 그 온도를 주변에 퍼뜨린다. 출간된 지 400년이 지났지만 돈키호테가 우리 시대에 의미를 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사랑’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 대한 열정과 그 도전이 하찮게 느껴지더라도, 그 시도가 몰가치 한 것이 아님을 돈키호테는 보여주고 있다. 비록 수레에 실려 집으로 돌아오지만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걸었던 그의 모험은 진정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