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4주
어느덧 8월도 3일밖에 남질 않았네요. 올해 여름은 길다지만 날짜도 날짜인지라 점점 해는 짧아져가고 후덥지근한 느낌 대신 등 뒤에는 어느덧 오렌지빛 노을이 아름답게 드리우곤 하죠. 요즈음에는 유난히도 액션, 스릴러가 강세지만 그래도 이 계절에 어울리는 잔잔한 영화 몇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1.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
전국적으로 개봉한 극장은 얼마 없겠지만 감동만큼은 최고인 작품. 한 달 전에 개봉한 '오션스'처럼 다큐멘터리입니다. 혹시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를 읽어보신적이 있으신지요. 막장인생을 사는 아이들을 담임 에린 그루웰이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쳐 사람 만드는 내용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도 비슷한 이야기인데 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11명의 가난한 아이들이 호세 안토니오 아브루라의 가르침으로 음악을 배워 차츰 인간성을 되찾는 내용입니다. 처음 이 작은 오케스트라가 생기고 35년 뒤 음악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단원 수는 30만명에 이르게 됩니다. 그 이름하여 '엘 시스테마'가 탄생한 것이죠.
믿어지지 않겠지만 역시 예술의 힘은, 특히 음악의 힘은 대단한가 봅니다. '음악은 공통의 언어다'라는 말이 있듯이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변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브루의 무모한 아이디어가 가난의 악순환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구원했는지, 그리고 음악의 힘이 어떻게 수십만 명의 삶을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2. 소라닌
일본영화답게 잔잔한 감동이 돋보이는 작품이네요. ^^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에 다니는 메이코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밴드활동에 열심인 타네다. 둘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6년째 연애중인 이십대 동거커플입니다. 메이코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는 타네다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소라닌’ 녹음을 준비한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미래가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하고 어느날 크게 다퉜는데 잠깐 나갔다던 타네다는 오토바이 사고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되었는데...
예전에 If only...라는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연인이 죽기 전날로 돌아가 잊지 못할 사랑을 하고 현실로 돌아와, 마지막은 노래를 부르며 연인을 회상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도 노래는 연인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도구이자 좋았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매개체입니다. 그 노래 제목이 바로 영화와 동명인 '소라닌'이지요. 과연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난 그 공허함을 음악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3. 그 남자가 아내에게
자유분방한 성격의 사진작가 슌스케와 남편의 내조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쿠라는 결혼 10년차 부부. 남편 슌스케는 자신을 향한 아내의 애정이 귀찮기만 하고,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갖기 원하는 사쿠라는 남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결혼 10주년 기념 오키나와 여행을 제안합니다. 이번 여행에선 싸우지 말자고 굳게 약속한 두 사람,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풍경을 뒤로 한 채 호텔에 누워만 있던 슌스케는 밖으로 나가자는 사쿠라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사진기를 들고 아내와 함께 나섭니다. 결혼 반지를 두고 왔다며 숙소로 되돌아간 사쿠라는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그녀를 한없이 기다리던 슌스케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젊은 사람들 취향이 아닐수도 있지만, 전형적인 일본의 양처가 나온다는 점이 다소 시대에 뒤떨어졌을수도 있지만 아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사진이라는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하나의 예술 영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진중한 철학적 관점이 들어간 영화는 아니지만 슬프고도 잔잔한 감성이 깃든 작품입니다. 가을바다가 그리우신 분들은 이 작품을 보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겠네요. 가을을 앞둔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여름에는 공포물이나 판타지가 잘 어울리겠지만 지금처럼 창밖에 저녁 노을이 드리우고 잔잔한 피아노곡을 들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픈 계절엔 잔잔한 영화가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마음이 허전할 때, 생기 넘치던 여름을 넘어 조용한 풍경이 그리울 때 조용히 감상해도 좋은 영화들이지요. 유감스럽게도 요즘 날씨가 궂어 어울리지 않을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바탕 열기가 가시고 나서 잔잔한 감성이 그립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