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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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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에서 음의 세기를 '점점 세게' 하도록 지시하는 셈여림표를 크레센도(crescendo)라 한다. 이 크레센도가 참으로 잘 느껴지는 곡 중 하나가 라벨의 볼레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허기의 간주곡'을 마지막까지 읽고 중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그 곡을 다시금 찾아 들어보았다. 잔잔하듯 얕게 그러나 분명하게 전개되는 두드리는 소리의 행진은 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이 크레센도의 정서는 '허기의 간주곡'에 약한듯 하나 아주 분명히 깔려있어 이야기를 묘한 긴장관계 속에서 풀어지게 한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감돌았던 막연한 불안감은 '오늘'의 대목에 들어서면부터 탁 하고 풀어진다. 갑자기 등장한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나는 황급히 책 표지의 작가의 이력을 다시 읽어내려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확인한 후에야 읽기를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에텔이 피난민 시절을 '마치 동전 한 닢, 작은 핀, 담배꽁초 따위를 찾느라 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비유한 것처럼 나는 이 소설을 그렇게 읽어내린 느낌이었다.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좀 더 높은 곳에서 전체를 아우르면서 관망하고 싶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그걸 놓쳐버린 것이었다. '나'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는 것도 모른채 에텔의 이야기와 그 입에서 나오는 어려운 프랑스 이름과 역사적 사실을 눈으로 훑어내리는데만 급급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여타 한국전쟁문학처럼 이 역시 그 혼란의 시기를 지나온 역사소설이 아닐까, 어느날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했던 한 소녀의 성장소설인 것일까 내 나름대로 이 소설을 파악해보기 위해 머리를 굴려가며 읽었다. 하지만 이 모든게 허튼 짓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의 존재의 기원을 찾는다면 어느나라 사람이기 전에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고 살아가 태어난 존재일 것이다. '나'는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그 익숙한 파리 거리들의 이름이 익숙하게만 느껴졌을 것이고 벨디브 자전거 경기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거라 생각한다. 결국은 그런게 아닐까. 프랑스 193,40년대를 떠올리며 모리셔스섬으로 대표되는 허세를 꼬집으면서도 에텔을 통해 관계와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대단할 따름이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우리엄마는, 우리아빠는"하며 하는 이야기의 배경이 이렇게나 거대한 역사의 한 맥락을 잡고있으면서도 한 사람과 삶에 대한 조명도 할 수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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