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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ㅣ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20세기에 들어와 우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유파와 양식과 언어를 갖게 됐다. 예전에는 하나의 양식이 종종 수세기 동안 유지되곤 했지만, '모던'시대에 들어와서는 예술의 양식들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17)
'들어가기'에 적힌 이 말처럼, 몇일 밤이 지나면 우리를 유혹하는 새 상품들이 즐비하게 출시되듯, 20세기에 이르러서 실로 다양하고 복잡한 유파와 운동이 일어났다. 제 각각의 운동과 유파, 양식들은 각각 고유의 언어를 가졌지만, 서로 영향을 주며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면서 지금의 현대미술에 이르렀다. 특히, 그동안의 실제적인 표현과 원근법을 사용하던, 오래된 고전주의와 결별을 선언하다시피 하며, '재현'의 틀에서 벗어나 '순수예술'을 지향하게 된다. 그 재현의 디테일함으로 인해, '재현도'를 제일로 치던 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방가르드 운동의 흐름에 대해서, 여기서는 대략적으로만 이야기 하는것이 좋을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한번 읽은것으론 이것들을 완전히 습득했다고는 하기 어렵고, 또 그것들을 표현할 깜냥이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흐름의 경계나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는데 하물며 이런 일반인이 설명해봤자 혼란만 부추길 뿐이니깐.
19세기 초부터 그리 길지않은 주기로 등장한 복잡하고 다양한, 일련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어느 한 운동이 전의 운동을 대체하거나, 계승하거나 혹은 공존해왔다. 이 운동들을 기록한 순서를 보면 기본적으로는 연대기 순으로 배열되어 있지만, 몇가지는 시대적 순서에서 벗어난 것들도 있다. 한번 읽은 것만 으로는 이런 일련의 운동들의 개념과 특성에 대해서 습득하는 것만으로도 능력을 다 소진해 버렸으므로, 뚜렷하게 그 이유에 대해서 열거할 순 없지만, 아마 한 운동이 다른 운동을 계승하는 미학적 흐름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되는데 정확히는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한두가지 운동의 배열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큰 틀이 연대기적으로 이어져있고 각 운동과 유파를 설명하면서 전/후 운동 혹은 동시대의 운동의 흐름과 영향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기 때문에 특별히 난해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운동과 유파의 경계가 칼로 베듯 갈라지는게 아니기에, 큰 눈으로 숲을 바라보는 안목 또한 중요할 듯 보인다. 차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소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1장에서 4장까지는 '순수성의 추구', 즉 추상으로 향하는 운동을 살펴보게 된다. 5장과 6장은 '근원을 향한 열망', 즉 현대미술에 나타난 표현주의적 경향을 다루고, 7장과 8장에서는 현대미술에 나타난 표현주의적 경향을 다루고, 7장과 8장에서는 현대예술의 비합리주의적 흐름, 특히 광기와 부조리에 대한 현대예술의 관심을 다루게 된다. (후략 / 지은이의 말)"
"야수주의와 더불어 최초로 20세기의 예술운동이 시작된다 (...) 야수주의가 일으킨 이 색채의 해방이야말로 20세기 회화가 르네상스 이후 400년 동안 예술의 공리로 군림해왔던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35p)
실로 의미심장하고, 위대한 발걸음의 시작이었던 야수주의의 도입부분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어느정도 용어적으로 친숙한, 보편적인 운동들이 있는 반면, 중간에 '신즉물주의' 처럼 조금은 생소한 일반인에게 보편적이지 않은 운동 또한 존재한다. 각 운동은 기본적으로 탄생의 배경과 멤버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더불어, 그 운동이 지향하는 점, 한계, 전/후 혹은 동시대의 다른 운동에 준 영향과 대표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용어의 의미를 어렴풋하게 알고있는 운동들은 그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계기로, 생소한 운동은 또 발견의 계기로 각각의 흥미를 준다. 사실 이런 여타의 예술저서들은 (인문학에는 못 미치얼지언정)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나, 평소 애매하게 알고있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게 특징(이라면 특징) 인데 어느정도 일반을 넘어선 단어들이 없진 않았지만 크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 각 운동들의 특징과 더불어 그 한계와, 서로간의 영향들이 상세하고 잘 기술되어 있어서 흐름과 흥미를 쉽게 잃지 않았던 것 같다.
각 운동의 시작이나 전성기 때에 주요 멤버들의 포부나 선언문을 보면 으레 진취적으로 보이기 쉽다. 헌데, 내가 이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모더니즘> 편에서 느껴진 시선은, 그들의 운동들을 어떻게든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바라보려 하는 시선이었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의 차례는 결과적으로 제들마이어의 분류와 대략 일치하게 됐다. (지은이의 말)
제들마이어를 여러차례 인용하고, 순서 또한 제들마이어와 일치하는 것으로 미루어본다면, 진중권의 견해는 어느정도 그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운동이나 유파자체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 창시자들의 선언과 실제 흐름과 성과들을 분석하며 중립적인 시선을 취한다고 보여진다. "여기에서는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 중 하나였던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역사를 다룬다."(지은이의 말) 고 시작부분에서 말하며 일련의 시대의 가치를 지은이도 인정하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은 한계와 가능성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는 셈이다. 제들마이어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의 말이 언급되고, 또 특정운동이나 사상, 시대를 비판하는 예술가들의 대화가 진중권의 날카로운 해석과 맞물려서 말이다. 이런 시선들은, 항상 미술전시장 벽에 적힌 작가와 시대에 대한 칭찬일색인 글이 주는 좁은시선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선으로 작품과 작가,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지식의 부족함을 꽁꽁 숨기며 칭찬에 급급했던 나날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거기엔 그만큼의 공부가 '훨씬' 더 필요하겠지만)
"현대미술에 비판적인 이들이 그것에 우호적인 이들보다 외려 그것을 더 잘 이해한다는 역설.(중략) 역사상 가장 급진적이었던 예술운동의 본질은 외려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문화보수주의자의 눈에 더 뚜렷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17)
진취적으로, 위대하게 탄생했든 아니든, 모든 운동과 유파는 대부분 그 모순 혹은 한계를 지니거나, 한계에 다다랐다. 어떤 미학적 판단에 있어 절대불변의 법칙이란 없기때문아닐까. 대중의 인식과 수용은 느리면서 오래가지만, 신념이 곧 삶 자체가 되기도 하는 여타의 예술가들에게는 짧은 시간에도 많은 소용돌이가 일며 그들의 의식을 뒤집고 또 뒤집기도 한다. 그로인해 타인을, 다른 정신을 부정하면서 때로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과 관념도 부정하기도 해왔으니깐.
책을 덮었을 당시엔, 유파와 양식의 흐름을 좇다보니, 정작 미학으로서의 본질에 대해 소홀히 읽은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미학은 결국 이 아방가르드 시대를 바라보는 창일 뿐이며, 우리가 미학에 대해 인지했든 아니든, 우리는 그 창을 통해서 이 혼돈의 시대를 '잘' 짚어보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안일함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한 유파나 양식 혹은 운동의 기원을 살피고 들어가면 곧, 그것에 대한 특성을 끈질기게 분석함과 동시에 자료사진들을 보고, 가능성과 한계를 통해 그 유파, 양식, 운동의 가치를 살폈으니, 그 끈질긴 집중의 통로가, (비록 언어로 이해하진 못했을지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갖가지 시각과 진행, 충돌들이 바로 미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며....
"미학은 어떤 사안이나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학문이에요. (후략) "
다만, 한때 거금을 들여샀던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온데간데 사라진 지금 비교할 대상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아쉽다. 그것이라도 있었다면 이 책이 다른 서양미술사와의 차별성, 혹은 공통성을 더 깊게 설명할 수 있을텐데. 아마, 미학에 대해 더 나은 개념의식을 갖추고, '고전예술' 편부터 순서대로 다시 읽어보며, 다른 서양예술사 책까지 몇권 더 읽어본다면, 혹은 그랬었다면 좀 더 분명한 시각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까진 완벽하게 '그래 이래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야!' 라는 생각까지 드는것은 아니니깐.
어쨌든, 소설만큼 술술 읽혔다고 할순 없지만, 유별나게 어렵게 표현되지도 않은 책이었다. 많은 서양미술사 들의 책이 있겠지만, 이후에 출간될 이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3권과 이전에 출시된 1권에 대한 기대가 생긴것도 사실이다.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던, 혹은 항상 헷갈리던 아방가르드 시대의 양식에 관련한 용어들이 이제 (나름) 조금은 가까워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절히, 흥미를 잃지 않으며 읽어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학에 대한 좀 더 깊은 안목을 갖고 언젠가 한번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그런날이 쉽게 오진, 그런책이 한두권도 아니긴 하지만..)
"현대예술은 사회와 소통을 거부하기 위해 끝없는 혁신 속에서 한없이 난해해진다. 하지만 이는 사회를 버리기 위함이 아니다. 외려 더 높은 차원에서 사회와 다시 화해하기 위한 제스처다. "역설적이지만 예술은 비화해적인 것을 증언해야 하며 동시에 그것을 화해시키려는 경향을 가져야 한다." (36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