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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으레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미술사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용어들이 있다. 당연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광받는 양식이 있었고,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 단어들은 그에 맞는 대표적인 예시의 그림들이 있고, 그것들의 그룹그림들을 몇장 보다보면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곳에서, 여러가지 이론엔 대입되며 사용된다. 

그런데 '그로테스크' 란 단어는, 그 늬앙스가 풍기는 어떤 기묘한 느낌보다도 더 규정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어떤 그림들을 보아도 뭔지는 대충 알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제대로 알았다는 확신이 들지않는것, 그것이 나에겐 '그로테스크' 였다. 보통의 미술사적 단어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미술사의 흐름과 화가, 나아가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학습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중세부터 시작해 그로테스크의 어원을 따라 간다. 그로테스크 란 단어는 어느 시대에 탄생해서 훌쩍 규정되어 진 것이 아니다. 시간을 지나고, 여러 학자들과 화가들의 머리와 손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모하고,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고, 조금씩 다른 의미도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이 책이 비교적 잘 읽히고 명료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유가 바로 어느 누군가가 한 시대에서, 규정한 의미를 이후로, 혹은 그 당대의 비슷한 이들마저도 끊임없이 '조금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그로테스크란 것이 어느 한 분야, 한 시대에 귀속되어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종교, 그 시대의 인식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중후반부로 갈수록 '시각적 그로테스크'(미술) 뿐만 아니라 '상상적 그로테스크'(문학) 으로 화두가 이어지기 때문에, 단지 그림의 맥락에서 바라보자면 조금 생경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문장들이 매우 명료하고, 근거와 주석또한 매우 충실해서 연구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 이제서야 그로테스크를 정리할 수 있겠다 싶으면 또 조금 다른 그로테스크가 등장한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처음의 궁금증들이 여전히 남아있는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끊임없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담론들을 읽었고, 그것들은 축적되었다.  

현실을 아예 벗어난 것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을 껴안고 있는 것. 현실에서 아름답게만 바라보고 거기에 안주해버리지만 사실은 거기에 더 흉폭하고 잔혹한 행위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세계에 대해 결합하고, 분쇄해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과 기괴함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그로테스크. 

"그로테스크의 창작은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고 그것을 정복하는 일이다."(309) 

어쩌면 그것들은, 우리 스스로를 아주 깊숙이 들여다본, 희곡과 같은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어깨에 힘을줄 필요도 없는 것일까?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한 단어가 탄생하고 만들어진 먼길을 읽었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때 막연하게 받은 느낌에 이제는 '그로테스크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듯 하다." (314,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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