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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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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원칙으로 삶을 버텨온 사람의 이야기이다. 혹은 한 인간의 생애에 걸친 종말을 다룬, 소설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음에도 그는 그 친구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수치감을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 p133


폴리오라는 전염병이 버키가 살고 있는 마을에 덮치자, 버키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마을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의 역할은 ‘놀이터’의 체육선생님이었고, 그는 체육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의 든든한 우상이 되어 전염병의 공포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전염병 앞에서 그런 체육선생님의 위엄은, 별로 위엄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그는 할아버지에게 ‘강인함과 결단력, 신체적으로 용감하고 신체적으로 건강해지는 것, 남들에게 휘둘리는 일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것, 그들이 두뇌를 사용할 줄 안다는 이유로 허약한 유대인이나 계집애 같은 유대인이라는 비방을 당하지 않는 것(p34)’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놀이터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사명감을 가졌다. 폴리오가 발병하고 그가 폴리오를 피해 도망친 이후 그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배운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가 달아난 곳에서도 폴리오가 발생하자 그 자신이 폴리오를 옮긴 것이라고 ‘확신’할정도로, (실재적인 근거는 없었음에도!) 그 일때문에 평생을 스스로에게 벌을 주었을 정도로 그는 그 원칙을 지키려고 ‘순교’했다. 

그런 그를 두고 다른 화자가 등장하여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평가한다. 상황을 상황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살아온 대로만 사고하였던 사람이었기에 그런 식으로 자신을 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마치 그 일은 그가 스스로 짊어진 무의미한 ‘종말’이라는 듯이...


나는 필립로스가 그런 인간의 운명을,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듯하게 첨예하게 그려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일생의 믿음을 다른 화자를 통해 깨뜨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한 인물이 행동한 것을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로 읽힐 수도 있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어쩔 도리 없이 주어진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방식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걸까? 이런 평범한 결론을? 


 인간이 어쩔 도리 없이 맞게 된 어떤 비극적 순간을 어떻게 버텨나가는 지, 그 과정을 지켜보다 그 일이 있은 지 한참 이후를 이야기하는 글을 읽고 있으면, 내 삶은 정말 내것인가 궁금해진다.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에 휩쓸려버리면, 나같은 것은 흔적도 없이 와해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전통적 의미에서의, 이미 처음과 끝이 정해져 버린 사람의 일이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운명이 아니라,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기에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그러나 일어난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범주이기에 ‘운명’으로밖에 말해질 수 없는 어떤 것. 그런 의미에서 한 인간의 ‘의식의 동일성’이라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의식이라는 것 역시도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아닐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조금은 평범하게, 작은 꿈을 꾸며 살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걸까. 이 소설은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하기도 하다. 운명을 운명으로서 받아들이고 나면, 어차피 똑같은 행복을 추구하는 건데 조금은 덜 강박적으로,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를 영웅이라 칭한다면, 공동체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는 영웅인가? 그가 영웅인지 아닌지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그를 모욕하는 일이 아닐까. 그는 영웅이 되기 위해 행동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를 움직인 것은 그가 그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라서 '벌'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라 볼 수도 있다. 그건 그가 책임지고 싶어했던 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이고, 더 나아가 그의 삶 자체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과업을 완수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껏 사랑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삶 자체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폴리오라는 전염병이 그것을 깨트렸다. 그가 살고자 하는 삶을 살지 못한 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마저도 그가 책임지려고 하는 태도가 어쩌면 영웅적이라 불릴 수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삶의 가능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으로 실천하는 게 과연 영웅일까. 


그는 신과 대결하였던 영웅이라 평가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구를 위한 영웅일지도 모르곘다. ‘효용성’만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무례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버키의 일생을 무의미한 것으로 ‘판정’해버린 무례한 일을 했다. 그가 살았던 방식으로 나는 살지 못하겠다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그 이유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그 일생을 무의미하다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이런 기로에 서게 만드는 ‘운명’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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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0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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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0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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