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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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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서 동떨어져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능한 한 많이 떨어져 지내려 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는 거 아닐까 싶네. 내 소설은, 대개 그런 개인을 그리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그 시대정신의 표현을 지향하고 있지 않나.(조코 코기토)" 제 5장 거대 현기증 <익사> - 135p

역사를 인간 개인 차원의 문제로 끌어내려 독자가 전체 그림을 관조할 수 있도록 쓰여진 소설이다. 미궁의 사건을 던져주고 실마리를 한나씩 제공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든 이야기가 풀려나갔을 때 이야기는 예상가능한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예상가능하지만 소설 마지막을 읽을 때까지 예상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는다. '익사' 할 운명이었다는 듯이,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소설은 익사를 향해 간다. 넘을 수 없어 절망적인 한계때문에 익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시기가 익사할 정도의 시기까지밖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익사한다. 그러므로 익사 이후의 미래는 남겨두고 익사가 진행된다. 
도대체 왜? 이 소설은 익사와 어떤 관련이 있기에?
모든 일은 소설의 주인공 조코 코기토의 아버지가 익사하는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코 코기토는 이 일이 전후 일본을 다시 전쟁으로서 일으키려는 아버지의 시도가 우스꽝스럽게 좌절되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는 젊을 때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하고 그런 아버지의 시도를 조롱한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에는 그가 교육받은 그대로, 아버지가 지향하는 가치를 숭상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자란 이후 이성을 가지고 판단한 결과 그는 그 가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를 온전히 그 자체로 사랑하면서도 아버지의 시대를 부정해야만 하기에 그는 그의 내면에서 어떻게 화해를 이루어야 할 지 모르겠다. 

[(<마음>의 선생님)"그런데 한창 더운 어느 여름날,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습니다. 그때 나는 메이지 정신이 천황에서 시작해서 천황에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강렬하게 메이지의 영향을 받은 우리가 그후에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시대에 뒤쳐지는 것이라는 느낌이 사무치게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마음>의 선생님께 질문) 당신은 그야말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동시대 사회에 등을 돌리고 또한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 사람이 아닙니까? 시대정신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시대정신이라는 게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천황에 빗대어 말한다. 조코 코기토의 아버지 역시 시대가 끝나려 하자 미리 '순사'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나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시대를 지배하는 생각들이라고 판단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대를 인식하는 방법, 시대의 정신 아래서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전후 일본, 그들은 극복해야만 하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전쟁에서 진 상흔을 어떻게 자주적으로 극복할 것인가. 국가를 어떤 방식으로 재건할 것인가?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할까? 그것이 가장 중요했고, 그 고민이 시대를 지배했으리라 생각한다.
소설가인 조코 코기토는 새로운 시대에서 새로운 세대로서 살지만, 역사가 어떤 무게로 어느 정도의 상황으로 스며들었는지 모른다. 소설 안에서  조코 코기토는 그 내막을 끊임없이 탐구해나가고, 그를 소설로 만드려고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상황을 목도한다. 

하나. 그의 어머니는 그의 그런 시도 자체가 약간 어긋난체 소설화되면 가문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천황을 죽이고 새로운 시대를 맞으려는 시도와 무관하게 죽었기를 바랐다. 그리고 무관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달랐고, 아버지는 시대정신을 실현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그가 배워왔던 마을의 정신과 대치된다. 그렇다고 해서 시대정신과 연결되지 않았는가? 그 시대정신이라는 것도, 마을의 정신이라는 것도, 그가 고유하게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고, 어쩌면 마을의 정신 역시 전체 시대정신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은 시대정신일지도 모른다. 결국 어떤 형식으로든 그의 행동과 죽음은 시대정신과 연결되었다. 국가공동체를 지키는 방법의 일환으로, 더 나아가, 지역공동체도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도 '순사'를 선택한 것이다. 그건 그가 살았던 세대의 논리였을지도 모른다. 
둘. 여성을 국가의 앞날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으로부터 배제하고, 마치 도구취급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이는 시대정신과 멀어진 상황이라 볼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여성 역시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고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동하였으면, 과연 일본 국토에 전쟁참여라는 참혹한 상황이 일어났을까? 아버지의 '순사'마저도 어머니의 손에서는 보잘것없고 평범한 일로 죽은 게 되었다. 만약 어머니와 상의했더라면 '순사'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선생님이 아내의 뜻을 받아들여 메이지 정신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했더라면? 그 비판적 시선과 순사하려는 정신이 만나서 새로운 시대정신이 탄생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 알레고리는 우나이코라는 여성 연극단원에게도 적용된다. 그녀는 시대를 비판하는 극을 많이 만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방해를 많이 받는다. 그녀가 방해를 받았던 것은 아직 시대정신이 그녀가 바라는 사상을 융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후 일본의 과제로 고스란히 남았다. 이것을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아마 이대로 다시 전쟁을 일으킬 여지를 없애지 못하고 과오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소설에서 풀어놓은 많은 논의들에도 불구하고, 우나이코는 큰아버지 식구가 자신에게 저지른 만행을 연극에 삽입하여 고발하려다 실패하고, 다시 큰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게 된다. 다이오는 우나이코의 큰아버지를 죽이고 스승인 조코 코기토의 아버지를 따라 '순사'한다. 화해에 실패하고 다음 세대로 가는 데 조금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시대는 아직 변화하지 않은 상태이고, 과거의 잔재로 인해 발이 묶였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술술 풀릴 수 없었으므로 '익사'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익사'이후의 미래는 열려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정말 놀랐다. 소설인데 현실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인물의 다양한 측면을 다 말해주면서도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고, 모든 인물을 다층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스토리를 잊지 않고 마지막까지 마무리지어가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 소설이 가리키는 지점이 한국과 별다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끝난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았고, 아직 전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국가에 살면서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이 소설이 굉장히 모호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가 쓴 '시대정신'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닿아서 그를 엮어서 소설을 이해해보려고 시도했지만 평면적인 것 이상으로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 개인과 시대정신이라 불리는 어떤 것을 어떻게 엮어 설명해야 할 지 몰랐던 것은 아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범위였기 때문일 것이다. 더 잘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나는 도대체 나의 역사는 어떤 시대정신 아래에서 걷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앞으로 몇 번의 익사가 더 필요할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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