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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창밖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고 있다. 벚꽃이 다 지기 전에 산책도 하고 싶었는데, 날씨가 계속 안좋으면 만개했던 꽃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아 서운하다.

이제 4월이다.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이라고 명시된 일도 많은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일부분일 뿐. 그 이상을 하려고 덤비다가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몸살감기에 걸렸다. 골골대는데도 손에서 할 일을 놓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겠지. 언젠가는 더 제대로 책을 읽을 수 있겠지.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성과는 그닥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발전은 커녕 글에서 드러나는 미숙함이나, 부적절함, 결핍된 것들만 눈에 들어와 부끄럽다. 언제쯤 경지에 오를까. 과연 그런 경지에 도달한다는 게 가능할까?

 

책상에 앉아 늘 이런 고민들을 주로 하지만, 몸이 늘 가 닿지 않는다고 마음마저 가 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처럼 여겨지는 곳이 되기를 늘 꿈꾼다.  직접 몸이 갈 수 없기에,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이것저것 찾아 행동할 뿐..

 문학을 읽고 생각하는 일이 쓸데없어 보일 지라도, 문학과 같은 다양한 예술이 주는 잉여로움은 어떤 게 더 인간적인지, 본질적으로 무엇이 더 사랑에 가까운지 생각하게 하는 일이라, 궁극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의 공감능력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위안을 삼는다. 책을 읽고 글쓸 고민을 하는 것 역시도 이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어떤 형식으로든 기여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말하고서 이게 비겁한 변명이 되지 않도록 또 열심히 노력해야 겠지만..

 

이번달 눈에 들어오는 도서목록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두번째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원본이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포함된 17편의 단편이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상태의 오리지널 버전 그대로 실렸다.
1981년, 당시 크노프 출판사의 편집자였던 고든 리시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편집 과정에서 카버의 원고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일부 작품의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거의 모든 단편의 엔딩을 바꾸거나 잘라냈으며, 분량의 70퍼센트 이상을 덜어낸 단편도 있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작가가 의도한 바를 보려면 이 책을 보는 편이 좋겠다. 왜 편집자는 편집이 필요하다 생각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작가가 그만큼 파격적이었을까? 정서에 안맞기에 책이 안팔릴거라 생각했던 걸까? 그가 직시한 진실은 무엇일까.

 

 

 로맹 가리 장편소설. 로맹 가리는 이 작품에서 독재와 저항, 종교와 위선, 제국주의와 공산주의로 혼란한 제3국을 이방인 목사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만행의 배경을 전하고, 평범한 원주민이 독재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선진 문명과 토착 문화의 충돌 속에서 그려낸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로맹가리, 그의 소설 '가면의 생'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소설도 강렬했다. 자전소설이라는 착각이 들 만큼 소설과 거리를 가깝게 느꼈고, 읽은 이후 그 충격파가 5일동안 삶을 지배했다.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더라. 살아있는지 질문하도록 만들더라.

그는 이번 책에서 어떤 국가에 들어가 죽을 위기에 처한 목사의 시선으로 그 국가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목사가 처한 상황도, 제 3국이라 지칭되는 국가의 실태도 재미있다. 어떤 식의 이야기일지 궁금하다.

 

 

 p348 이제 난 육지에 있다. 이런 글 조각 하나에 불과한 것에 의지해, 붕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겨우겨우, 그런 안도감을 공유하면서 이 한 구절을 이해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새로이 이해하게 되었네. 나는 지금도 실제로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어떻게든 그 위기를 버티려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여전히 이런 글 조각 하나가 의지가 되고 있다고.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애매한 부분이 있었던 후카세 번역과 엘리엇의 원시가 더할 나위 없이 딱 맞아떨어지더군……
여기서 내가 납득한 사실이 있네. 그건, 이제 내가 노인이 되어 매일매일 붕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한 구절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일세.

이 구절을 읽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노벨상 수상자가 그냥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구나. 그가 쓴 주제에 관해 설명을 들었을 때는 막상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 대목를 읽고 익사라는 제목을 읽으니, 내가 익사당하는 당사자가 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읽어야 겠다 생각했다.

 

 

읽지 않은 책을 읽고 싶다 말하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삼아야 할까? 주제의 의미? 문체? 표지 디자인은 분명 아니다.

인생지사,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할 수 없듯, 이 악마에게 소원을 빈 사람들에게 뭔가 엉뚱하고 씁쓸한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처절한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니라 할 지라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하니까, 도대체 어떤 형식의 의미를 담았을지 궁금하다. 읽지 않고는 모르겠지.

 

 

 

 

 

 

 

 

P.286 : 이 작은 도시에서 나는 혼자 사는 이상한 남자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자라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나처럼 자란 사람은 병적인 상상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이 해변 도시에서, 아니 이곳을 벗어난 어디에서든 그녀만큼 내 눈앞에 실재하는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를 위해 살면서 나는, 내가 소망하는 대로 그녀를 소유할 수 없음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절망으로 보낸다. 나는 환영을 향한 육욕을 품고 있다. 이런 내 욕망은 신이 내게 보내는 조롱이며 내가 품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처단하려고 신이 내리는 적절한 벌이다.
_「페기 미한의 죽음」에서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소유하지 못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그리고 '환상'일지도 모를 그녀를 사랑하며 육욕을 품고 있는 것은 신이 내게 보내는 조롱이랜다. 인물이 공감이 간다. 그래 그가 그걸 벌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럼 왜 그는 '환상'을 만든걸까? 정말 환상일까? 그걸 왜 하필 '벌'로서 인식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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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a 2015-04-06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달엔 `익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우끼 2015-04-23 14:54   좋아요 0 | URL
:)!! 이번에 익사도 선정되었네요! 기대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