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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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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이 잘 재현된 이야기다. 구성도 매끄럽다. 제르미날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실패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큰 얼개는 뻔할지라도, 세세하게 짚어낸 구체적인 설정과 행동들이 이 이야기를 뻔한 이야기가 아니도록 만들었다. 전체 서사의 방향을 기억하지만 그 서사 안에서 살아 숨쉬는 개별적인 인간을 모두 존중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책에 나오는 인물을 미화하거나 매도하려 하지 않은 시도들이 곳곳에 보이니 인간적이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 노력하는 것에도 모순점이 존재한다는 걸 빼놓지 않고 표현하려 했던 것도 그것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여기 등장하는 부르주아 역시 인간은 끝없이 원한다는 모순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도 얼마 안되는 살림살이들로도 우열을 가리며 서로를 헐뜯기도 한다는 것들이 인간적이었다. 작가는 그런 묘사를 통해 인간은 어떻게 해도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인간이 인간답게 노동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작품 전체에서 말하고 있지만 어느 인간도 소외시키지 않는 묘사와 희망을 언급하는 마지막 부분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그의 발밑, 깊은 땅속에는 고집스레 리블렌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의 동료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에티엔은 그의 걸음마다 그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탕무밭 아래에서는 위윙거리는 통풍기 소리에 묻힌 채 허리가 부서져나가도록 일하고 있는 라 마외드의 거친 숨결이 들려왔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더 먼 곳에서도 또 다른 동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에티엔은 밀밭 아래, 산울타리 아래 그리고 어린나무 아래에서까지 도처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또다시, 여전히, 땅가 가까워지는 것처럼 동료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또렷이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햇살이 비치는 젊은 아침에 전원이 잉태한 것은 바로 그 소리였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 제르미날 2 369p-370p


책의 뒷면에 에밀졸라가 빚어낸 자연주의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서 자연주의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자연주의는 야비한 일상적 현실을 묘사한 극단적 사실주의의 한 형식이다. 자연을 유일의 현실로 간주하는 입장으로 개인의 운명은 자유 의지가 아니라 유전과 환경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발전시켰던 문학의 학파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 결과 자연주의 작가들은 인물이 어느 정도 야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정하면서 개인을 내적 혹은 외적 힘의 희생자로 그린다.”([네이버 지식백과] 자연주의 [naturalism, 自然主義] (영화사전, 2004.9.30, propaganda)) 에밀졸라는 책에 잠시 등장하는 인물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내면풍경과 외면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애를 썼다. ‘부르주아’의 입장도 ‘광부’의 입장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추악한 부분과 긍정적인 부분 모두를 서술하였다. 게다가 당시 광부들은 이 책을 읽고 에밀 졸라의 장례식 때 제르미날을 외쳤을 정도로 열광했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회주의 혁명 역시 그 당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광부혁명과 흡사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총 7부로 나뉘어있다. 1부에서는 광부들이 굶주리면서 부당한 임금으로 광산에서 일하는 모습이 나오고, 2부에서는 광부들의 생활이 얼마나 피폐한지 묘사되며, 3부에는 에티엔이 광부일에 적응해가며 사람들과 친해져서 혁명을 도모하려는 내용이 나온다. 4부는 광부들이 피폐한 생활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파업을 알려주고 실행을 계획하는 장이다. 5부에서는 파업을 실재로 이행하고 6부에서는 파업이 경과한 결과 피폐해진 광부들의 삶이 나오며 7부에선 그들의 파업이 실패한 이후 피폐한 생활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극복하려고 사회적으로 노력할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언급하며 마무리된다. 이렇게 큰 얼개로 나누는 것이 조금 억지스럽기도 하다. 장이 나뉘어있고 분위기는 대략적인 얼개에 따라 나뉘나 그것들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사람의 행동은 각 장이 나뉜다고 나뉘어지는 부분이 아니었다. 작은 얼개로 보면 에티엔과 카트린의 사랑이야기 이며, 넓게 보면 더 나은 삶으로의 노력실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얼개가 포함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다. 전에 일어난 일이 다음 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게다가 이 책은 주인공 몇명의 감정과 불합리성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이 될 수도 있는 인물들의 상황과 행동까지 빠짐없이 다루려고 노력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의견을 표면으로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좋은 소설이었다. 작가가 표면에 드러나서 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인물들이 잘못 알고 있었던, 그 시대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서 소설 안에 녹아있기 보다 작가의 무지로서 드러나서 소설을 읽는 데 약간 방해되었다. 이는 작가가 전지적 작가 시점을 활용한 까닭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소설 특성상 전지적 작가 시점 이외의 시점으로는 전개가 어려웠을 것을 감안할 때, 그런 점들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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