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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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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 호칭을 보았다. 나는 이효석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이 그 상을 받았다니 작가의 글이 궁금했다. 읽고 나서 그의 글이 시적이라고 느꼈다. 시적인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흐름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읽는 내내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하게 만든다. 사건과 사건과의 관계가 긴밀한 편이다. 재미있는 주제를 잡아서 문제를 터트리고 안전하게 착지한다.


소설은 “딜리터”를 내세워서 내용을 전개한다. “딜리터(Deleter)는 고객이 의뢰한 물품을 그가 죽고 난 이후 제거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왕과 관련된 자료는 중요한 자료로 분류되고, ‘사료’로서 따로 기록하는 사람이 있었다. 개인정보는 기억에만 의존하여 보존되었기 때문에 누락되는 부분도 많았다. 요즘같이 자발적으로 개인정보를 공개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시대에 죽고 난 이후 자신의 정보를 지운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 요즘은 개개인의 입지가 커졌다. 개인의 정보는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은 드러낼 수 없는 것을 비밀로 만들지만, 마지막까지 그걸 지우지 못할 수 있다. 지운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였던 무언가를 버리는 작업이고, 굳이 버리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에서 지우기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죽고 난 이후에 남아서 돌아다니는 것은 꺼림직하다. 소설에서 남겨진 정보가 자신을 판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돈을 낼 각오를 하는 사람들은 “딜리터”에게 의뢰한다. 


비밀은 무대의 암막천이다.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꼭 필요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비밀로 가려져야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일들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사소한 일이야 암막천에 가려진다. 암막천으로는 가릴 수 없는 소동이 벌어지지는 건 예정되지 않은 일이다. 관객이 알 필요가 없었던 비밀이 무대에 영향을 끼침으로서 알아야 할 비밀이 되어버린다.

그럴 경우 배우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걸 바라보는 관객은?


소설은 파급효과가 크든 작든 비밀을 감추려는 사람들, 비밀을 파헤치려는 사람들, 비밀을 만들고 지우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비밀을 스스로 처분한다. 하지만 아직 질문은 남아있다. 왜 비밀을 만들고 지우려는 걸까?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은 비밀을 지우려는 이유를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328쪽) 라고 말한다. 


삶을 거머쥐려는 욕망 자체가 추하지는 않다. 하지만 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닌데 나만의 것으로 착각하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할 때 추해진다.


순간만을 숨쉬다가 사라질 건데, 굳이 뭘 지우려고 노력하는 게 하릴없다. 내가 죽은 뒤에 남겨진 내 과오들은 내게는 하등 중요치 않다. 그 과오들이 먹칠하는 것은 완전한 상태로 죽음에 이른 내가 아니라 나의 후손일 뿐이다. 그 과오의 잘잘못을 가려야 물려받을 것과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인간이 저지른 과오가 많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오만이 아닐까? 게다가 내게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조롱당해야지. 그것을 후손이 물려받는 다는 게 더 끔찍한 일이다. 과오를 우상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과오는 과오로 밝혀질 텐데. 과오를 우상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과오를 과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균형을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균형잡기를 한 사람이 다 해치우려고 하는 게 오만이다. 그 오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꿈’이기는 하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준비해놓고 죽고 싶은 욕망.  살아 있을 때 과오를 저지르지 않고 균형있게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좋지만. 이미 저지른 것을 죗값을 치르는 것 이상으로 없던 일로 만들려고 시도하며 보내기에는 세월도 돈도 너무 아깝다. 귀찮은 일이다.

만약 내가 큰 일을 저지르고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일을 저지른다는 건 개인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니까.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주역으로 선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과오는 과오 나름대로, 선행은 선행 나름대로 뭔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남길 것이다. 역시 내가 좌지우지 할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 주어진 과제를 해치우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소설로 시를 쓰는 건, 알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중요한 것을 해석 불가능한 상태로 세상에 던져놓는 것은 소설가의 꿈이다. 해석할 단어가 이미 만들어진 문장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아서 설명할 수 없는 소설. 온 몸으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어서 굳이 해석이 필요없는 소설.


그가 잡은 주제는 흥미로우나 더 깊게 팔 여지가 소설 군데 군데 남아있어서 아쉽다. 사람들은 왜 비밀을 만드는가? 비밀을 만드는 것은 필연적인 일인가? 주인공은 남기고 싶지 않은 비밀을 삭제한다. 나는 비밀을 만드는 일반적인 이유밖에 모르고, 그것은 내가 체험한 결론이 아니다.

이야기는 완결되었지만 질문이 완결되지 않았다. 완결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그가 풀어놓은 많은 이야기 들 중 제대로 거둬들이지 못한 질문이 남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가 '비밀'이야기를 하려고 끌어들인 다양한 주제는 주인공 한 명의 한 가지 갈등이 주요 인물의 상실과 함께 마무리되자 끝난다. 주제가 남긴 질문들이 좀 더 숙성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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