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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상황을 증오한다.”120p


파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은 파울이 비추는 베른하르트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베른하르트는 여러 가지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위치와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서술한다. 자신을 증오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남을 분석하고 의미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다.


"눈에 뜨이지 않기, 남을 배려하기, 없는 듯이 조용히 있기 등등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만 장기간의 병원 생활을 그나마 수월하게 견딜 수가 있다. 반항과 고집, 제멋대로 하려는 이기심등을 버리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는 위험할 만큼 쇠약해진다.”24p


병자들의 생활이지만 내 일상과 비슷했다. 환경에 적응하려고 자신을 죽이고 규율을 따를 때도 많았다. 그런 나는 스스로를 신체만 살아 움직이는 시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나는 그가 묘사한 그의 모습에 친근감을 느꼈다. 


"왜 나는 내가 가야 할 그 길을 가려 하지 않는가? 왜 나는 다른 모두가 가는 그 길을 얌전히 따라가지 않는가?”20p

"파울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내 전 존재를 지나치게 치열하게 몰고 간 것이 원인이었다. 즉 자신을 과도 평가한 나머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지점까지 스스로를 소모해 버린 탓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파울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매번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혹사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가능성들을 초월하려고 했고 나 자신뿐 아니라 그 무엇도 전혀 돌보지 않은 거의 병적인 무모함을 가지고 무조건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했다. 그러한 무모함은 결국 파울을 망가뜨렸고 그리고 언젠가는 나 자신도 파울처럼 망가뜨려 버릴 것이다.”30p


그가 일상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열하게 살았다. 하지만 힘이 부쳤다. 그럼에도 베른하르트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고 세상을 거부한 것은, 세상이 격리한 것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경험을 가진 그의 운명이기도 했다. 그의 글은 끊임없이 세상을 부정하고 자신을 부정하는데도 거북하지 않다. 인간으로서 나를 부끄럽게 하지도 않았다. 그의 말은 솔직했기 때문일까? 솔직한 말이 불편할 때도 있다. 그는 의도를 담아 비판하지 않았다. 단지 싫어하는 부분들을 지적해서 서술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오히려 감사함을 느꼈다. 그는 비극을 판단하는 하나의 가치기준을 제공한다. 겉으로 비극처럼 보이는 행동은 비극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향하는 모든 행보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말한다.


"파울과 나의 차이라면 오직 한 가지, 파울은 자신의 광기에 스스로를 오전히 내맡긴 반면에 나는 압도적인 내 광기에 나를 한 번도 온전히 맡기지 않았다는 것뿐이다.”32p


나도 가지고 있지만 내 안에서 발화하지 못하게 막은 것들. 나는 사회 안에 어우러져 살아가려고 부정적인 나의 일부를 포기하고 산다. 사회가 허락하는 것만 부정하기도 한다. 그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단지 그는 사회의 제약을 생각치 않고 그 자신의 몸을 제물로 부정적인 것을 세상에 나오게 한 것 뿐이다. 그는 부정한다. 그의 부정은 살고자 하는 자의 솔직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 역시 그 심연으로 끌려들어가게 한다. 그래서 그와 파울은 불행해졌다.


"원칙적으로 병자는 늘 혼자 남겨지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다며 반박하는 말들은 모두 왜곡된 거짓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병자는 몇달 전, 혹은 나도 몇번이나 경험했듯이 몇 년 전에 중단된 시점으로 되돌아가 삶은 현재와 연결하기 위해 매번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건강한 사람은 즉시 인내심을 잃어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병자를 편하게 해 주어야 할 바로 그 시점에 병자를 모든 면으로 더욱 힘들게 만든다. 건강한 사람은 결코 아픈 병자들을 참아내지 못하며, 이점 역시 잊으면 안되는데, 병자들 역시 건강한 사람들을 참아 내지 못한다. 병자들은 건강한 사람보다 만사에 훨씬 더 까다로워지지만 건강한 사람들은 몸이 건강하니 까다롭게 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67p


그는 치열하게 살았다. 그는 병자인 자신을 살려내려고 치열하게 산 것 같다. 자신이 병자라는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베른하르트는 병자인 자신만큼은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병자인 자신을 부정하는 순간, 그는 그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혼자 남겨지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그는 그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가 보는 그대로 서술한다. 부정적인 것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살기 위해 부정적인 것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서술한 것이다.


"우리는 죽음의 낙인이 찍힌 자들을 피한다. 나 또한 이런 저열한 감정에 굴복하고 말았다. 친구가 죽기 몇 달 전부터 나는 구차한 자기보호 본능 때문에 완전히 의도적으로 그를 피했다."128p


그는 살기 위해 그에게 인생의 깨달음을 준 친구를 거부한다. 친구를 거부하고 삶을 선택한다. 그는 친구와 함께 세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삶을 버텨왔다. 친구를 거부하는 것은 그 자신이 행해왔던 행동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정을 버리고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삶을 부정하는 것으로 꾸려왔기 때문에 그가 삶을 선택하는 것은 동시에 그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는 온몸으로 살아있는 자의 모순을 보여준다.


"내 마음에는 온갖 불안과 절망이 들끓었지만 단 한 가지, 희망의 불씨만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21p


그는 스스로 희망의 씨앗이 자신 안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가 파울이 죽어갈 때 그를 내버려두고 돌아나온 것은 그 자체로 절망이자 희망이었다. 그는 파울의 죽음을 뒤로 하고 살아남아서 그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고발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 동시에 완전한 존재다.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의 가치를 판단한다. 하지만 인간이 판단한 모든 것의 가치는 불완전하기도 하고, 완전하기도 하다. 인간이 인간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은 중요하다. 보통 사람들의 판단도 중요하고, 병에 걸린 상태의 베른하르트의 의견도 중요하다.

그는 그의 책을 글을 읽는 독자가 완성하게 한다. 독자는 그가 쓰지 않은 절반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책 자체를 완성품으로 세상에 내놓지 않고 독자를 통과한 이후에 세상이 격리한 것 역시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존재의 결정적인 순간과 시기에 모든 것을 의미했으며 그리고 실제로 전부이기도 했던 사람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몇 안되는 사람이 죽은 자,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자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 있는 자,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자,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와 나란히 걷고 있는 자조차 아직은 어떤 판단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배웠기 때문이다.”114p


그는 죽었다. 나는 그의 작품을 살아있는 인간의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판단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인다. 나는 그가 그린 비극이 비극으로서 세상을 긍정한다고 받아들인다.

그는 모든 것을 부정했지만 역설적으로 생에서 우리가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지정하는 것은 오만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부자의 입장에서 부자를 보았으며 가난한 자의 입장에서 가난한 자를 보았다."139p


그는 병자 입장에서 병자를 보고, 건강한 자 입장에서 건강한 자를 보았다. 가난한 자의 입장에서 가난한 자를 보고, 부자 입장에서 부자를 보았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한다. 세상에 굴레에 휩쓸리지 않고 그의 기준을 따른다. 그의 언어는 솔직하다.


"오직 떠나온 장소와 도달할 장소 사이에 있을 때만이 행복한 인간에 속한다.”124p


그는 장소이동을 통해 자신이 있을 곳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찾는 과정에 있을 때만 행복헀다. 도달해버리고 나면 그는 목적을 잃어버리고 다시 헤매는 상태가 된다. 장소는 꿈으로서 존재할 때 그에게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꿈은 그가 어떤 상상을 포함해도 실재하는 장소였다. 장소에 도달하면 꿈은 산산히 깨어진다. 도달하는 것은 끝이자 다시 떠나야 하는 시작이었다.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만이 살아있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 들어 갈수록 나날이 더욱더 노련한 술책으로 있는 묘안 없는 묘안을 짜내서 적당히 견딜 만한 삶의 상태를 스스로 조성해야 한다. 그런 병적인 추가 부담이 없이도 이미 한계치에 다다를 만큼 지쳐버린 머리를 더욱 혹사해서 말이다."114p


사실 내가 이 책을 이런 방식으로 읽은 것은 묘안 없는 묘안을 짜내어 그의 삶을 긍정하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 왜 나는 웃음이 나왔을까? 그가 불쌍하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산 사람을 불쌍하게 여길 수는 없다. 치열하고 싶다 생각만 하고 치열하게 살지 않는 스스로가 불쌍할 뿐이다. 그런 스스로가 불쌍해 때때로 지나치게 치열하게 산답시고 자신을 과신하다 과열돼버린 자신이 불쌍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고 그가 좋아져버린 나 자신은 불쌍하지 않았다.


얇은 책이지만 충분한 말이 들어가 있다. 이 이상 이어지면 지루할 수도 있고, 이보다 짧으면 추상적이어서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문장은 매끄럽다. 오로지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재미있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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