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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시집인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도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이신통 그이의 집에 와서 우리가 부부라는 말도 내세우지 못한 채, 나는 어느 결에 이씨 댁의 식구가 되어버렸다. 누이는 우리가 길을 떠날 때 아버님의 제삿날을 가르쳐주면서 꼭 오라고 당부했고, 오라버니가 집에 들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설득하여 자기가 모시고 강경에 가겠노라고까지 말했다. 길 떠난 지 열흘 만에 안 서방과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훗날을 위하여 이신통의 누이와 매제의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놓기로 하였다.

 

-P.133-

 

1.

 

 문학을 전공하며 역사관련 수업은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학창시절 역사과목들로, 사탐을 꽉꽉 채워 시험봤던 기억에 기인합니다. 다 지나간 일을 공부해서 뭐하나. 내가 살지도 않았던 그 시절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내가 왜 그 년도와 주요 인물들까지 달달 암기하고 있어야 하는건가에 대해 스스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더욱 열이 받았던건 수능이 끝나자마자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지식들이 마치 포맷된 것 마냥 아득해져, 한국사 자격증을 공부할 때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두번의 학습 탓일까요. 저는 역사관련 수업이라면 피하고 보지만, 남들보다 많이 알고 있습니다.

 

 혹자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그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배우는 역사가 객관적일까요. 기득권의 기준에서가 아닌 일반 민중들이 바라봤던 역사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몇년에 무슨법이 만들어졌고, 누가 반역을 꾀했는가 이런 사건들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민중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만약에 역사가 반복된다면 그런 다수 민중들의 삶을 밝히려 노력하는것이 더 옳은것이 아닐까요?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살아온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첩과, 양반의 사이에서 태어난 비주류의 이야기는 황석영이라는 이야기 꾼에 의해 생명을 얻었고, 있었을 법한 이야기로 탄생했습니다. 소설속 인물인 신통을 바라보는 부인 연옥의 시점은 1인칭이 아닌, 3인칭 전지적 시점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처럼 진행이 되다 어느새 그들의 성격과, 개인사까지 함께 진행이 되고있지요. 이런 작품의 특징은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함몰될 수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폭 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양 사람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겠도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네 학문을 서도라 부르고 천주를 섬긴다 말하여 성인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하늘의 때를 알고 하늘의 명을 받은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하면서 말로는 천주를 섬긴다고 하니 행동과 말이 이렇듯 상반되는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나라와 백성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P.370-

 

2.

 

 <여울물 소리>의 배경은 외세와 신문물이 들이치며 봉건적 신분 질서가 무너져가던 19세기 입니다. 익숙했던 체제가 무너지며, 모든 부정부패가 판을 치던 시기. 유교적 이념이 공고했던 조선에서 코가 큰 서양인들이 전파한 천주학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혁신적인 화두를 던져주었습니다. 민중들은 그러한 정신들과, 우리 전통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정서에 필요성을 알게되고, 뜻있는 사람들이 '동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었죠. 그것은 민중의 자생적 근대화 의지가 담긴 사상이었고, 기존의 부패한 질서에 대한 혁명이였습니다. 작품의 주인공 신통은 이런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로, 그 혁명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입니다. 서자로 태어나 능력이 있으나,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마주하고, 또 그것이 돈이 있으면 해결되는 웃지못할 상황을 보게 되며 그는 시대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동학에 빠져들게 되지요.

 

 책이 주는 첫번째 키워드가 '동학'이였다면 이 동학으로 이끄는 키워드는 '이야기꾼' 입니다. 조선 말기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전기수'라는 이야기 들려주는 사람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언문으로 된 소설을 읽어주는 이들은 대부분 중인 출신으로 관직에 뜻이 있어도, 이룰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 이들입니다. 신통역시 그들중 하나였구요. 그들의 이야기에는 민중의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박씨전', '임경업전'같이 소외된 인물이 신통한 능력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인기를 끌었던 것이 아마 그 증거일 겁니다.

 


 

 

 

그렇소이다. 갑오년에 시작된 혁명이 이제 다 끝났지요. 그러나 아주 끝나버린 것은 아니외다. 물이 말라 애를 태우던 가뭄이 지나면 어느새 골짜기와 바위틈에 숨었던 작은 물길이 모여들고,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오고, 강물은 다시 흐르겠지요. 백성들이 저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데 어찌 죽은 이들의 노고가 잊히겠습니까? 세상은 반드시 변할 것 입니다. 하고 나서 그의 이야기는 신사께서 죽어 묻히던 그때로 돌아갔다.

 

-P.467-

 

3.

 

 시대의 피해자는 평생을 떠돌다 외로이 죽어간 '신통'뿐만이 아닙니다. 평생 떠돌수 밖에 없는 신통을 그리워하며 언제쯤 좋은날이 올까 기다린 '연화'도. 그녀의 어머니 '월선'과 신통의 또다른 여인 '백화'도, 좋은 세상을 그리다 죽어간 만복과 그의 동지들도 모두 시대의 피해자 였습니다. 행복하고 싶었던 그들의 삶은 끝까지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수백종의 언패 소설과, 판소리 대본과 민담, 민요 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가 황석영이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 하나의 소설로 만들어 낸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간 민중들의 발자취를 읽어내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책을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혔는데요. 한일회담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공사판과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던 이력들이 얼핏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신통'의 모습과 닮은것도 같아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생각했던 '신통'의 삶이 이후 한국의 근 현대사에서 역시나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울져가는 저 물길들의 소리를 나는 듣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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