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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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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진영 간의 전쟁이 있어. 한쪽은 안보기관들이야. 그들은 지금의 체제 안에서 이 지능 강화기술을 이용하고, 되도록 독점하려고 하지. 다른 한쪽은 강화인간들이야. 이들은 인류 공동의 운명을 걱정해. 그래서 이 기술이 사회를 파괴하기 전에 이 기술을 이용해서 사회를 개조하려고 하지. 자, 마리노. 내 질문은 이거야. 이런 전쟁이 있다면 자네는 누구 편에 서겠나?"

 

-P.45-

 

1.

 

 M.C.Escher's 의 작품은 참 신기합니다. 현시에서는 볼수없는 기하학적 무늬들이 등장하며, 그것들이 시각적인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서클리미트 시리즈인 '악마와 천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천사가 보이기도, 악마가 보이기도 하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천사와, 악마 즉 선과, 악은 항상 같은 공간에 있으며,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것의 판단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옥설계도>라는 책의 표지에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패턴의 연속은 제가 기존에 봤던 무늬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책의 표지에서 천사와 악마는 모두 인페르노라는 뒤틀린 공간안에 갇혀있었습니다.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을 의미합니다. 그곳에는 선과 악을 떠나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몰두했던 사람들이 떨어져 있죠. 인페르노라는 소설속 용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무척이나 닮아 있습니다. 나만 잘살면 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 경제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사상으로 기득권은 더 큰 부자가 되고,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우리내 현실 말입니다. <지옥설계도>는 거대한 메타포의 집합체 입니다. 너무 많은 상징들이 녹아들어 있어 이사람이 도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건가 정신 사납기도 하지만, 하나 하나 그 의미를 유추해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즐거웠던 책이였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초능력자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치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자본의 완벽한 독재가 이루어진 세상. 자본은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지만 개인은 어디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세상. 절대다수가 실업과 가난과 고통의 집단적 결핍 속에서 살아가는 디스토피아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초인간적 지능은 오늘날과는 전적으로 다른 대안적 사회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P.181-

2.

 

 대구의 한 호텔에서 젊은 남성이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단서라고는 오래전 군용으로 사용되던 권총에 의해 피해자가 살해당했다는 것 뿐. 범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본능적인 감각의 수사관 김호는 이번 사건이 쉽지 않음을 직감하며, 그 배후에 뭔가 거대한 것이 있다는 의심을 풀지 못합니다. 사건을 조사하던 김호는 마침내 그 배후에 보통사람보다 10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범국가적 조직 공생당의 존재를 알게되는데요. 진실에 다가갔다고 생각할때, 자신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한편 강화인간이자, 피살당한 이유진의 측근 준경은 살인범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인페르노 나인’이라 부르는 최면 세계로 들어가, 전장의 한복판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되지요. 김호에게 주어진 15시간의 급박함과, 준경이 살아가는 150년의 긴 고통은 구성에 있어,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그러한 설정은 두 세계의 다르면서도 닮은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인페르노라는 가상의 세계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을 품게 만듭니다.

 


 

 

 

 

그들의 비전과 허영심은 어제의 천사가 오늘의 악마가 되는 역사의 변증법에 뒤틀렸다. 인민의 뜻으로 세워졌다고 생각했던 나라는 괴물이 되어버렸고, 친일파 인간쓰레기들의 역겨운 나라는 신흥공업국의 빛나는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이세대 전체가 자신이 젊은 시절 마음속 깊이 증오하던 체제의 충복이 된 것이다.

 

-P.434-

 

3.

 

 

 앞에서 소설이 수많은 메타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 했는데, 이는 작품의 구성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 세계와, 인페르노라는 가상의 세계, 소설속에 등장하는 '갑오징어 먹물 리조또' 이야기까지 모든 이야기들은 비슷한듯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세계에서 선과, 악은 종이 한장 차이이며 그 기준은 인페르노라는 지옥 안에서 결정된다는 생각을 해봤는데요. 너무 방대한 이야기를 한권에 책에 담아냈기에 읽는 내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살을 붙여 다른 이야기로 진행시켜 나가도 될만큼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려 하다보니, 그 정체성에 있어 모호해집니다. 내가 지금 추리소설을 읽는구나 싶다가, 한편의 판타지구나 싶은. 정신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책을 보며 얼마전 본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수많은 메타포와 환생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음에도, 그 정신없이 진행되는 여러개의 이야기로 인해 영화가 끝난 후에 이 영화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험적인 방법으로로 현실의 지옥을 낯설게 그려낸 이야기는 즐거웠지만, 난해했습니다. 실험적인 이야기도 좋지만, 과거 <영원한 제국>처럼 깔끔하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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