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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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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귀는 아주 깊은 우물입니다.

   당신의 비밀을 말해주세요.‘

  소설 속 구동치는 위와 같이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소설 속 구동치의 대사인 동시에 작가 김중혁의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적건 크건간에, 저마다의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그 비밀은 이 소설의 인물들처럼 누군가를 헤칠 수도 있고 비밀의 주인인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수도 있다. 저마다 그런 비밀들을 껴안은 채, 때론 그 비밀이 정녕 나에게 진정한 비밀인 것인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비밀의 주인이 사라진다면 비밀의 행방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구동치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딜리팅 하며, 그 사람의 비밀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일을 하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 끝에 가 비밀파일들을 다 지우기 전까지, 그 비밀들을 모두 구동치 본인이 껴안은 채 사는 인물이다.

   사람들이 죽고 나면 혹은 기록이나 비밀이 삭제되고 나면 그것들은 정녕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의 특성을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사라질 수 있는 것들에 서사를, 이야기를 입혀 주는 것이 소설의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비밀을 가지고 있던 구동치의 모습에서 작가 김중혁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작가는 아무리 사소한 비밀, 기록이라도 그것이 그 주인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중요한 삶의 이력임을 알고 삶의 고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구동치라는 인물에게 그 비밀들을 지우는 딜리터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밀이란 것이 어떤 사람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그것을 지우는 일 역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관심받기 위해 여러 기록들과 비밀들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흔적들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일 것이라 생각한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으려는 마음이 기억을, 비밀을 만들어 내는 마음이라면 뒤에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이 그런 기억을, 비밀을 이 세상에서 없애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소설의 시작부분에서 주인공 구동치는 자신이 사는 악어빌딩을 이야기하며 ‘땅을 깊게 판 다음 음식물 쓰레기와 동물 사체, 곰팡이, 사람의 땀, 녹슨 기계를 한데 묻고 50년 동안 숙성시키면’ 날 것 같은 냄새가 악어빌딩에서 난다고 이야기한다. 이 지독하고 부정확한 냄새는 어쩌면 켜켜이 묻어 두고 싶은 비밀의 냄새이며 우리 삶의 냄새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냄새 안에서 악어빌딩의 인물들처럼 누군가와 부디끼며, 누군가를 의심하며, 누군가를 마음에 품으며 살아간다.

어느 인터뷰에서 김중혁 작가는 절친인 김연수 작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자신이 죽으면 하드디스크를 버려 달라고 이야기 했고 실제 이 대화가 이 소설의 착상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소설을 써내려가는 마음, 그 이유에는 여럿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마음에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위에 인용한 말이 누구보다 어울리는 사람은 소설을 쓰는 작가 본인일지도 모른다.

 

 

   ‘썼는데, 누군가 지웠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소설 속 구동치에서 작가 김중혁의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실제 작가는 인터뷰에서 구동치가 시니컬하고 무심하단 면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쓴 인물 중에서 가장 작가 본인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구동치의 모습에서 김중혁 작가를 본 이유는 이런 캐릭터의 유사함 때문이기 보다는 하는 일의 유사성, 삶을 대하는 태도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끝에 붙어 있는 작가의 말을 보면 한 가운데 ‘썼는데, 누군가 지웠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 작가의 말을 보면서 아마 작가는 이 소설을 다 쓴 후 세상에 내보내면서 자신에게서 지운 후 또 다른 새로운 인물을, 이야기를 써내려 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구동치가 하는 일이 쓰고 지우는 일을 반복하는 소설가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겠죠.’라는 김중혁 작가의 말을 읽으며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내가 뭘 지우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것은 결국 나의 과거를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 어떤 방향으로 걸어 나갈지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삶을 살든 그 삶은 우리의 기억으로 남게 되고 어떤 모양으로든 이 세계에 흔적들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후회가 적은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그 흔적들에 대한 후회도 적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는 이런 생각들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냥 재밌어서 한 장 한 장 넘기기 바쁘고, 이야기를 따라가기 바빴다. 하지만 작가의 말까지 다 읽은 후 책의 뒷 표지에 홀로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게 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서서히 찾아 들었다. 김중혁 작가가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삶을 이야기 해줄지 기대가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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