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김금숙 지음, 정철훈 원작 / 서해문집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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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가을 아무르강변을 찾았다. 김알렉산드라가 처형된 곳이라는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씁쓸했다. 공산주의자란 이유로 우리에겐 잊혀진 이름이지만 언젠가 완전히 복권될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 날까지의 교두보 같은 책이랄까. 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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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집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외 47명 지음, 김정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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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시집》이 나왔다. '시선집'도 아니고 '시집'이라니. 이 자신감은 무엇인가. 그럴만도 한 것이, 48명의 시인들, 320편의 시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 많은 시들을 직접 선정하고 번역까지 한 김정환 시인의 말마따나 '이만한 분량인 것이', '이러한 구성까지 갖춘' '독일시집'은 없었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김정환 시인은 40여년 간 읽고 고르며 다듬어온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시인과 함께 반평생을 넘어,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넘어 함께 호흡해 온 숨결이 담긴 시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시집'인만큼 다양한 시인들의 이름을 만나볼 수 있다. 괴테, 횔덜린, 하이네, 니체, 릴케, 보르헤르트 등 익숙한 이름들부터 거의 들어보기 힘들었던 울란트, 주칼마글리오, 티트게, 오필트 등등까지. 단행본으로 엮어 나올만큼 유명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 소네트》도 있고, 횔덜린의 <휘페리온>, <빵과 포도주>, 괴테의 민중시들과 니체의 잠언 같은 시들이 담겨 있다. 한 권의 거대한 시집이면서 각각 시인들의 소(小)시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구성이다.


다양한 시인들의 이름만큼이나 다채로운 시들이 담겨 있다. 연대로는 중세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두터운 전통의 독일 개신교 서정시부터 근대 표현주의, 상징주의 시들까지 한 가지 결로 설명할 수 없는 시들의 집합이다. 자연물을 통해 신을 느끼고, 신과 교감하고 노래하는 시부터 인간을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했던 니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우른다.


다종다양한 시들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건, 운명을 향해 도전하는 인간의 숨결이다. 종교적 색채가 묻어난 시이든 그렇지 않은 시이든, 어느 시에나 세상과 고투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서 오라 그렇다면, 오 정적, 그림자 세계의! / 만족이다 나, 비록 나의 현악이 / 나를 그 아래로 이끌지 않더라도. 한 번 / 살았다 내가, 신들처럼, 그리고 그만하면 되었다."(<운명 여신들에게>, 횔덜린), "끌어당겨라 이제 우주를 네게로! 그렇지 않으면 너 질질 끌려갈 것!" (<고유한 말>, 호프만슈탈), "장미는 '왜'가 없다, 꽃 피는 거다, 꽃 피니까, / 유의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묻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지." (<2행 시편 II>, 실레시우스)




분명 친절한 책은 아니다. 김정환 시인의 번역은 다른 번역자들의 번역과는 다른 구석이 있기에 익숙치 않다. 다른 시선집들에는 흔하게 들어가 있는 시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라든가 작품에 대한 친절한 해설은 전혀 없다. 시가 실린 순서도 역자의 말에서 밝히듯 '누구는 모아놓았고 누구는 흩어놓아'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독일시집》이지만 김정환 시인의 시집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꺼운 책을 손에 들어야 한다면 어떤 이유를 댈 수 있을까? 역자의 자신감처럼 세상 어디에도 없는 구성과 기획이라서? 릴케의 연작시라든가, 괴테의 민중시들이라든가, 트라클의 표현주의 시들, 게오르게의 상징주의 시들 등등 이 책 하나면 독일 시 좀 읽었다고 말할 수 있어서? 글쎄, '언제나 넘쳐나는 것은 짝퉁'인 시대에서 그 짝퉁을 분별하는 가늠자가 되어준다고 할 수 있지는 않을까? 여전히 시는 오늘도 세계를 탐험한다. 언어는 변하지만 세상을 경험하고 극복해가는 인간의 노력은 여전하다. 쓰여진지 수백년이 지난 시들이 여전히 울림이 되는 이유겠다. 그 시들이 박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감히 권해본다.



어떤 오래된 책에서

부딪혔다 내가 어떤 말과,

그리고 그것이 나를 제대로 갈겼고

타고 있다 나의 나날 내내

(<그 말> 부분, 슈타들러)

어떤 오래된 책에서
부딪혔다 내가 어떤 말과,
그리고 그것이 나를 제대로 갈겼고
타고 있다 나의 나날 내내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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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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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는 기독교 구약성서의 한 권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3~4천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야기다. 이 '욥의 노래'는 비록 성경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서양문학사의 정전으로도 널리 인정받아 왔다. 빅토르 위고는 "인간 마음에 대하여 쓴 가장 위대한 걸작"이라고 평했으며, 키에르케고르는 욥을 가리켜 "시적 경지에 도달한 지극히 인간적인 시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욥기>가 시대를 초월하여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바로 인간의 고통이라는 보편적인 '난제'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총 42장으로 이뤄진 <욥기>는 사탄이 신에게 욥의 신앙을 두고 내기를 걸면서 시작된다. 욥의 신앙은 인생의 축복 때문이니 그걸 한 번 싹 거두어보자는 것이다. 신의 허락 아래 사탄은 욥의 재산과 가족, 건강을 빼앗아간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어버린 욥은 만신창이가 된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찾아오고, 잘못을 했기에 벌을 받았다는 친구들과 결백을 주장하는 욥의 기나긴 논쟁이 팽팽하게 이어진다. 후반부에 이르러 드디어 문제의 신이 등장한다. "너는 만들어진 주제에 너를 만든 나의 권능을 무슨 수로 이해하겠느냐"는 말에 욥은 수그리고 신앙을 지킨다. 큰 시험을 견딘 욥은 이전보다 더 큰 은총을 받아 많은 재산과 자손을 거느리게 된다.

이기호 작가는 왠지 이 착한 욥의 이야기가 아니 꼬았나(?)보다. 오래 전부터 <욥기>의 후속편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젊었을 때는 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욥의 자녀의 마음으로 쓰고 싶었는데,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되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욥의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욥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욥기 43장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현대문학, 2018)는 제목대로 목양면의 한 교회 건물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을 둘러싼 일들을 그려낸다. 소설은 차례차례 주변 인물들의 증언들로 채워진다. 목양고등학교 학생, 소방대원, 식당 주인, 교회 전도사, 구멍가게 주인 등등. 겹겹이 쌓이는 증언들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향해 다가가면서도, 우리 시대의 욥으로 불리는 최근직 장로의 삶의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꺼풀씩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보이는 건 비루한 인간의 민낯이다. 전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서 여러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었듯이 이기호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도 숨기고 싶은 찌질하고 은밀한 민낯을 드러낸다.

그게 설령 혐오스러워 보일지라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건, 바로 인간 고통의 극지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욥이 겪은 고통을 실제로 겪어보고도 욥을 향해 너무 순응적인 것 아니냐고 누가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고통이 인생의 본질이듯, 약함은 인간의 본질이다. 그 약함을 가벼이 생각하지 않고, 떨리는 마음으로 겨우 붙잡고 한걸음씩 내딛는 일 말고 인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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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이영훈 외 지음 / 미래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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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노예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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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 금강요정 4대강 취재기
김종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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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삶의 터전 함께 일구며 더불어 사는 벗들과 금강에 다녀왔다. 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향한 곳은 공주 공산성. 얼마나 일찍 도착했는지 공산성엔 사람 하나 없었다. 한산했던 성곽 너머 고요히 흐르는 금강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자잘하게 반짝이는 윤슬들이 눈부신 보석 같았다. ‘이래서 비단가람, 금강이라 하는구나연신 감탄사를 내뱉었고, 함께 간 친구들과 사진 찍기에 바빴다.

 

오후에는 운 좋게도 금강에서 오래 활동하신 김종술 기자님을 만나 4대강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님은 손수 준비해서 갖고 다니시는 보드판으로 금강이 어떻게 파괴되어갔는지 설명해주었다. 대충 들어 알고만 있었던 4대강 사업의 민낯을 바라보니 가슴이 아팠다. 이야기 들은 후엔 같이 금강 변을 걸었는데, 강에 다가갈수록 악취가 났다. 펄이 만들어져 발을 조심해야 한다던 기자님은 강가에서 펄을 헤집었다. 믿을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4급수 오염원으로 전락한 금강의 몸부림 같은 냄새였다.

 

금강에서 돌아온 후론 차마 사진첩을 열어보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대충 생각하며 살던 오만이 부끄러웠다. 죄스런 마음 들어 앞으론 잊지 않겠노라며 페북에서 김종술 기자님을 팔로우했다. 때마침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이 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단숨에 구해 읽었다. 책에는 10년 간 금강과 함께 동고동락한 김종술 기자의 눈물겨운 분투기가 담겨 있었다.

 

취재한다고 인부와 관계자들에게 욕지거리 들어가며 협박 받아가며 때론 맞기까지 하고, 집단 폐사한 물고기 마주하며 얻은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오염된 금강에 들락거려 배탈과 두통, 두드러기와 함께 약을 달고 살고, 부족한 취재비 때문에 운영하던 지역신문사를 정리하고 땅 팔고 차는 담보 잡히고, 지인들에게 손 벌리다가 사람이 멀어지기도 하고, 그래도 돈이 없으면 막노동, 대리운전 전전하며 취재비를 벌고, 그렇게 다시 취재를 하고.. 정말 눈물겨운 일들 투성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대체 이런 삶을 왜 사는 것인가. 사람이 이토록 한 가지 일에 미치도록 골몰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10년 전 MB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4대강 사업을 포함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때, 그 허탈감에 마냥 젖어있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박근혜가 당선이 된 후에는 절망이란 단어에 대해 새로 배웠다. 지금이야말로 이민을 가야할 때라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던 때였다.

 

나 또한 그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분간은 조용히 살아야지생각하며 내 한 몸 건사하기에 바빠 눈 닫고 귀 닫고 살았다. 아니 그러면 너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으니까 그저 몇 발짝 뒤로 물러나 저 멀리서 바라보며 살아왔다. 마치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인냥, 그러니까 그 날 공산성에 올라 저 멀리 금강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기자님은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김종술 기자를 만났던 그 날 누군가 물어보았다. 김종술 기자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이라며, 자기는 부모님에게 배운 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저 소박한 대답 속에 담겨있는 삶의 무게가 도저히 헤아려지지 않았다.

 

강은 살아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걸 진짜 진실로 믿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김종술 기자에게 금강은 어릴 적부터 제 몸 온전히 내어준 친구였고, 힘들 때 찾아가면 말없이 위로해주던 믿음직한 친구였다. 금강에 몸과 삶 부벼대며 살았던 그에게 금강은 마치 완전히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 그야말로 친구가 아니었을까. 그런 친구가 죽어가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쏘냐. 그건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글만 말만 가지고서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4대강 사업에 대한 고발을 잘 정리한 책이려니 생각하며 펼쳤던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은 숨 막힐 듯 다이내믹(?)했고, 어떤 이야기보다도 감명 깊었다. 어느 영웅담보다도 배울 게 많은 삶의 진중함이 있었으며, 어느 사랑이야기보다도 아름답고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금강에서 풍찬노숙하며 써내려간 투박한 문장들은 어떤 미문 투성이의 글보다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세상이 다 바뀐 것만 같지만, 차근히 우리 삶을 돌이켜보면 그다지 바뀐 건 많지 않다. 금강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도록 아팠던 금강에겐 아직 그만큼의 시간과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이 이제 막 우리 앞에 펼쳐진 이유가 아닐까. 이 책이 부디 마침표로 읽혀지지 않길 바란다. 엄혹한 시절, 모두가 상처 받은 금강을 떠나고 잊었을 때, 금강을 똑 닮은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켰고, 금강은 그 누군가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노무현) 이젠 우리가 금강에게 배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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