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비용 데버라 리비 자전적 에세이 3부작
데버라 리비 지음, 이예원 옮김, 백수린 후기 / 플레이타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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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도 맑고 명쾌해졌다. 언덕 위 집으로 이사하고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그간 갇히고 억눌렸던 것이 해방된 모양이었다. 근골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한다는 50대에 들어 나는 체력적으로 강해졌다. 기운 없이 지내는 건 선택지가 아니었으므로 늘 기운이 넘쳤다. 아이들을 부양하려면 글을 써야 했고, 힘쓰는 일도 도맡아야 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투한 사람치고 그에 수반하는 비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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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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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우슈비츠는 홀로코스트의 대명사이며,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악의 대명사다.” 20세기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폭력의 세기였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장면은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사건일 것이다. 하나 세간의 이런 통념과 평가는 과연 온당한 것일까? 홀로코스트 말고도 또 기억해야 할 일은 없는 것일까?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2021, 글항아리, 함규진 옮김)은 이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은 히틀러의 정치인생 첫머리에서부터 예견된 건 아니었다. 승승장구하던 나치 독일이 시선을 동쪽으로 돌려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한 1941년, 곧장 무너질 것 같던 전선이 한없이 늘어지게 되면서 국가사회주의라는 히틀러의 기획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붕괴를 더디게 하기 위해 붙잡은 것이 바로 유대인이라는 희생양이었다. 1941년 본격화된 광기 어린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1945년까지 약 1000만 명의 무고한 인명 희생을 낳았다.


히틀러에 다소 가려진 감에 있지만 소련의 스탈린 또한 못지않은 학살자였다. 1930년대 본격화된 공산주의 체제 구축을 위해 소련은 주변 국가들을 내부 식민지로 삼으며 착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실시된 경제 5개년 계획과 집단농장 정책으로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수백만 명이 말 그대로 굶주려 죽고, 대공포 시기에 벌어진 학살까지 포함해 약 400만 명이 학살당했다.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 놓인 땅, “블러드랜드Bloodlands는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국들”에 이르는 유럽 대륙의 중앙부다. 스탈린과 히틀러가 번갈아 땅을 차지하던 1930년대부터 세계대전의 막이 내린 1945년까지 약 12년간 이곳에서 1400여만 명이 학살당했다. “희생자들은 주로 유대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발트 연안국인들로, 그 땅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었다.”


극우 파시즘과 극좌 공산주의라는 정반대에 놓인 두 체제가 번갈아 통치한 블러드랜드는 왜 인류 역사 최악의 학살 현장이 된 것일까? 둘은 이념 좌표만 놓고 보면 한참 멀어 보이지만 둘 다 유럽의 후발국가라는 점, 제국을 꿈꿨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했다. 또한 실의에 빠진 자국민들에게 유토피아라는 허상을 제시하는 정치력이 있었고,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다"라는 무시무시한 이데올로기를 한껏 활용할 줄 알았다. “특정 나라가 선의 보루이며 그것이 온통 악의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면, 어떤 타협이든 정당한 것”이 되고 “무슨 짓을 벌이건 괜찮은 것이 된다"라는 무서운 논리는 한마을과 한 도시를 그야말로 통째로 몰살시킬 수 있는 명분이 되어주었다.


유대인 출신 망명 학자 한나 아렌트는 일찍이 이 둘을 ‘전체주의’라는 이름 아래 묶어 분석했다. 그의 전체주의론은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대 사회의 속성에 집중하지만 블러드랜드의 참혹한 학살 현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과연 인간성의 상실, 악의 평범성과 같은 분석들이 블러드랜드에서 일어난 참혹한 학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아렌트가 주목하는 집단수용소, 그중에서도 아우슈비츠는 분명 대량 학살의 절정이나 전체 학살의 역사에서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말하자면 “아우슈비츠는 <죽음의 푸가>의 ‘코다*’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피에 젖은 땅》에서 “오랫동안 이론이 실제를 넘어서고, 오해가 두드러진 경향”이 있는 유럽의 대량학살에 대해 “확실히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독일어, 러시아어, 이디시어,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등 10개 언어로 된 숱한 문서들, 예컨대 총살되어 숲에 묻혀있다 파헤쳐 진 시신 외투 주머니에서 들어있던 일기,희생자들이 무더기로 묻힌 구덩이에서 시체와 함께 발견된 편지, 전쟁통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공문서 등의 기록들 따위를 쫓아가며 ‘블러드랜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톺아간다.


그에 의하면 “나치와 소련을 비인간이라고 치부하거나 역사적 이해를 넘어선다고 보는 일은 그들이 놓은 도덕적 덫에 걸리는 것이다.”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부인해버리면 윤리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이해를 포기하는 일”은 “다시 말해 역사를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성에 대한 질문’은 이 거대한 기획의 나침반이다.


무고하게 희생된 수천만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그 숱한 목소리를 모아 그려내는 건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그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앞에 쉽게 굴복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외치는 일, 외치고 또 외치는 일뿐”이어도 멈추지 않는 일이다. 그래야 인간은 역사를 통해 성찰하고, 이 참혹한 비극 앞에 겨우 희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는 또한 역사학의 가장 오래된 기획이기도 하다.


*악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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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7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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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올라와있는 원서랑 조금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이 번역본은 믿을만한 게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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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wltn8161 2023-09-2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부분이?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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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고 공허한 책. 인문서의 가면을 쓴 자기계발서.
체제의 혁명가가 되어야 할 철학더러 체제의 파수꾼이 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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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을유세계문학전집 105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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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매일매일 돌아가는 삶이 쳇바퀴처럼 느껴지고 그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거나 늘 해야 하는 일들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면 깊은 고독감에 빠져든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지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리거나 나만 홀로 증발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따라온다. 오래전 십 대 때부터 종종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럴 때면 밤에 잠을 잘 못 이루지만 어김없이 해는 떠올랐다. 날이 밝으면 늘 하던 대로 몸을 움직였고, 삶은 계속 굴러갔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라고 썼다. 지독하게 귀찮고 힘겨운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품고 여러 책들을 파고들기도 했다. 책에는 저마다 삶에 대한 관점이 담겨 있어서 때론 내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하고, 없던 기운을 샘솟게 하기도 했다. 어떤 책은 읽으면서 내가 이해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땐 세상이 살만하게 느껴졌다.

카뮈가 남긴 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방인에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뫼르소라는 젊은 남성이 등장한다. 소설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p.9)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시작하자마자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데, 의아한 건 그에게서 슬픔을 비롯해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뫼르소는 사무적으로 장례 절차를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한 여성을 만나 연애를 하고, 다소 무료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일상을 살아간다. 마치 아무 욕망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애인이 결혼하자고 하자 뫼르소는 아무 동요도 없이 승낙한다. 파리로 전근을 가볼 생각이 없냐는 사장의 말에 뫼르소는 인생에 어떤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 인생관에 대해 말한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딱히 없는 그는 무채색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러다 뫼르소는 친구들과 놀러 간 휴양소에서 한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어떠한 이유도 없이, 후에 그저 “햇빛 때문이었다”(p.124)라고 설명하는 살인을 저지른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절반이고, 나머지는 법정과 감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법정에선 뫼르소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취조와 증언, 변호가 오간다. 검사는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과 그 후의 일상에서 아무 동요 없이 지내던 모습을 밝혀내고, 배심원에게 뫼르소는 불효막심한 사이코패스 같은 비정한 사람이 된다. 법과 도덕의 잣대 아래 그의 삶과 행동이 이해될 가능성은 점점 영으로 수렴한다. 뫼르소의 말처럼 “내 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내 운명이 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p.118)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 비로소 감옥에서 “평온을 되찾”(p.144)는다. 절망하기보다 오히려 행복감을 느낀다. “나도 모든 걸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세상이 나와 아주 닮았음을, 결국 형제 같음을 경험함으로써 나는 내가 행복했었음을, 그리고 여전히 행복함을 느꼈다.”(p.145) 대체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뫼르소는 이해될 수 없는 세상처럼, 자신도 이해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일찍이 눈치챈 것일까. 그러니 자신의 운명은 당연한 것이고,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일까. 햇빛 때문에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이 누구에게도 이해될 수 없지만 자신에게는 자연스러웠듯이 사형집행일에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 또한 온전히 이해되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뫼르소는 어떻게 부서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 P9

내 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내 운명이 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 P118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세상이 나와 아주 닮았음을, 결국 형제 같음을 경험함으로써 나는 내가 행복했었음을, 그리고 여전히 행복함을 느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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