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언니가 그렇게 말한 건 케이크를 먹던 중이었다.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 말이야"

인생이 집을 찾는 여정 같다던 말. 우리의 집은 어디일까? 언젠가는그 집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것이 아닌 욕망과 거짓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집‘에. 그곳을 이정표 삼아 걷는다. 아무리 쫓아내봤자 다시 떼를 지어 찾아오는 불안과 유혹에 눈이 가려져 몇번이나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지라도 먼 나라에 살았다는 어떤 왕의 말처럼 인생이 결국엔 헛되고 헛된 것에 불과할지라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겠지만 슬픔이 너무 커서 세상에 대해 원망만가득했던 마음이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풍경들에 황홀함으로 물드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아름다움은 어쩌면 삶을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정해놓은 목적지도 없이 팔랑팔랑, 느릿느릿 걷는 매일매일이 쌓이는 동안 내 눈길이 오래 머무는 모든 것의 이름 또한 틀림없이 ‘아름다움‘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도처에서 저마다의 빛을 품은 채 자라고있다.

4월 중에 튤립 모종을 사다 심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식물들을 키우는데 소질이 없어 죽이게 될까 두렵지만 정말 잘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뉴스를 보면 볼수록 나라 안팎으로 혐오와 폭력이 득세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그럴 때는 나도 허무와 좌절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하지만 혐오나 폭력만큼이나 허무와 좌절에 빠지는 것 역시 너무나도 손쉬운 해결책이란 걸 아니까, 그럼에도 또다시. 이럴 때일수록 이 봄엔 희망에 대해 조금 더 말하고 싶다. 희망은 더디게 피어나는 꽃이니까. 나무줄기의 색을 조금씩 바꾸고 꽃망울을 날마다 부풀리며 더디게 봄이 오듯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길러내는 일엔 언제나 긴 시간이필요한 법이니까.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행복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행복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밤 찾아오는 도둑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사라지는 찰나적인 감각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스무살이었던 나의 빈곤한 상상 속마흔과는 다르지만 나의 40대가 즐겁고 신나는 모험으로가득하리란 걸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어린 날들에 소망했듯 나 자신을 날마다 사랑하고 있진 않지만, 나쁘지만은 않다. 앞으로 살아가며 채울 새하얀 페이지들에는 내 바깥의더 많은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적어나갈 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에 나오는 우유우유치즈라면과 대파대파후추라면을 가족들과 해먹었다

아무리 가보고 싶았던 호텔이라도 가격을 아는 순간, 전혀 가보고 싶지 않은 곳으로 돌변한다. 한번쯤 먹어볼까 싶었던 요리도 메뉴판을 보는 순간, 절대 그가격만큼 맛있을 리가 없다는 확신으로 바뀐다. 어쩔 수 없어서과한 소비를 했을 때에는 뒤따라오는 죄책감이 어마어마하다. 죄책감은 시도 때도 없이 방법을 바꿔가며 지속적으로 나를 공격한다. 이 집요한 공격의 이유를 알고 싶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심지어 통장의 잔고와도 상관없는 마음의 반작용이다. 놀라울 정도로즉각적이고, 심각할 정도로 공고한그러던 어느 날, 이따위 감각으로 평생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나를 스쳐갔다. 그건 좀 지겹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생각은점점 덩치를 키워갔다. ‘내가 아는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은 왜 존중 안 해? 1년에 한두 번쯤은 나의 성향을 무시해버리자. 고급 레스토랑을 가는 거야. 안 해본 경험도 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맛을 느껴보자. 그러다 보면 또새로운 감각이 깨어날지도 모르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결론은단순해졌다. ‘그래! 모험을 하는 거야.‘

회사 생활을 20년 가까이 하고서야 나는 이제 돈 쓰는 맛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버는 것도, 모으는 것도, 투자하는 것도, 투자로 성공하는 것도 모두 중요하지만,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돈쓰는 법을 아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치통장을 타고 나는 낯선 맛의 세계를 모험하는 중이다. 이 모험은맛있고, 실은 너무 맛있고, 그래서 계속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엔 어디에서 우리 사치해볼까?

우리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그냥 그 자체로 놔둬라. 그리고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이를 테면 시 같은 것으로보르헤스의 이 문장에서 ‘시‘를 ‘음식‘으로 바꾸어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보르헤스의 동의는 얻지 못했지만.)

크루아상 추천 가게 홍댜 올드크루아상팩토리
라이스버거를 먹어봐야지

류승완 감독이 2021년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영상을 찾아봤어요. 화면 속에서 감독은 매우 상기되어있었어요. 긴장한 탓에 다소 장황하게 느껴지는 수상 소감을 들으며 최근 몇 년간 그가 겪었을 롤러코스터를 짚어봤습니다. 전작<군함도>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고 흥행에도 실패하며 마음고생이 심했을 감독, <군함도>를 만들기 직전에는 <베테랑〉으로천만 영화를 만들어서 찬사받은 감독. 절치부심해 해외 올로케로영화를 만들었는데 운 나쁘게 코로나 시국을 만나 영화관 개봉자체가 불확실해진 상황을 맞이한 감독, 거리두기 4단계 속에서 극장 개봉을 강행했고 결국 3백 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긴 <모가디슈>의 감독. 그 모든 상황들을 겪은 후에 시상식무대에 올라서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좋은 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진짜 제가 뭐라도 된 것처럼 들뜨는

순간도 있었고 제 경력이 끝장날 정도의 위기로 보이는 순간도 있었어요. 근데 어떻게 묵묵히 버티고 가니까 이렇게 이 자리까지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뭔가 답답해서 안 뚫리고 어둠 속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영화인들, 조금만 잘 버티시죠. 버티시면좋은 날 옵니다."
"버티시면 좋은 날 옵니다"라고 말하는 감독의 얼굴을 보면서실은 그 말이 그가 스스로에게 맹세하듯 자주 내뱉었던, 그가 가장 절실히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남에게 행하는 조언이라고 하는 건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자기라도 자기를 믿어주려고 다짐하던 문장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양가 부모님도 모두 지방에 계시고, 우리에겐 딱히 아이를 돌봐줄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셋이서 함께 있다. 아내와 둘이서 데이트하는 날은 1년에 두세 번이나 될지 모르겠다. 결국 언제나 식당도 셋이서 가게 되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걸 고르는 게항상 최우선이 되는 것이다. 아마, 이쯤 되면 아이를 키우지 않는사람들도 왜 그렇게 놀이동산이나 동물원 같은 곳에서 ‘돈가스‘를필수 메뉴로 두는지 이해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를 키우지 않는 청춘의 입장에서는 꽤나 괴로운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어서, 막상 적응하고 나면 매번 돈가스 먹는 것쯤이야 그리 대단한 일도 못 된다. 오히려 나는 이것을 약간 재밌는 일처럼 느낀다. 인생을 통틀어서 이렇게 돈가스를 자주 먹을 때가 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절은 일종의 돈가스 시절인 셈이다.

아이랑 살아가는 일은, 나와 아내의 삶에 아이 하나가 추가되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라는 새로웅 세계로 입장하는 일에 가깝다. 그것은 내 어릴 적의 세계도 아니고, 이미 경험했다고 하기엔 거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아주 생소한 세계로의 입장인 셈이기도 하다. 혹은 내가 이미 버렸고, 지나왔다고 생각한 세계로의 시간 이동 같기도 하다.
하루는 벌레 잡기나 모래 놀이로 채워진다. 둘만의 데이트 공간보다는 셋이서 함께 가는 동물원이나 공원이 주요 나들이 일과다.
스시나 양념치킨보다는 돈가스나 짜장면을 먹으러 다닌다. 우아한 음악을 듣기보다는 만화 주제가가 집 안에 울려 퍼진다. 나는어느덧 예상한 적 없는 이상한 삶에 입장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삶이란 오늘 내가 꼭 먹고 싶은 걸 먹거나 지금 꼭 듣고싶은 음악을 듣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 시절 자체를 긍정하는 마음도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매번 내가 꼭 먹고 싶은 ‘바로 그것‘을 먹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내가 먹고 싶은 것과 아이가 먹고 싶은 것, 나아가 아내가 먹고 싶은 것 사이에서 조율해야 한다. 그렇게 조율해서 먹는 것이, 일주일 내내 돈가스일 수도있다.
그렇지만 나는 일주일 내내 돈가스를 먹더라도 불행하진 않다.
오히려 그런 흥미로운 시절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드는것 같기도 하다. 내게 행복이란, 당장 내가 먹고 싶은 걸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한 시절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행복이란, 이 순간의 쾌감보다 더 넓은 무엇이다.

함께 살아가는 행복이란, 바로 그러한 서로의 조율속에서 발맞추어 만들어가는 삶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을 재미있게 만드는 지름길이 있다면, 약간의 사건사고를 자처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큰 사고는 안 된다. 심각한사건도 좋지 않다. 사건사고는 만화 <보노보노>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들처럼 소소한 것들이어야 한다. 고구마나 반딧불이를 찾아나서거나, 나무껍질로 괴상한 놀이를 시도해보거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보는 식이다.
우리는 매번 그런 사고들을 만들기 위해 사는 것만 같다. 돌도안된 아이를 데리고 떠난 여행에서 아이를 안고 다니느라 진땀 빼기도 하고, 대책 없이 분수대에서 흠뻑 젖어버린 다음에는 햇빛에한참 앉아 간신히 몸을 말리기도 하고, 알파카를 보여주겠다며 산골 깊이 들어갔다가 길을 헤매기도 하는 일들을 겪어나가면서, 삶이 따분하지 않은 행복의 지름길로 갔다고 느끼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삶을 약간의 시트콤같이 만드는 것, <보노보노>에피소드처럼 만드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아닐까? 나는 점점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자기 자신의 결핍을 마주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특히, 어린 시절의 결핍은 우리가 스스로 억눌러 기억 저편에 숨겨져 있는 경우도 많아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기도 하다. 내가 그 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그것과 관련된 어린시절의 기억을 뒤져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욕망을 수정해나가고, 진짜 내 삶을 위한,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사람을 위한욕망이랄 것들을 만들어갈수 있다.
물론, 사랑과 권태를 다룬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Waltz)에 나오는 대사처럼 ‘인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일일이 다 메꿔가면서‘ 살 수는 없다. 가령, 내가 마이구미나 페레로로쉐에 결핍이 있다는 걸 알아도, 때론 그 정도는 인정하면서,
나 자신을 약간 귀엽거나 가엾게 여겨주면서 먹어줄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결핍에 관해 잘 안다고 하여도,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한 인간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삶의 여러 결핍들을 찾고, 욕망을 재점검하거나 수정해나가면서도, 때론 내 욕망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 때로 어떤 음식은 그것을 너무도 먹고 싶었던, 내 안의 어린 나를 달래주는 일이 된다. 그러나 어떤 음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나스스로 고쳐야 할 마음의 병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한 욕망과 자신을 괴롭히는 욕망사이에서 삶을 보다 균형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에는 그를 통해 내가 진짜 원하는 삶과 욕망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정지음 작가의 문체가 좋다! 이 작가의 에세이를 더 읽어봐야지!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위안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ㅡ에피쿠로스 주요 교설 중

우리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켜봐줄 누군가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다른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지낸다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받는 것이다.
친구들은 우리를 알아주고 돌봄으로써 우리에게 무력함에서 벗어날 수있는 힘을 불어넣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정한 태도로 걷는 삶은 어떤 삶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잠 -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다 아무튼 시리즈 53
정희재 지음 / 제철소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 많은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