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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1 ㅣ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평점 :
우리가 보통 말하는 중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은 경제적으로 비상하는 대국이지만 엄연히 공산당이 통치하는 공산주의 국가다.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경제적으로는 적극적으로 교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한국과 다른 정치·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중국이 6·25전쟁의 중공군 개입, 북한 옹호 발언 등의 행동을 함으로써 한국과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국이 그런 행동을 하는 주요이유 중 하나가 자본주의와 대립되는 입장에 있는 공산주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중국의 근현대사는 덩샤오핑의 경제개방 전까지는 문화대혁명이라는 반동적인 파괴를 자행했던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죽의 장막에 둘러싸인 전체주의적인 공산주의국가의 특징이 설명되는 경우가 많아 한국 사람들에게 접근부터 쉽지 않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체제의 중국이라고 해서 어떻게 부정적인 면만 지니고 있겠는가. 중국인 이야기는 중국 인물들을 통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국에 대해 널리 알려진 부정적인 사실 외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중화민국 수립 이후 중국 근현대사는 위안스카이, 쑨원, 장제스,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 한 시대의 패권을 쥐었던 승자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이 이들 몇 사람에 의해 역사가 이루어진 건 아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장제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처럼 잘 알려진 정치인부터 쉬베이홍, 궁펑과 같은 예술인, 여성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나온다. 이야기의 종류도 정치부터 로맨스까지 걸쳐져 있어 처음 접하는 이야기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람이 역사에서 활약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중에서 역사에서 주류라고 여겨지는 인물보다는 비주류에 가까운 인물에 대한 글을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내가 주목했던 비주류는 류샤오치, 지식인, 여성, 푸이다.
마오쩌둥은 건국에는 공이 있었으나 치세에는 대약진운동이라는 과오를 저질러 일시적으로 권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마오의 뒤를 이은 류샤오치는 국가주석이 되어 시장경제정책을 도입하는 경제정책을 펼쳐 대약진운동으로 저하된 중국의 생산력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홍(紅)의 인물인 마오는 농민을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켰기에 실용을 중시하는 전(專)의 인물인 류샤오치, 덩샤오핑이 공산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보다 자본가를 관대하게 용인하며 경제성장에 주력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오는 결국 상실된 권력을 회복하고 자신의 정책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 류샤오치를 주자파라 매도하고 문화대혁명을 이용해 제거하였다. 그렇게 류샤오치는 마오에 의해 공적(公敵)이 되었지만 그의 정책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에서 말하는 최종단계인 공산주의는커녕 자본주의라고 할만한 생산력도 확보하지 못한 당시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마오가 말하는 끝없는 계급투쟁(부단혁명론)보다는 적합했음이 훗날 덩샤오핑에 의해 증명되었다. 패자는 당대에는 역적이지만 후대에는 충신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류샤오치를 통해 승자의 빛에 가려진 역사의 비주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지식인은 현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일반 사람들의 인식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곤 한다. 그렇기에 지식인의 주장은 옮고 그름의 여부를 판단하기 앞서 사회로부터 억압과 비난부터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 나오는 지식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거기다 이들이 살던 시대에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절대선의 두 종교를 신봉하며 정권에 비판적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레이전은 자유를 주장하다 감옥에 갇히고 류원덴은 소요를 일으킨 공산당원인 학생을 처벌해달라는 장제스의 요구를 거부하고 그를 후려치려다가 총장직에서 쫓겨났다. 시난연합대학의 펑유란은 중국교육의 표준화를 도모하는 교육부의 훈령에 대해 대학에 개혁이란 이름으로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거부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시키려 했던 이런 지식인들의 모습은 이상과 현실, 저항과 순종 가운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게 한다.
역사의 비주류로는 여성도 뒤쳐지지 않는다. 장정을 감행하며 총알이 박히는 상처까지 입어가며 마오쩌둥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으나 버림받았던 허쯔전, 혁명을 도모하다 중국 양안의 핍박을 받은 셰쉐훙과 같이 역사에서 여성은 사회와 남성에 의해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젠더의 평등화를 말하는 사회주의지만 정작 당시 중국의 사회주의는 여성에게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기를 강요하여 여성들에게 기존의 봉건사회처럼 새로운 족쇄를 채웠다. 이런 중국 여성들의 모습에서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다른 소수자들의 삶은 어떤지 생각하게 된다.
멸망 직전의 왕조의 마지막 왕은 자신의 실정(失政)보다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거센 파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인생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푸이 역시 멸망한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서 시대의 흐름에 의해 폐위되고 궁전에서 쫓겨나고 정원사로서의 생을 마감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런 푸이의 모습을 통해 사람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주위 환경에 의해 삶이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의 인생도 어쩌면 푸이와 그렇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근대 문명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로 비주류보다 주류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편이다. 역사의 승자는 시대를 주도하는 인물이기에 그를 중심으로 보면 시대의 흐름이 보인다. 하지만 너무 승자의 시각으로만 역사를 바라보려 하면 승자가 아닌 패자를 비롯한 비주류는 소수의 타자성으로 치부되어 배제되기 쉽다. 이렇게 되면 역사인물에 대해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승자의 경우 과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기보다 당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정당화가 이루어지게 되고 업적은 실제보다 과대평가될 수 있다. 비주류의 경우 과실은 역시 시대에 도태되니 실패했다는 식으로 비난을 받게 되고 업적은 사회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다며 과소평가 받을 수 있다.
주류중심의 편향된 역사 인식이 좋지 않은 건 역사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서다. 역사 인물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사회적 지위, 많은 재산을 가진 사회의 주류를 선망하고 그렇지 않은 비주류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 주류의 횡포에도 비주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기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하지만 비주류는 주류보다 일반 사람의 삶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주류보다 비주류로부터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라도 비주류에 조금 더 눈을 돌림으로써 역사에 대한 공정한 관점을 확립해야 한다. 이 책은 역사는 반드시 승자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중국 근현대의 역사 인물뿐만 아니라 지금의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좋다고 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은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한국, 미국, 일본 등)과 내륙세력(중국, 러시아, 북한 등)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데 중국과 한국은 국익을 두고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적으로는 한국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중 중국인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하류층의 일자리 저임금의 고착화, 외국인 범죄라는 문제를 두고 한국인과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거기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서구에서 발명된 민족주의보다 더 순혈적인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인과 중국인은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는 타자로 여기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상호간에 역사에 대한 갈등도 깊다. 중국은 한국을 예전부터 자국에 속했던 지방정권이라 생각하고, 한국은 중국을 규모만 거대할 뿐 전통적인 전제정치 때문에 발전이 느렸던 이류국가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향후를 내다보면 중국과 한국은 발전을 위해 갈등은 되도록 피하고 서로 협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해에는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의 역사를 바라볼 때 적대적이고 폄하하는 극단적인 태도보다는 저자처럼 중국인의 긍정적인, 부정적인 면을 모두 보며 중국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런 노력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