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대사전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노무라 마사타카 외 지음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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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즘 발간되는 책은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더라도 쉽게 나오는 정보를 주로 담는 것은 독자에게 예의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의 소개되는 항목은 정확히 말하면 중2병에 걸린 어린 독자들이 향유하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만화 등 문화 컨텐츠에 나오는 지식을 위주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게임 아이템으로 나오는 엑스칼리버, 무라마사 이런거 말이다.

 

 중2병 대사전이라는 제목까지는 참신하지만 내 생각에 다루는 내용은 뭔가 핀트에 많이 어긋났다는 생각이 든다. 대사전이라고 할 정도면 가격 부담이 되더라도 책의 수준이 조금 높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수준은 높지 않고 분량도 빈약하다. 거기다가 중2병이라고 할꺼면 그런 인터넷에서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지식보다는 차라리 중2병 걸린 학생의 의복, 정신세계, 라이트노벨의 특성, 행동양상을 다루는 것이 오히려 취지에 맞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거시적인 항목(제우스나 게이볼그 같은 거시적인지는 사실 의문이지만)을 다룰 때는 보다 깊이있게 다루지 않으면 차라리 안 다루는 것만 못하다.

 

  책에서 항목 하단에 나오는 짧은 대화와 중간에 나오는 칼럼이 그나마 이 책의 취지를 살려주고 있다. AK TRIVIA BOOK은 전국무장, 제3제국 같은 괜찮은 책을 많이 내서 산 거지만 솔직히 이 책은 많이 실망했다. 차라리 중2병 입문서 정도로 제목짓고 내용을 보강하고 다른 항목을 다뤘다면 더 괜찮은 책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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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 2019-03-2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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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변경론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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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사게 된 건 우치다 다츠루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백수시절에 하류지향이라는 책을 읽으며 크게 와닿은 점이 있었기 때문에 하류지향 외에 구조주의와 마르크스에 관련된 책 2권을 읽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살림출판사에서 나온 <일본의 이중권력 쇼군과 천황>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 내용 중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전범(戰犯)들에 대해 조사를 했더니 각자 자신이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에도 그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그럼 책임이 없다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고 전범들에게 묻자 자신은 비록 전쟁에 대해 반대했으나 주위의 ‘흐름’이 그렇게 결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반드시 중론(衆論)이 정론(正論)은 아니다. 역사에서 나타나는 파시즘도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은 지도자의 만행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여기에는 대중의 자발적 지지도 만만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옳지 않은 주위의 ‘흐름’을 그나마 나은 자신의 기준보다 앞선 판단의 우선원칙으로 삼았다.


 이것은 책임회피인가.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전범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전범들이 도덕이 결여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들에게는 주위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어 있는 것이다. 안좋은 것도 말이다.


 저자는 이런 일본인의 특성을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주로 부정적인 시각에서 서술한다. 일본인은 ‘세계 표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변경(邊境)’에 서 있는 자로서 세계 표준을 향해 달려가지만 막상 그 ‘세계 표준’에 도달하여 고유의 것을 만들어 선도할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이다. 저자는 이를 변경성이라고 하는데 일본인은 중심에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으나 자신이 서 있는 곳에는 진리가 있지 않기에 중심에서 모든 일이 결정되고 변경에 있는 일본인은 그 중심을 향해 접근하는 것에 매진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이토고토리라고 하면서 베끼는 일본인의 특성은 역시 진리였어라고 더욱 생각을 굳히게 하는 책일수도 있겠지만 우리 한국인에게도 이 ‘변경성’은 없는걸까? 한국에서도 학문과 문화만 하더라도 외부문물은 선진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말하며 영•미의 사례를 들먹인다. 고유의 것을 주장하나 각종 명칭에서 영어가 한글보다 ‘세련’된 것으로 인식되고 각종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현상도 한국•동양철학보다는 프랑스철학과 같은 서양철학이 주로 응용된다. 우리도 어쩌면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서양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소개될 때 주제 때문인지 주로 변경성을 설명하는 1, 2장이 언급되는데 일본인의 자신과 타자의 구분이 없는 기(機)라는 시간을 설명하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3장과 표음문자 표의문자의 특성을 담고 있는 일본어의 특성과 일본어가 문화상품에 부여하는 장점의 내용을 담은 4장도 생각을 많이하게 한다.


 좋은 책이긴 하지만 일본에 대한 관심이 차츰 줄어들고 다소 생소한 일본사와 어려운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 책이 대중에게 많이 읽힐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일본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도록 하자. 나는 소소한 역사 이야기를 읽는 것만 해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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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말 좀 들어라! 2 - Extreme Novel
마츠 토모히로 지음, 박경은 옮김, 나카지마 유카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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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가족은 제일이라며 가족의 따스함을 강조하는 아빠 말 좀 들어라 2권. 2권은 소라 위주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소라의 삼촌인 주인공에 대한 애정, 주위의 친구 및 소라를 짝사랑하는 남자 이야기, 코스프레 에피소드, 감기 등등 말이죠. 오빠를 좋아하지만 틱틱대는 소라와 주인공 유타 사이에는 사이가 깊어집니다.

 

 2권은 마에시마 다이키, 히나무라 요코, 키타하라 시오리 등의 신캐릭이 나오면서 이야기의 가지가 늘어만 갑니다. 원래 라노베가 좀 잘될려면 성격 다양한 신캐릭 좀 집어넣고 떡밥 가득 넣어야 되지 않겠어요. 네네. 뻔한 클리셰지만 그게 나름 라노베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여캐릭은 보통 순정(소라), 여우(미우), 귀여움(히나), 괴짜(라이카, 유리누나)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봅니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 나오는 서브컬쳐 창작물에서는 여캐릭의 외모와 특징이 다양화되는 강도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여성들을 좋아하는 점들이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같이 다양화 된 것이겠지요. 저는 오다 라이카 좋습니다. 하리센을 든 오다 라이카는 진리입니다.

 

 게이와 오타쿠가 나오는 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본의 서브컬쳐 창작물에서는 흔히 나오지만 한국에서는 글쎄요. 그닥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생각보다 관대하지 않는만큼 오히려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난 보수적

 

 이번 권도 결국 1권에서 실종(죽음으로 잠정적으로 추정)된 누나를 떠올리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네요.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반성하는 주인공 유타, 3권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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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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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보통 말하는 중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은 경제적으로 비상하는 대국이지만 엄연히 공산당이 통치하는 공산주의 국가다.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경제적으로는 적극적으로 교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한국과 다른 정치·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중국이 6·25전쟁의 중공군 개입, 북한 옹호 발언 등의 행동을 함으로써 한국과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국이 그런 행동을 하는 주요이유 중 하나가 자본주의와 대립되는 입장에 있는 공산주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중국의 근현대사는 덩샤오핑의 경제개방 전까지는 문화대혁명이라는 반동적인 파괴를 자행했던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죽의 장막에 둘러싸인 전체주의적인 공산주의국가의 특징이 설명되는 경우가 많아 한국 사람들에게 접근부터 쉽지 않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체제의 중국이라고 해서 어떻게 부정적인 면만 지니고 있겠는가. 중국인 이야기는 중국 인물들을 통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국에 대해 널리 알려진 부정적인 사실 외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중화민국 수립 이후 중국 근현대사는 위안스카이, 쑨원, 장제스,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 한 시대의 패권을 쥐었던 승자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이 이들 몇 사람에 의해 역사가 이루어진 건 아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장제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처럼 잘 알려진 정치인부터 쉬베이홍, 궁펑과 같은 예술인, 여성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나온다. 이야기의 종류도 정치부터 로맨스까지 걸쳐져 있어 처음 접하는 이야기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람이 역사에서 활약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중에서 역사에서 주류라고 여겨지는 인물보다는 비주류에 가까운 인물에 대한 글을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내가 주목했던 비주류는 류샤오치, 지식인, 여성, 푸이다.

 

 마오쩌둥은 건국에는 공이 있었으나 치세에는 대약진운동이라는 과오를 저질러 일시적으로 권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마오의 뒤를 이은 류샤오치는 국가주석이 되어 시장경제정책을 도입하는 경제정책을 펼쳐 대약진운동으로 저하된 중국의 생산력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홍(紅)의 인물인 마오는 농민을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켰기에 실용을 중시하는 전(專)의 인물인 류샤오치, 덩샤오핑이 공산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보다 자본가를 관대하게 용인하며 경제성장에 주력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오는 결국 상실된 권력을 회복하고 자신의 정책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 류샤오치를 주자파라 매도하고 문화대혁명을 이용해 제거하였다. 그렇게 류샤오치는 마오에 의해 공적(公敵)이 되었지만 그의 정책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에서 말하는 최종단계인 공산주의는커녕 자본주의라고 할만한 생산력도 확보하지 못한 당시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마오가 말하는 끝없는 계급투쟁(부단혁명론)보다는 적합했음이 훗날 덩샤오핑에 의해 증명되었다. 패자는 당대에는 역적이지만 후대에는 충신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류샤오치를 통해 승자의 빛에 가려진 역사의 비주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지식인은 현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일반 사람들의 인식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곤 한다. 그렇기에 지식인의 주장은 옮고 그름의 여부를 판단하기 앞서 사회로부터 억압과 비난부터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 나오는 지식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거기다 이들이 살던 시대에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절대선의 두 종교를 신봉하며 정권에 비판적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레이전은 자유를 주장하다 감옥에 갇히고 류원덴은 소요를 일으킨 공산당원인 학생을 처벌해달라는 장제스의 요구를 거부하고 그를 후려치려다가 총장직에서 쫓겨났다. 시난연합대학의 펑유란은 중국교육의 표준화를 도모하는 교육부의 훈령에 대해 대학에 개혁이란 이름으로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거부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시키려 했던 이런 지식인들의 모습은 이상과 현실, 저항과 순종 가운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게 한다.

 

 역사의 비주류로는 여성도 뒤쳐지지 않는다. 장정을 감행하며 총알이 박히는 상처까지 입어가며 마오쩌둥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으나 버림받았던 허쯔전, 혁명을 도모하다 중국 양안의 핍박을 받은 셰쉐훙과 같이 역사에서 여성은 사회와 남성에 의해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젠더의 평등화를 말하는 사회주의지만 정작 당시 중국의 사회주의는 여성에게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기를 강요하여 여성들에게 기존의 봉건사회처럼 새로운 족쇄를 채웠다. 이런 중국 여성들의 모습에서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다른 소수자들의 삶은 어떤지 생각하게 된다.

 

 멸망 직전의 왕조의 마지막 왕은 자신의 실정(失政)보다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거센 파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인생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푸이 역시 멸망한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서 시대의 흐름에 의해 폐위되고 궁전에서 쫓겨나고 정원사로서의 생을 마감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런 푸이의 모습을 통해 사람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주위 환경에 의해 삶이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의 인생도 어쩌면 푸이와 그렇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근대 문명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로 비주류보다 주류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편이다. 역사의 승자는 시대를 주도하는 인물이기에 그를 중심으로 보면 시대의 흐름이 보인다. 하지만 너무 승자의 시각으로만 역사를 바라보려 하면 승자가 아닌 패자를 비롯한 비주류는 소수의 타자성으로 치부되어 배제되기 쉽다. 이렇게 되면 역사인물에 대해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승자의 경우 과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기보다 당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정당화가 이루어지게 되고 업적은 실제보다 과대평가될 수 있다. 비주류의 경우 과실은 역시 시대에 도태되니 실패했다는 식으로 비난을 받게 되고 업적은 사회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다며 과소평가 받을 수 있다.

 

 주류중심의 편향된 역사 인식이 좋지 않은 건 역사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서다. 역사 인물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높은 사회적 지위, 많은 재산을 가진 사회의 주류를 선망하고 그렇지 않은 비주류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 주류의 횡포에도 비주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기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하지만 비주류는 주류보다 일반 사람의 삶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주류보다 비주류로부터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서라도 비주류에 조금 더 눈을 돌림으로써 역사에 대한 공정한 관점을 확립해야 한다. 이 책은 역사는 반드시 승자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중국 근현대의 역사 인물뿐만 아니라 지금의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좋다고 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은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한국, 미국, 일본 등)과 내륙세력(중국, 러시아, 북한 등)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데 중국과 한국은 국익을 두고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적으로는 한국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중 중국인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하류층의 일자리 저임금의 고착화, 외국인 범죄라는 문제를 두고 한국인과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거기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서구에서 발명된 민족주의보다 더 순혈적인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인과 중국인은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는 타자로 여기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상호간에 역사에 대한 갈등도 깊다. 중국은 한국을 예전부터 자국에 속했던 지방정권이라 생각하고, 한국은 중국을 규모만 거대할 뿐 전통적인 전제정치 때문에 발전이 느렸던 이류국가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향후를 내다보면 중국과 한국은 발전을 위해 갈등은 되도록 피하고 서로 협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해에는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의 역사를 바라볼 때 적대적이고 폄하하는 극단적인 태도보다는 저자처럼 중국인의 긍정적인, 부정적인 면을 모두 보며 중국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런 노력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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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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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화폐의 물신성(物神性)은 더욱 강해진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돈으로 세상 모든 일을 해결하고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많은 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돈의 양은 차이가 있고 심지어 빚까지 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사람마다 구매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각각의 사회구성원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물화(物化)가 이루어져 화폐로 교환이 가능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예전에는 거래되리라고 생각지도 않던 탄소배출권, 줄서기대리, 진료예약권 등 물질이 아니어서 직접 손에 잡히지 않는 것까지 거래된다. 보통 이런 추상적인 것들은 예전에는 거래되서는 안되거나 혹은 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장과 효율이라는 두 단어는 모든 것을 분배에서의 효용성만 고려하도록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그러다보니 거래되는 것은 되도록 최고의 가치로 평가되길 바라다보니 높은 가격이 매겨진다. 이렇게 되면 구매력이 약한 사람은 예전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었던 것들을 얻지 못하거나 혹은 새로이 거래되는 것들로부터 소외당함으로써 가진 자보다 열세에 놓이게 된다.


 지금은 선거권에 차등을 두지 않는 보통 선거를 실시하고 있지만 불과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의 근대 국가의 시민들은 가진 재산에 따라 선거권에 대한 제약을 받았다. 지금이야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는 가진 재산에 따라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이 ‘주류의 상식’이었다. 시장의 논리도 이 ‘주류의 상식’과 비슷하다. 공평한 분배보다는 효용성을 고려하는 분배가 보다 사회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제학에서 바라본 관점에 대해 저자는 반박을 가한다. 시장거래의 효용성 못지않게 사람의 공공심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시장거래는 인간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바뀌어 놓는다. 돈을 벌기 위한 사람이 자신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는 광고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을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봐야 하는가? 모든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가져다주겠지만 시장에서는 그 모멸감마저도 구매해버리고 만다. 이런 시장 중심의 사회가 지속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더 이상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사회에 공공심을 가지지 않고 하나의 파편화된 개인으로 남을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시장과 도덕이라는 측면에서만 볼 책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장단점, 공동체의 결속과 해체에 대해서도 진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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