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 - 고종실록 - 쇄국의 길, 개화의 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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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세기 후반의 조선의 역사는 격동과 혼란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급박히 전개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은 살아남기 위해 여러 차례의 시도를 하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 책은 고종의 즉위와 함께 시작된 대원군의 개혁부터 김옥균의 갑신정변까지 시기동안 행해졌던 조선의 최후의 노력을 다루고 있다.


 철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세도정치를 거치면서 더욱 심해진 조선의 병폐를 해결하고자 전면에 나선다. 대원군은 외척에 의해 약화되었던 왕권을 강화하고자 안동김씨 축출, 비변사폐지, 서원철폐, 호포법 등의 개혁을 실시한다. 대원군의 개혁은 기득권의 특권을 줄여나가면서 조선의 폐해를 상당부분 개선시켰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정치는 성과와 동시에 한계도 있었다. 경복궁재건, 당백전 주조 등의 사업은 폐해가 컸고 천주교 탄압, 신미양요, 병인양요를 거치면서 대원군은 척사를 외치며 개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대원군의 쇄국 노선은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서양 열강의 잦은 침입 때문에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당시 중국, 일본의 근대화가 전개된 양상을 비교해 볼 때 대원군의 대응은 분명 적절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을 집권했던 대원군은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실각하고 고종이 친정을 실시한다. 고종은 대원군의 뒤를 이어 조선을 일신하는 정치를 하고자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로 변모한 일본이 운요호를 이끌고 조선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결국 조선은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을 하게 된다. 일본의 발전에 충격을 받은 고종은 개항과 더불어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개화에 착수하지만 개화 반대세력의 반란, 임오군란 등 끝없는 혼란을 겪는다.


 임오군란의 혼란 후 김옥균을 위시한 개화파가 전면에 나선다. 이들은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일본군을 빌려 정권을 탈취하는 갑신정변을 일으키지만 청군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만다. 갑신정변까지 개혁에 실패한 조선은 이제 최후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책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이 몇가지 있는데 우선 저자의 대원군의 치세에 대한 평가를 들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축출에 대한 새로운 시각, 흔히 알려진 대원군 야사(예를 들어 밥을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에 대한 일화)에 대한 반박 등 지금까지 쉽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용이 보인다. 보통 부정적으로 보는 대원군의 개혁에 대해서도 박은식의 발언과 같은 예를 들며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지금껏 근대화를 지연시킨 인물로만 알았던 대원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조선의 개혁 실패의 이유에 대한 분석이 돋보인다. 저자는 조선에 대비하여 일본 도쿠가와 바쿠후의 개혁 능력, 메이지 유신 성공에 대해한국사를 다루는 일반 교양서와 달리 자세하게 평가하고 있다. 조선의 근대화가 중국, 일본과 비교하여 왜 성공적이지 못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조선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나는 조선은 적어도 1820년대부터는 개화에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일본과 호각을 이루거나 혹은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1842년 난징조약과 더불어 개항을 했는데 이는 1853년 일본의 페리 내항보다 10년이나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근대화는 19세기 후반에 가서는 일본에 비해 뒤쳐졌다. 그렇다면 국력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뒤쳐졌던 조선이 자본주의에 기반한 근대국민국가를 창출하려면 이 두 국가 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근대화에 일찍 착수하지 못한 조선으로서는 사실 가야할 길이 너무 한정되어 있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의 태국의 실시했던 개혁을 고려해본다면 당시 조선의 상황이 어렵다 하더라도 왕정 중심의 개혁이라도 추진하지 못한 조선의 기득권은 분명 조선 멸망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20권은 아마 한일병합으로 끝이 날 것이다. 이 한일병합의 책임이 과연 전적으로 조선의 기득권층의 책임일까? 아니면 비정한 제국주의와 일본 때문일까? 조선 멸망의 책임이 어디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19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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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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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사회는 규율에 의해 신속하게 행동하는 훈육된 주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곧 생산성의 한계에 부딪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지’를 강조하는 규율을 대체하여 저자는 ‘무한한 허용’을 강조하는 긍정성의 과잉이 후기 근대에 도입되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훈육된 주체는 시스템에서 ‘모든 것이 할 수 있다‘는 규칙에 의해 스스로를 과도하게 노동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주체로 거듭난다. Post-Modernism이라는 말처럼 후기 근대는 Post(脫)이라는 측면에서는 규율을 극복하는 면모를 보였고 Post(後)라는 측면에서는 주체를 대상으로 하는 착취를 계승했다.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자본에 의한 끝없는 생산성의 확대를 목표로 한다. 끝이 없다는 소리는 다르게 생각해보면 개인은 아무리 노동해도 끝이라고 간주될만한 성과의 단계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후기 근대의 성과 주체는 이를 알면서도 ‘할 수 있다’는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려 끝없는 과다 노동을 하다 탈진하고 어느 순간 도태되고 만다. 그리고 이 도태됐다는 생각은 성과 주체에 우울증을 가져다준다. 타자가 아닌 스스로가 자기 안에 파놉티콘을 만들어 훈련하고 평가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착취에 의한 탈진과 우울증을 탈피하기 위해 멈춤, 휴식, 비어있음을 강조한다. 사실 문명의 발전은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노동을 하는 자 외에도 노동하지 않고 사유하는 자(대표적으로 사제 계급)가 탄생하는 순간 ‘문화’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그만큼 노동이 사회발전을 위해 중요하지만 조용한 가운데 사색하는 사람도 중요한 것이다. 만약 노동하는 사람만 세상에 가득하다면 멈추는 자에 의한 사유가 손실되어 정체 혹은 퇴보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인간의 무한한 진화를 주창하는 계몽주의와 함께 발전한 근대사회는 인간의 해방을 기대했으나 다시 인간의 구속을 생각하게 했다. 그것도 아이러니한 자율성의 구속을 말이다. 이런 가운데 개인과 사회는 다시 한 번 멈춤과 여유를 지속가능한 사회와 자유로운 인간을 위해 찾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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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反하다
하승우 지음 / 낮은산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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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개인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일까?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권력은 소수(국가, 자본)가 점유하고 있고 대다수의 개인은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다. 갈수록 개인이 고립화•약체화되는 사회에서 이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


 개인이 소외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사상들 중 아나키즘이라는 것이 있다. 아나키즘은 개인이 정치적 권력과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소외를 해결하고자 국가와 자본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정치적•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려는 사상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아나키즘의 시각에서 한국 근현대의 개인이 소외된 사례를 나열하고 원인을 파악한 뒤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에서 시민은 항상 권력이 중앙의 정부와 기득권에 집중되어 있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경제적 권리를 발휘하지 못하고 탄압당해 왔다. 시민은 자치공동체를 결성하여 개인이 소외되는 문제를 극복하려 했으나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고 공동체는 와해되고 탄압당했다.


 저자는 이 탄압의 원인이 중앙집권적인 특성을 가진 국가주의·자본주의라 보고 있다. 정부는 정치참여의 방법을 선거로 축소시키고 권력을 시민에게 거의 나누어주지 않고 독점해왔으며, 자본은 기득권의 이익을 보장하는데 주력하고 노동자의 삶과 존엄은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권력과 자율성이 미약하니 다원성은 사라지고 중앙의 통제에 따르는 획일적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저자는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에서는 국가의 영향력을 축소(혹은 배제)시키고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선 시민의 직접행동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경제에서는 자본보다 노동자에 의해 운영되는 협동조합과 같은 자치공동체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다수의 개인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중앙집권적 근대 민족국가에 익숙해져 있는 일반 대중에게 국가의 영향력이 최소 혹은 배제되고 대신 수많은 자치 공동체로 이루어진 사회의 실현을 과연 얼마나 현실성 있게 받아들일까. 아나키즘의 시각에서 쓰여졌다는 사전정보를 접하지 않고 읽는다면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바라는 이 아나키즘에 바탕을 둔 사회는 명령보다는 여러 사람의 합의를 추구하며, 생산수단의 사유보다는 공유를 추구한다. 사유재산제에 익숙해진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거기다 국가의 영향력까지 축소 혹은 배제하자고 하니  마르크스 - 레닌주의에 기반한 공산주의보다 아나키즘을 더 좋지 않게 볼 가능성이 크다.


 사실 나도 아나키즘의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자원이 부족하고 경제활동의 상당부분을 외국에 의존하는 한국의 실정에서 소규모 자치공동체에 의한 생산 방식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독일의 경우 중앙집권적 근대 민족국가의 탄생은 독일 내 각 지방의 경제활동이 너무 독립적이어서 분쟁이 많아 경제활동의 발전을 위해 체결한 관세동맹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아나키즘의 생산방식이 과연 한국에 적합한지는 분명 생각해 볼 문제다.

 거기다 본래 집단은 타자와의 차별을 토대로 결속을 도모하는 속성이 있어 소규모 자치공동체간의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중앙집권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중앙집권은 한편으로는 많은 집단간에 갈등을 해결을 신속히 해결하는 측면도 있다. 아나키즘 같은 경우 중앙의 권력의 공백을 상정하는데 이 경우 만일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수많은 소요로 들끓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책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좀 더 중립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이 책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점과 대비하여 극단의 대척점에 서서 해결하려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많았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로 그 예로 들 수 있다. 「유토피아」에서 제시하는 사회의 모습 역시 너무 극단적이어서 비록 실현가능성은 없었지만 당시 16세기 영국의 문제를 생각해보고 대안을 생각해 볼 계기가 마련해 주었다. 이 책도 그런 「유토피아」와 같은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까지 개인은 얼마나 초라한 존재였는가. 이 책을 참고하여 꼭 아나키즘 사회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유토피아」를 한번 쯤 구상해보는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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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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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SNS에 즐거웠던 파티, 멋진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 맛있게 먹었던 음식과 같이 보통 행복한 추억만 등록한다. 하지만 인생은 SNS와 같이 모두 즐거운 이벤트만 일어나진 않는다.

 

 삶은 항상 행복과 슬픔이 교차한다. 이 책에서 나오는 박완서 선생의 삶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6·25전쟁과 같은 격동의 역사와 함께했던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전 각광받던 작가였지만 유년시절의 삶은 즐거운 일 보다는 가난, 아버지·삼촌의 죽음, 학교 생활의 부적응 등 많은 슬픈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슬픔 생활 속에서도 작가는 소소한 것에서 작은 기쁨이 찾으려 했다. 작가는 어린시절의 향수, 자연에서 얻는 감동,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얻는 깨달음 등 우리가 매일 접하지만 소중함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감성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소소한 일상 외에도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법정스님, 피천득, 장영희, 김수환, 이해인 등 작가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산문이 있는데 사람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거창하진 않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글을 읽고 싶다면 한 번 펼쳐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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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 앤 새디 vol.2 - 탐나는 주부 마조의 영근영근한 생활툰 마조 앤 새디 2
정철연 글 그림 사진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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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일상생활을 다루는 만화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책 외에도 작가의 전작인 마린블루스는 물론이고 낢이야기 등 일상생활을 다루는 작품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예전의 만화들이 커다란 감동을 주거나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면 이제는 생활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만화가 대세인 듯 하다.

 

 이 책은 예전의 마린블루스 애독자라면 알겠지만 전작과 캐릭터만 바뀌었을 뿐(아마 저작권문제인 듯) 기본적으로 마린블루스가 갖고 있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참신한 유머, 트렌디한 상품 소개, 공감대 형성, 상황에 맞는 만화·영화 등의 서브컬처의 패러디 그리고 정치·사회 풍자까지 말이다.

 

 한편 마린블루스와 다른 점을 말하라면 새디가 작가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서 여자와 관련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과 여행관련 정보가 도입되었다는 거다.

마린블루스에는 마냥 밝은 이야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전세금, 부부싸움, 실업 같은 고민 역시 드러난다. 이런 진솔한 작가의 작품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감동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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