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 마르크스 세계관의 핵심을 찌르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시리즈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며 봤던 국사책을 우연히 들춰보던 중 '근대'라는 단어를 보고 '역사에서의 고대, 중세, 근대, 현대와 같은 시대 구분은 누가 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서 시대 구분의 주요 기준 중 하나가 생산력의 발전임을 알게 되었고,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시대 구분을 한 인물이 마르크스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시대 구분을 하게 된 그의 역사관을 알아보고자 자료를 찾아보던 도중 이 책을 발견하였다. 읽어보니 쉽고 마르크스 철학의 입문서로서는 괜찮은 책이었다.

 

 내용은 크게 도입부,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 유물론, 사회주의 국가 베네수엘라 4가지로 나눠진다.

도입부에서는 세계관, 유물론과 관념론 등 철학의 기초적인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이 부분에서 보수는 관념론에 가까운 입장을, 그리고 진보는 유물론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는 걸 알 수 있었고, 왜 진보측 인사들이 점진적 개혁보다는 사회구조를 개혁하는 개선 방법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하여 소개를 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스가 헤겔 사상에서 변증법을 포이어바흐 사상에서 유물론을 취해 만든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대략 내용(content, 생산력)을 이루는 두 요소(테제와 안티테제)가 서로간의 대립을 통해 각자 모순을 발견하여 이를 제거 혹은 극복하여, 새로운 진테제가 도출된다. 동시에 내용이 이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 중에 도출된 진테제를 갖게 되며 변화된 후, 형식(역사에서는 사회구조에 해당)도 새로운 형식으로 변화하며 내용은 이 새로운 형식을 지니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역사 유물론(사적 유물론)의 토대가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며 '화합'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쟁점이 되는 사항에 대해 상대방과 극한의 대척점에서 서서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고 다른 주장의 일부분도 받아들이지 않고 비난만 하는 경향이 강하다. 난 변증법 부분을 읽으며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으며 누구나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좀 더 이해하고 관용을 가지고 받아들이자. 상대방의 단점을 보기보다는 장점을 바라보며 배우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책을 읽었던 이유이자 가장 관심을 가졌던 역사 유물론은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사회구조가 생산에 적합하지 않게 될 경우 사회 계급 간에 계급 투쟁(Class Conflict)이 일어나 투쟁이 종결된 후 사회 계급은 다른 성격의 사회 계급으로 변하고 사회 구조 역시 변화를 겪는다는 이론이다. 지금까지 역사에서의 사회구조는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를 거치며 생산력이 향상되는 사회로 변형되어왔고 미래에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로 전환되어가며 역사는 발전한다고 마르크스는 예측하였다.

 

 이 부분에서 첫 번째로 사회 불안정이라는 측면을 생각해 보았다. 역사 유물론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면 항상 사회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 파괴, 재생의 반복을 겪게 될 수 밖에 없다. 마오쩌둥도 이 역사유물론을 근거로 부단혁명론이라 불리는 끊임없는 혁명을 주장하다 결국 사회의 엄청난 혼란과 파괴를 가져다 준 문화 대혁명이란 괴물을 낳지 않았던가.

 두 번째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너무 수동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내부적 모순으로 필연적으로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본주의는 마르크스 주의를 비웃듯이 오히려 다양한 과정으로 상황에 맞게 ‘변태’를 거쳐왔다.(슘페터의 말을 빌리자면 창조적 파괴) 주어진 모순을 스스로 해결해 오면서 서서히 진화하며 종국에는 공산주의에 맞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

 세 번째로 역사에서의 인간 의지의 중요성도 생각해 보았다. 역사 유물론의 큰 문제는 역사 변화의 원인을 사회적 구조에 큰 비중을 두기에 인간의 의지의 역사에서의 역할은 매우 미미한데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인간은 구조에 결정된다고 보았던 50, 60년대 사상계를 지배한 프랑스 철학의 구조주의가 생각났다. 구조주의는 인간을 구조 속에 종속된 존재로만 보았기에 결국 해체론과 더불어 포스트모더니즘에게 왕좌를 내주지 않았던가. 그람시는 이런 역사 역사유물론의 편향성을 알고 역사 변동의 원인으로 사회구조와 더불어 개인과 집단의 의지 역시 중요시했다. 그람시의 주장을 뒷받침하자면 로마사에서 뛰어난 천재적 능력을 가진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를 지배할 당시 정치체제가 공화정에서 제정(帝政)으로 이행된 사례를 단순히 계급투쟁과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지막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네수엘라가 나온다. 이 부분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생활상을 대략 알 수 있었다. 마르크스철학이 현실에 ‘상당히’ 적용된 예를 들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제시했겠지만 과연 적절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베네수엘라와 차베스를 장밋빛으로만 설명하고 있지만 우선 베네수엘라에 대해 지적을 하자면 산업구조가 석유에 크게 종속적이며 성장률 역시 다른 남미 국가에 비해 낮아 경쟁력이 뒤떨어진 국가다. 차베스 역시 올바른 정도(正道)를 걷는 혁명가로만 소개되지만 막상 언론에서는 헌법개정으로 영구 집권을 시도하였으며 자신을 비판하는 자를 탄압하는 예가 심심찮게 나오는 인물이다. 차베스에게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건 정의고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건 반국가행동이라서 그런걸까? 난 차베스에게서 기형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스탈린을 보게 된다. 이 부분은 작가가 너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나서 첫번째로 세상에서 중요한 가치를 주로 돈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나 자신을 한 번 뒤돌아보게 되었다. 너무 진부한 얘기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돈이 자신과 사회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계량화하는 습성이 있다. 때문에 자신에게 금전적인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라면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있는 일임에도 배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삶에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진 않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돈을 버는 목적은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곳에 사용함으로써 나와 주위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로 조직에서의 '견제'를 생각해 보았다. 견제는 집권 세력의 반대편에게 필요하지만 집권 세력에게도 상대방의 비판을 통해 좀 더 나은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자신을 반성하고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계급투쟁으로 자본가를 제거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를 수립하면 정작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과 노동자는 누가 견제하는가 하는 물음을 가지게 된다. 노동자를 견제하는 세력의 부재는 비판 정신의 결여와 근로윤리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실제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의 생산력은 세월이 지나가면서 떨어졌으며 집권 세력을 견제하는 기구가 없기에 필연적으로 독재 정권이라는 괴물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세 번째로 마르크스 철학에서 말하는 '자본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말하는 자본가는 오늘날 자본과 경영의 분리로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전문경영인의 등장은 이제 자본가계층 모두는 자본가인가 노동자인가 아니면 중간 형태인가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 이 책에서 나오는 자본가는 근대 혹은 산업화 시대 때나 맞는 개념이다. 물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자본가 집단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본가란 존재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세우기 위해 좀 더 높은 수준을 가진 서적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로 생산의 무정부성에 대한 비판이 적합한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에서 공황의 원인은 생산의 무정부성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자본가의 생산의 무정부성 때문에 생산이 수요에 적합하지 않게 불규칙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필연적으로 공황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수요에 맞는 생산을 하기 위해서도 규모가 큰 기업은 국유화시키거나 혹은 정부에 종속적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는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이루어지며 가치가 획일적이며 수요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근대, 산업화 시대나 그나마 맞는 얘기지 이미 사회 구조가 복잡하며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가치의 탈중심화가 극대로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서는 맞지 않다. 거기다 사람의 욕망은 인위적으로 형성될 수 있어 수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동하기에 생산을 계획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산을 계획하지는 않아도 현실에 접근하게 수요를 예측하는 시스템은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약 이 책이 단순한 학습참고서와 같이 마르크스 철학을 소개하고자하는 입장에만 머물렀다면 마르크스 철학을 현대에 맞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인 제13강에 베네수엘라의 예를 제시한 건 단순히 마르크스 철학을 소개하는 것을 지나 현실에서 주장하고자하는 것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 철학의 저서들은 이미 백년이 넘은 예전인 역사에서 '근대'라고 불리던 시기에 쓰여졌다. 이미 '포스트 모더니즘'마저 낡은 것으로 취급하는 현대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힘들어졌다. 마르크스 사상은 뉴턴의 고전물리학과 비슷한 정도에 위치에 있으며 그람시, 알튀세르, 데리다와 같이 마르크스 이후의 철학자들에 의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저자 역시 이 책을 통해 ‘의도하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면 자신의 의도에 맞추어 소개를 하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적합하도록 마르크스 사상 중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은 지적을 하고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제시해야 했다. 저자가 민주노동당원이라 그런지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현실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정부나 조직은 관료제에 의해 운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자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노동의 소외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막스 베버의 비판정도도 제시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자신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소개해 놓고서는 어째서 마르크스의 반대편의 입장은 받아들여 적절하게 절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테제는 안티테제를 통해 모순을 발견하고 대립과 갈등을 거쳐 고차원의 진테제로 도출된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자신이 옹호하는 테제가 안티테제를 통해 모순이 드러나 조금이라도 거꾸러지는 것은 두려웠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마르크스철학을 대이론으로 삼은 마르크스주의 신학자 알튀세르처럼 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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