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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피 북 - 커피 한 잔에 담긴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니나 루팅거.그레고리 디컴 지음, 이재경 옮김 / 사랑플러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 커피란 것은 위 속에 떨어지자마자 일대 소동을 일으킨다.

새로운 생각들이 마치 전쟁터에 나선 나폴레옹의 대육군 부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전투를 개시한다

기억이 바람결에 군기를 휘날리며 군마들처럼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비유는 경기병처럼 웅장하게 진군할 전열을 정비하고

논리의 포병대가 화약과 탄약을 가지고 잽싸게 그 뒤를 따르면

저격병의 총알처럼 날카로운 위트의 화살이 하늘을 난다.

직유가 샘솟고 종이는 검은 잉크로 물든다.

일단 창작의 몸부림이 시작되면 검은 물이 소용돌이치며 끝을 맺는다.

마치 초연에 뒤덮인 전장처럼

 
오노레 드 발자크 <현대흥분제에 관한 고찰>


 

커피를 마시면 몸이 가벼워지고 에너지가 솟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꽤 여러 해 동안 커피를 마실 때 시간을 들여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야금야금 알차게 마시곤 했었다.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면서도 '커피' 자체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커피의 작용에 대한 생리학적인 지식은 있었지만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고 (중독 수준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커피의 생산지는 단지 미세한 맛의 차이와의 관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누구에 의해 커피가 만들어졌는지도 마지막 단계인 카페 바리스타의 기술에 대한 관심 이상은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공정 무역에 대해 알게 되면서 '아름다운 커피'나 공정무역 커피 등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다국적 커피 기업에 대한 어렴풋한 반감과 개인적 차원의 보이콧 정도는 하게 되었다.

커피에 대한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커피의 역사에서 시작해서 커피의 생산과정, 무역구조, 대형 커피 업체들의 이윤추구행태, 스타벅스를 비롯한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설명을 거쳐 공정무역, 유기농인증 커피 등 '지속 가능한 커피'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단순히 커피의 맛과 향,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실용 음식책(?)이 아니라 커피라는 음료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있었다. 사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커피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커피를 매개로 해서 식품의 생산과 거래에 대한 고찰을 담은 책이었다. 

커피에 대한 역사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이성중심 합리주의, 산업사회가 발전할 수록 알콜이 주는 몽롱한 느낌보다는 각성된 상태를 요구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커피는 이에 완벽하게 부흥하는 음료였다. 커피는 인간을 일하게 하는 원료로서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사실 슬픈 일이다. 인간이 꼭 기계가 된 느낌이니).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커피의 문화사적 의미보다는 커피을 둘러싼 경제적, 구조적 측면에 주력한다. 커피의 대량 재배는 탐욕스러운 서구 열강에 의해 식민지에서 시작되었고,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가 현재까지 남아 가난한 나라들의 고단한 노동을 통해 우리가 마시는 커피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커피는 또한 불평등한 유통구조에 의해 다국적 기업들의 배를 불려주는 식으로 거래되고 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이 자급자족 수준을 넘어 기업이나 국가에 의해 다량으로 거래되고 이동경로가 길어지면서 음식에 대해 추상적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먹는 음식'이 구체적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그저 '음식'이라는 의미를 가진 무언가로만 인식된다. 우리는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을 모르고, 그 음식이 어떤 경로로 내 테이블에 오르는지 모른다. 구체성의 결여는 음식에 대한 책임감을 희석시키고 결국 이런 경향은 유통된 음식에 대한 심각한 신뢰도의 저하를 가져오게 되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내 앞에 놓인 뜨겁고 검은 음료를 보지 그 이면에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불공정한 거래 등은 보지 못한다. 커피는 그저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음료일 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추상성을 버리고 이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 사고를 통해 내가 먹는 식품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발언을 하고 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식품 시장 먹이사슬에서 소비자들이 발휘하는 힘은 우리들 대다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자유 시장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결국 다른 무엇보다 소비자 구매력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시장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고 분명한 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재배되고 ,어떻게 가공되고, 어떻게 운반되어야 할지, 그리고 그 거래에서 마땅한 보상을 받을 사람은 누구인지 분명히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미나 그린필드 <커피를 강하게 만드는 법>

일부 부도덕한 식품 생산자나 유통업자에 대해 한탄하고 답답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 가능한 소비자가 주체가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자는 흐름이 거세게 이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공정무역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유기농 음식을 장려하며, 생협을 통해 건간한 먹거리들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힘있는 기업을 배제하고 소비자가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에서 '소비자가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생각들이 힘을 얻고 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러셀이 말한 창조적 충동으로 인한 자발적 움직임이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모여 사회를 파괴적 차원의 에너지에서 생산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고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는 물론이고 내가 먹는 사과 한 조각, 포도 한 송이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음을 이해하고 그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행동하는 것. 창조적 시민, 건강한 소비자에 대한 믿음. 커피에 대한 책을 통해 엉뚱하게도(?)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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