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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노동)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일과 삶을 분리하고자 한다.그래서 종종 직장에서의 노동시간은 단지 생계를 위해 참아내는 시간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그러한 분리가 우리를 얼마나 무기력하고 공허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삶의 가치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삶의 가치는 일과 삶을 일치시킴으로써 의외로 손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규정한다. 사회 속에서의 내 역할을 알려주고 존재를 확인시킨다. 혹자는 인간을 너무 도구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노동으로 사회에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그러면 존재가치가 떨어지는가? 가치를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순수한 나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우리는 신앙에 길을 물을 수도 있고, 철학에 길을 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써 우리는 노동에 길을 묻기도 한다.

자신이 행하는 노동에 몰입하는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일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우리는 '따지지 않고 그저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 대해 늘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집중하는 일이 인류에게 해를 미치는 일이라면? 원자폭탄을 만든 사람들, 인간복제를 꿈꾸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폭주하는 고집쟁이 기관차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 책은 '장인'은 우리가 걱정하듯 생각없이 폭주하는 기관차가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장인의 일에는 그 과정 내부에 철학과 의식이 갇혀있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가 장인이 일하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씌여졌다고 말한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일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에 희망을 거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판도라 상자 속의 공포는 줄일 수 있으며, 물질적 삶을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가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더 잘 알게 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세넷은 사회학 전공자로 노동 및 도시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라고 한다. 스피노자상, 게르다 헨켈상, 헤겔상 등 나에겐 생소한 상들을 많이 수상했다. 그의 다른 저서를 읽은 기억도 없고 그의 짧은 인터뷰 조차도 읽지 못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인문학 책 치고는 꽤 쉽고 재미있게 씌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도 난해한 말로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악취미는 없는 작가인 것 같다. 놀랍다고 생각될 정도로 공감이 돼어 밑줄을 그은 부분이 많지는 않았지만 몰랐던 사실을 꽤 알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논거를 전개하는 학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주로 장인의 역사에 대해서 - 그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그들의 지위를 위협했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등- 2부는 실기편으로 장인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3부는 일하는 과정에 깃든 진정한 장인의식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장인은 무언가에 확고하게 몰입하는 특수한 '인간의 조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는 실제적인 일에 몰입하면서도 일을 수단으로 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부류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숙고해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또 한 부류는 그 방향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기능인 즉 장인은 주로 두 번째 사람으로 묘사되곤 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아니말 라보란스. 그러나 저자는 평가 절하된 아니말 라보란스의 철학과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고 말한다. 그들의 공감적 상상력, 아집에 휘말리지 않은 유연성, 저항마저 포용하는 관용.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덕목은 '진정한' 장인의 덕목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간혹 자신만의 방법을 고집하며 타협을 허용하지 않고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장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매스컴에서 비추는 모습이 그들의 고집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간혹 그들의 작업과정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 상상력과 유연성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만 믿고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저항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변화를 목적에 맞게 이용하고 조정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장인은 우발적인 일과 제약 조건에 긍정적인 가치를 둔다. ... 한 번에 완벽한 일반형을 만들려고 할 게 아니라 먼저 스케치 하듯이 하나의 구조를 만들어 두고 차차로 진화해 가도록 한다. 

장인은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일의 노예가 아니다. 완벽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겸손하며 고집 부리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안다. 성긴 형태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며 자신의 노동이 낳은 작품 자체의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을 즐긴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장인은 얼마나 남아있으며 그들의 가치는 얼마나 올바르게 평가되어왔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장인은 수공업자에만 국한된 개념은 아니다. 작가, 예술가, 의료인, 학자도 결국 넓은 의미의 장인이 될 수 있다. 작가의 한 줄, 예술가의 한 획, 의료인의 행위, 학자의 연구 속에 그들의 철학이 녹아있고 그들의 삶의 가치가 쌓여 나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일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고 있는가. 그 일을 위해 충분히 반복해서 연습하는가. 충분히 몰두하는가. 저항에 부딪쳤을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여유를 가지고 유연성을 발휘하는가 아니면 내 고집을 고수하는데 지나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앞으로 내가 가야할 방향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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