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말을 걸다 - 밥상에서 건져 올린 맛있는 인생찬가
권순이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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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만 8년째 하고 있으면서도 변변한 음식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지만, 친구들이 집에 오는 날이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을 때 간혹 요리를 하곤 한다.

우리 엄마가 자주 하는 말로 "먹는 게 일"일 수도 있지만, 가끔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상대의 반응을 상상하거나 스스로를 위해 요리를 하고 있자면 어울리지도 않게 얼굴에 미소가 씩- 하고 떠오르곤 한다.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주변에 넘쳐나게 많지만, 친구를 위해 나를 위해 굳이 음식을 만드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감정과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그 자신의 유기체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본능적인 몇몇 일 가운데 먹는 일 처럼 사회적이고 감정이 묻어나는 행위가 또 있을까.

<음식이 말을 걸다>의 저자인 권순이 선생님의 음식을 '읽'다 보면 그의 이야기와 감성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조근조근 들려온다.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한 그의 애정, 친구들과 가족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 삶과 인생을 받아들이는 그의 겸허한 태도. 게다가 그가 해주는 음식은 정말로 맛있을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든다. 

그리고 나서는 나에게 음식을 해주었던 사람들과 내가 음식을 해주었던 사람들이 스쳐가면서 다시 한번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씩-하고 떠오른다. 얼마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말라깽이 친구 녀석에게 이 책에 나와 있는 음식 중 몇몇 것을 만들어 밥상을 차려 주고 싶다. 이 책의 저자처럼 능숙하게 음식을 잘할 자신은 없지만, 중요한 건 간이 아니라 나의 애정이라는 걸 알려주면 이해할 것이라고 (혼자) 우기면서.     

  

*유머와 위트까지 넘치는 일러스트 역시 너무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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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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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렌쇼 씨가 경찰관의 이름을 묻고 나서 명함을 보지 않으려고한 이유를 모르겠다. 알드린 씨에게 설명해 달라고 하고 싶지만, 알드린 씨도 갔다. 나는 왜 정상인인 알드린 씨가 크렌쇼 씨를 그런 식으로 따라가는지 모른다. 크렌쇼 씨를 무서워하는 걸까? 정상인들도 다른 사람들을 그런식으로 무서워할까? 만약 그렇다면, 정상이라서 좋은 점이 뭘까? 크렌쇼 씨는 치료를 받아서 정상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 더 쉽게 어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크렌쇼 씨가 말한 '어울리다'의 의미가 궁금하다. 어쩌면 그는 모든 사람들이 알드린 씨처럼 자신을 따라 다니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를 따라다닌다면, 우리는 우리가 맡은 일을 다 하지 못할 것이다." 


자폐인인 주인공 루의 말이다.

고압적인 보스 크렌쇼와, 자신의 보스이자 크랜쇼의 부하직원인 알드린의 모습을 보고 생각한 말. 


 

정상이라서 좋은 건 그냥 묻어서 살 수 있다는 것 뿐이라오, 루.


어차피 사람들은 다 적절한 가면을 쓰고 상호작용을 하고, 일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게 유지되고 있어요.

'적절하게' 어울린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정상인'들은 당신만큼 정교하고 견고한 자기만의 세계가 없고, 조금 더 유들유들해서 남들과의 경계와 좀 더 잘 섞이는 것 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정상인'들은 당신보다 사회에 좀 더 쉽게 '어울리는' 것 뿐이죠.

사회와 타인, 외부세계의 본질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워온 것 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소통을 하는 것은 '정상인'들 사이에서도 아주 드문 일에 속하죠.

당신은, 훨씬 견고하고 완전한 당신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멋대로 구는 '정상인'들의 사회를 잘 보고 있나봐요.

당신이 꼭 사회학자 같아요.

사람들, 참 찌질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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