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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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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행위도 사랑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거다. - 시자키 마사토

이렇게 잡고 있으면 나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또 나를 데려가 줄까. - 스기사타 조미

톡, 톡, 톡, 톡. 샤프펜슬을 네 번 두드린 소리는 ‘네, 가, 좋, 아’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걸로 충분하다. - 루세 신지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 부임하게 된다고 하면 그녀는 부러워 할까. 말없이 소맷자락을 붙든다면 데리고 가도 좋다. - 안도 조미

 

  미나토 가나에 책은 늘 그랬지만, 한번 붙잡으면 중간에 내려놓을 수가 없네요. 뭐지? 뭐지? 하면서 읽다보니 이건 뭐 새벽이네? 보통은 이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으면 그 자체가 기특해서 뿌듯한 마음에 잠이 드는데, 어젯밤은 열대야 때문인지 몸이 끈적끈적해 져서 영 찝찝스럽고 마음도 공허한게 배도 고픈 것 같고, 뭘 먹자니 내 몸에 미안하고, 샤워를 하고 찬물을 한잔 마실까 그냥 누워 있을까 생각하다가 왜 잠도 못자고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지 갑자기 짜증이 솟구치더군요. 읽을 때는 정말 즐겁게 선풍기 타이머가 다 된 줄도 모르고 읽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읽을 때의 긴장과 즐거움이 싹 달아나 버리고 말더라구요. 읽는 즐거움에 비해 여운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것이 이 책의 아쉬운 점이 아닐까 싶어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해요. 고급 멘션에 사는 구치 다카히로(42세)와 그의 부인 오코(29세)가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들에 대해 사정청취가 이뤄져요.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노구치 부부와 개인적인 인연으로 교류하고 있던 M상사의 신입사원 안도 조미와 대학생인 스기시타 조미, 레스토랑 출장 디너를 담당하는 루세 신지 그리고 노구치 다카히로의 부인 나오코의 연인이라고 주장하는 작가 지망생 시자키 마사토. 네, 모두 이름에 이니셜 N이 들어가죠. 범인은 스스로 범행 사실을 자백했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10년 뒤, 중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N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그날, 모두가 가장 소중한 사람만을 생각했고, 가장 소중한 사람이 가장 상처 입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사건의 ‘진실’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죠. N은 N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지켜주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N은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본인 뿐만이 아니라 사건에 관여된 사람들이 그날 누구를 위해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무얼 숨겼는지, 그때는 무시되었던 진실을 이젠 알고 싶습니다. 아니, 알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10년 전 무언가를 숨겼거나 거짓말을 했던 N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서로를 알게 되었는지, 상대를 어떻게 생각 하는지 도요.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N을 위해 공범이 되어줬지만 정작 본인들도 그날 사건에 의문을 품고 있지요.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행동과 이유를 밝히면서 그날의 사건의 은폐되었던 진실이 들어납니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은 N을 위해서, 사랑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뿐인걸요. 그들의 이야기처럼 궁극의 사랑이 죄를 공유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정말 궁극의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 뿐이니까요. 그것도 자그마치 10년 동안이나.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사랑 이야기예요. 조금은 기묘한.

 

  미나토 가나에의 전작인『고백』이나, 『야행관람차』도 그렇고 이번에 나온『N을 위하여』까지, 그녀의 책에서는 참 살인이 대책없이 일어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살인의 이유나 살인의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내기 보다는 살인사건에 얽혀든 사람들의 사정과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두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면 아무래도 식상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죠. 『고백』이후의 책으로는 계속 이렇다 할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은 『고백』보다는 물론이고 『야행관람차』보다도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이 부분은 개인적인 감상일 뿐입니다만,) 『야행관람차』에서는 불편하긴 하지만 인물들의 어두운 내면이 그나마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인물들이 과장되고 억지스러워 보이는 부분이 더러 보입니다. 사람의 추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내면서 감명을 주었던 작가가 여기서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특이한 사람들의 내면상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도 없고, 여운을 주지도 못합니다. ‘이야미스’ 라는 신장르의 책들에서 공감과 감명과 여운을 바라는 것은 대단한 사치일까요?

 

  물론 그녀의 필력은 여전해서 독자를 사정없이 끌어당기는 듯한 그 마력은 대단합니다. 끈적한 여름밤에 정말 제격인 책입니다. 더위도 잊게 만들며 무섭게 몰입하게 되는 책이예요. 그런데도 전작들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남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겁니다. 하루빨리 『고백』의 패턴을 벗어나는,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쌈박한 책을 또 다시 내주길(아니, 국내에 소개해 주길 출판 관계자들에게 바라야 하는 걸까요?) 바랄 뿐입니다.

 

  이 책, 처음 읽을 때는 누쿠이 도쿠로의 『우행록』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읽어나가다 보면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측 증인』과 겹쳐집니다. 묘하게도 말이지요. 하지만 결말을 모두 읽어내고 나면 나쓰키 시즈코의 『제 3의 여인』이 생각납니다. 그게 제 감상이예요. 환영은 결코 내 손에 붙잡을 수 없는 존재이고, 사랑은 곧 환영이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의 극치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오만함이 스스로에게는 궁극의 사랑일 수도 있겠죠. 진실 보다도,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중요했던 그 때, 『N을 위하여』였습니다.

 

 

***

조짐이라는 말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알려주는 사소한 사건을 뜻하지만, 그거이 조짐이었다는 것은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 그것도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에야. 그러고 보니 그때 서쪽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었었는데, 그러고 보니 평소에는 얌전하던 개가 무언가에 겁을 먹은 것처럼 계속 짖어 댔었지, 그러고 보니 여느 때보다 안색이 안 좋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 190

 

- (…중략…)궁극의 사랑이란?

- (…중략…)죄의 공유.

- (…중략…)그거 중고생 녀석 둘이서 도둑질을 했는데 손을 잡고 도망치다 보니 신이 나더라, 뭐 그런 얘기랑 똑같잖아. 완전히 저급한 수준의 사랑이라고.

- (…중략…)그건 공범이지. 공유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상대의 죄를 절반 짊어지는 거야. 아무도, 그러니까 상대도 모르게 죄를 떠안고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것. - 154

 

섬에 있을 때는 그곳만 벗어나면 인생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지. 아빠의 애인 때문이 아니야. 아무것도 없는 좁은 세계 속에서, 행복해지려는 노력도 없이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인생을 끝내기는 정말 싫었어.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즐거운 듯 지낼 수 있는지, 이상해서 견딜 수 없었지. 숨 막혀 하는 사람은 없을까, 내내 동지를 찾고 있었어. 그러다 간신히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 싶었던 게 바로 너야. - 115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를 희생해도 좋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가장 소중한 사람만을 생각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가장 상처 입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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