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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나와 같군요.>

그 생각만 하고 그냥 자리를 떴으면 좋았을 텐데. 도스를 남겨두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도스를 지켜보는 동안,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싱긋 웃었고, 나는 그녀의 눈 속에서 기대감을 보았다. 그래서 그녀를 떠날 수가 없었다. - 122쪽

 

그건 참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졸음이 밀려오는 시간, 강의실에서 우연히 눈을 돌리다가 발견한 것은 그 아이가 쥐고 있던 촌스러운 모나미 볼펜. 날렵하고 깔끔한 외제 펜이 아닌 한 글자 적을 때마다 볼펜 똥이 세어 나오는 싸구려 볼펜에 눈길이 멈췄다. 장점이라고는 지나치게 잘 나오는 잉크와 저렴한 가격 밖에 없는 그 볼펜을 쥐고 있는 손이 나를 설레게 했다. 아마 조금은 고집스러운 성격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대게는 만사에 무심한 태도일 것이고, 그런 주제에 애착이 생기면 집요하게 탐닉하는 괴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았고,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수록 그 아이가 좋아졌다. 사용하는 펜이 같다는 것, 그런 사소한 공통점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끌림’은 그렇게 조그마한 동질감에서 조차 시작될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그건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처와 다르지 않는 욕망을 가졌으니 ‘그녀들’이 서로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

 

애인은 떠나갔고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마저도 잃은 숙녀 마거릿은 우울증을 겪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녀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그녀를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는 지금 하루하루가 너무도 견디기 힘들지만 어머니는 그녀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괴로운 현실에서 자유를 찾고자 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전보다 심해진 어머니의 감시에 집에 있으면서도 감옥에 갇힌 듯 한 고독을 느낀다.

 

셀리나는 영매다.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 소통하고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그녀의 능력을 잘 활용할 줄 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긴다. 그녀가 불러낸 영혼 ‘피터 퀵’이 난폭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브링크 부인이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녀는 사망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게 되고 유죄판결을 받는다. 그녀는 한조각 햇볕만이 허락된 밀뱅크 감옥에 수감되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런 마거릿과 셀리나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우울증 치료를 목적으로 밀뱅크의 수감자들과 대화하는 일을 하게 된 마거릿은 유난히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셀리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녀의 신묘한 능력에 강력한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교류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와 비슷한 고독과 억압된 현실에서의 탈출욕구를 발견하고 더욱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녀들의 마음은 위험한 것이었는데…….

 

 

편견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읽는다면 즐길만 하다.

 

이 책은 광고하고 있듯이 레즈비언 소설이고, 끈적끈적하진 않지만 진득한 동성애 코드로 비벼져 있는 이야기이다. 아마 그런 부분에서 어떤 편견을 갖게 되기 쉬운데 한 가지 밝히자면 이 책을 동성애 연애소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다채롭다. 신비로운 강신술과 책의 서두에 펼쳐진 인사사건의 미스터리, 그리고 생각지 못한 반전 등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재미요소도 제대로 갖추고 있다. 이야기를 놓고 보자면 꽤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펼쳐지는 짙은 동성애 성향의 분위기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본인도 그런 점에서 이미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뜨악하게 여겼던 부분이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다른 모습이더라.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도 좋은 책이다. 때때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아마도 이런 문학이 아직은 낯선 까닭일 테니 참고 본다면 충분히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만한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된다.

 

딴소리를 하자면 전에 재미있게 읽은 미스터리 소설 중에, 데이비드 헌트가 쓴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라는 책이 있다. 사실 이 책은 미국 범죄 스릴러 소설의 대가 윌리엄 베이어가 데이비드 헌트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소설로, 꽤 좋은 반응을 얻어서 <뉴욕타임즈> ‘올해의 주목할 책’에 선정되기도 했고 권위 있는 ‘람다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람다 문학상’이 뭔가 해서 찾아보니, 이게 동성애 문학을 대상으로 주는 상으로 꽤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상이라고 하더라. 물론 저 책에도 그런 요소들이 등장한다.(이 책은 남성과 남성간의 성매매, 연애 등이 주요소재로 등장한다.) 별로 의식하지 않았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 우리에게는 아직 동성애 문학이 많이 낯설고 어색하다. 때문에 대놓고 동성애 문학이라고 하면 당연히 편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큰 부담을 갖고 책을 펼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으면 그저 미스터리 소설로 읽힐 수도 있더라. 『끌림』도 그런 책이다. 단순히 동성애 문학이라고 낙인하고 의식하는 일은 불필요 하더라.

 

또한 두 여주인공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기 쉬운데 마지막장까지 읽고 나니 막상 그렇게 날을 세우고 볼 일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두 여성의 일기를 펼쳐보는 것처럼 구성된 이 책은 일기를 빙자한 고백록인데,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는 문체라 그녀들의 심리상태를 세세하게 엿볼 수 있다. 어떻게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떤 계기로 마음이 통하고 그 마음이 어떤 형태로 얼마만큼이나 커져 가는지 참 생생한데, 그 기록을 읽으며 이런 관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외롭고 괴로운 이들이 어떻게 마음의 접점을 발견하고 마음을 합쳐 가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거더라. 단지 그 뿐이더라.

 

나는 이 책을 오컬트를 소재로 한 훌륭한 반전을 가진, 거기에 동성애 코드가 가미된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다만 조금 위장이 근질근질해 질 때가 있지만 끈적끈적하지도 않고 노골적이지도 않으므로 읽어볼 만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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