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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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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오다가 교통사고 난거 봤어. 쪼그만 꼬마애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달려오던 차가 애를 못본거야. 속도도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쳤는데, 꼬마애가 차에 통 하고 받쳐서 슝 하고 날아가는 거야. 이 얘기를 듣고 순간 웃음이 터질 뻔 했다. 그런데 웃을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 애는 많이 다쳤겠지? 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처참한 이야기란 말인가. 근데 이야기를 전해준 놈이 이상한 의성어를 덧붙이는 바람에 엉뚱하게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면서도 ‘아, 웃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오니 참 난감하기 그지없어서, 이야기를 전해준 놈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 책이 딱 그렇더라. 웃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 작가는 집요하게 웃기를 권한다. 이렇게 난감할 수가.

 

줄곧 애매한 표정만 짓다가 결국 못 참고 맨 뒤로 갔다. 소설을 읽기도 전에 해설을 읽는 것은 논술숙제를 전과를 베껴 해치우는 것 같이 무식한 짓임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아무래도 단편소설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운 까닭이다. 작가의 글에는 분명 어떤 의도가 숨어있을 것인데 그런 것을 캐치해 낼 정도로 기민한 머리가 없어서 기어코 중반까지 읽었을까 말까 했을때 해설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더욱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영원히 우연적인 것이 기적을 구원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해설을 읽고 나서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도 내내 신경 쓰였던 문장이다. 솔직히 터놓자면 거슬렸다. 희극적인 비극이란 이 책을 붙들고 있는 내 모습이 아닌가, 괜히 웃음이 나네.

 

이 책, 상당히 위트가 넘친다. 귀신이 귀신 분장을 한 사람에 놀라 자빠지고 뻘건 게 묻은 형사귀신은 총 맞아 죽은 게 아니라 회를 초장에 찍어 먹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자신의 장례식장에 와 육개장을 푸지게 처먹은 친구들을 지켜보는 총각귀신은 참 의연하다. 아들이 돈 쪼가리 때문에 아버지의 시신을 지하실에 내팽게쳐뒀어도 아버지 귀신은 가족들이 걱정이다. 갈수록 가관인데 자잘한 게 참 깨알 같아서 다 나열해 내지도 못하겠다. 근데 뜯어보면 묘하게 끔찍하거나 비겁하거나 치졸하거나 비참한 속사정들이 숨어있어서 표정이 애매해 지고 마는 것이다. 비극적인 일을 당하고도 남의 일인냥 시니컬하게, 무감각하게 받아들여 버리고는 금세 순응해 버리는(심지어 때로는 개그로 승화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오열하거나 소리치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더 씁쓸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삶이 고되거나 지나간 과오를 후회하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거나 현실에 비참해 하거나 아예 죽어버렸다. 누구 하나 ‘나는 불행하오’하는 사람은 없지만 참 안쓰러운 처지다.

 

특히 ‘죽음’이라는 소재가 정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열편의 단편 중 귀신이 화자로 등장하는 것이 3편이나 되고 나머지 이야기들에서도 꼭 주변인물의 죽음이 소재로 등장한다. 죽음 이라는 것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이 아닌가. 본인이 죽든 주변 사람이 죽든 간에 그런 일을 겪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도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텐데 말이다. 아무리 그 불행에 우연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거나 농담을 건넬 정도로 여유만만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웃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괴리에서 오는 처연함이랄까, 쓸쓸함이랄까. 한편 읽을 때마다 기분이 엉망이 되 버리더라.

 

어디서 보니 ‘우연적인 불행’이라든가 ‘희극적인 비극’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이런 말장난 같은 모호한 말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이 외의 다른 표현을 찾아내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 꼬리는 시종일관 어중간한 위치에서 씰룩거리며 그렇게 읽어나갔다. 딱히 나는 비극을 찬양하거나 인생에 있어 비극이 갖는 어떤 가치에 대해서도 얘기할 깜냥이 없기 때문에, 애초에 이런 터무니없이 긍정적인 전개에는 마음이 잘 옮겨지지가 않아서 진득하게 읽어지지는 않았다. 작가는 문장이 이들의 삶을 따라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하며 글을 마쳤는데, 나는 작가의 글에 내가 제대로 따라가질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마무리를 싶다. 이런 건 좀 낯설었다. 그래도 뭔가를 써내려니 붙은 해설만큼이나 아리송해 지고 말았다.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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