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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문장이자 이 이야기의 요체이다. 그러니까 요는 한 가족이 살해되는 비극이 발생하는데 그 원인은 바로 유니스 파치먼이라는 사람이 문맹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그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째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는지, 그러니까 누구를(혹은 무엇을) 비난해야 하는지 찾아내려고 열을 올린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든 아주 자그마한 계기가 걷잡을 수 없는 큰불로 발화하기 까지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어떤 필연과 그저 그런 수많은 우연히 공교롭게도 제대로 얽혀들어 버린 것일 뿐이다. 물론 주된 원인이란 있을 수 있으나 그 하나로 비극의 전말을 완벽히 설명해 낼 수는 없다. 어떤 일이든 그렇게 간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도 간단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고 어쩌면 불편 일수도 있고 비극일지도 모를 문맹이 일가족 살해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정말 압권이다. 이미 문해인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 못할 문맹의 독에 대해서 소름끼칠 정도로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커버데일 일가 살해사건, 범인은 중년의 가정부

 

커버데일 일가는 교양과 학식, 재산까지 두루 갖춘 집안이다. 딱히 누군가를 핍박하거나 부당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악인들도 아니었다. 지역사회에 잘 섞여들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활방식이 너무나 부유하고 도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살해당할 만큼 부정한 짓을 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한다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유니스 파치먼을 가정부로 들인 일과 그녀에게 어쭙잖은 관심을 표하게 한,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이 누리고 사는 이들 특유의 거만한 태도 정도일 것이다.

 

아마 커버데일 일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유니스 파치먼은 적어도 훗날 성 밸런타인데이 학살 사건이라고 불리게 되는 커버데일 일가 살해사건의 극악무도한 살해범 까지는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글을 읽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비밀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생활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고, 혼자 생활하기에 무리 없이 돈을 조달할 수 있었고(그것은 부적절한 방법이었지만 적어도 살인범 보다는 공갈협박범이 낮지 않을까?) 거처도 안정적이었다.

 

제한적이고 고립된 생활을 하던 유니스 파치먼이 돌연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치며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 그녀에게 시달리던 친구(혹은 심복)가 그녀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커버데일 일가의 가정부 공고를 그녀에게 보여준 일, 유니스의 친구가 슬슬 그녀에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때에 커버데일 일가가 가정부를 모집하는 공고를 낸 일 그리고 유니스가 조앤을 만나게 된 일 이 모든 일은 지극히 우연이었다. 여기에 유니스의 비밀스러운 치부와 커버데일가의 위선적인 관심(나는 지나친 간섭 이라고 적고 싶다)이 절묘하게 엮여서 이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알지 못할 문맹의 독

 

커버데일 일가는 유니스에 대해서 선의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주인이 충실하고 일 잘하는 하인에게 가지는 호감과 같은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유니스를 부당하게 대하지 않았다. 한 집에서 살았고 그들 가까이서 가정 일을 도와 온 유니스가 일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했다고 한다면 유니스의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 의심할 것이다. 실제로 유니스는 타인에 대해서는 주방용품이나 카펫보다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런 무정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이런 성향은 타인의 감정에 동조하지 못하고 진실한 소통이 불가능한 사이코패스 같이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의 치부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읽지 못하는 글이 사방에 널려 있는 집안에서 공포를 느끼는 모습이나 커버데일 일가에게 비밀을 들키고 나서 강한 수치심을 느끼는 부분, 조앤을 만나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반응들을 본다면 지극히 감정적으로 온전한 사람이다.(사이코패스가 열등감이나 수치심이나 고마움 같은 감정을 느낄까?) 유니스가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그녀가 타인을 대할 때 지나치게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며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는 유니스가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고 이런 사실을 남이 알게 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인간관계에서 겪는 문제는 그녀가 문맹이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갖고 있다면 어째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왜 글을 배우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마치 커버데일 일가가 그녀의 치부를 알게 된 후 보였던 반응처럼 문해인 당신은 문맹인 유니스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리라. 나 또한 그랬고) 하지만 그녀가 가진 문제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 문제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암울했던 청춘시절을 거쳐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었다.

 

여튼, 문맹인 유니스는 그로 인해 인간관계에 대한 장애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상상력이나 도덕적인 의식이 결여되는 등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에도 문제를 겪었고 결국 그렇게 무감성 적이고 차가운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리는 문맹의 폐해는 상당히 심각한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역시 내가 이미 문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단지 개인적인 불행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문맹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까지 해를 끼치는 적나라한 과정들은 소름이 끼치기까지 했다. 글을 읽는다는 어찌 보면 당연하고 사소해 보이는 보편적인 능력이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알게 모르게 얼마나 지독한 고립상태로 몰고 가는지, 그리고 그 처참한 따돌림의 결말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 읽어나가는 일은 불편한 일이었다.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첫 문장 부터가 충격이었고, 읽어 가면서도 내내 불편해졌던 책이다. 문맹이라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것은 이다지도 지독한 것일까? 사실 문맹이기 때문에 감성적인 상상력이나 윤리의식 같은 것이 제대로 성숙되지 못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가 어려웠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첫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오랜 시간 동안 단절되고 고립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것이 더군다나 이 세상에 넘처나는 글자들로 부터의 나 홀로 단절이라면 어쩌면 정말 비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이치로 오히려 문해이기 때문에 고립된 자일즈의 경우는 적어도 수치심이나 열등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 자일즈의 경우도 절대로 정상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나마 그에게 문해는 치부가 아니었다. 어쩌면 문맹 자체는 문제가 아닐 지도 모른다. 문해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문맹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문해 중에는 커버데일 일가처럼 불편할 정도로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 말이다.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참 지독한 이야기를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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