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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누군가 ‘왜 그랬느냐’고 물어본다면 조금 진땀을 뺄지도 모른다. 이유를 묻는 그 말은 추궁일 수도 있고 단순한 호기심을 수도 있다. 어쩌면 조금은 힐난하는 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왜’라고 물어봐 준다면 조금은 기쁠 것이다. 그 대답은 대게 옹졸한 자기변호(혹은 변명)이겠지만 그래도 상대방은 나를, 당신을 조금은 이해해 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잘못을 하거나 일반적인 것과 조금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대게 사람들은 내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나는 변명을 하기도 했고, 어쩔 수 없었음을 설명하기 위해 열을 냈었다. 그러면 상대방은 대게 ‘그랬구나.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자’라는 식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실수를 했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건 그런 나를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기회를 준 이해심 있고 너그러운 상대방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조금 이후의 일이었다, 애석하게도……. 요즘은 ‘왜’ 라고 묻는 사람들이 적다. 나는 조금 더 신중해 질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것, 평범한 것의 정의는 날이 갈수록 애매해져 가는데 그나마 중간을 살기 위해 오늘도 용을 쓰고 있다.

 

 

젊은 여자가 애정 관계에 있는 두 남자와 동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아마 사람들은 그녀의 행실에 대해서나 성품에 대해 비난할 것이다. 70대의 노인이 성욕이 동해서 섹스를 하기 위해 눈이 벌게져 있다면 노망났다고 수군거릴 것이다. 어쩌면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 전철역 기둥에서 하늘색 남근이 자라는 것이 보인다고 한다면 그날로 미친 여자 취급을 받을 것이며, 남편이 타주는 커피의 맛이 변했다고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정신병원에 가보라고 할 것이다. 여대생의 방을 훔쳐보는 남자와 세 남자와 동시에 연애하는 방탕한 여대생, 그 여대생에게 어느 날 갑자기 생긴 핏덩이 아기의 이야기는 아침 드라마 소재로도 쓸 수 없을 만큼 막장이다. 음식에서 외도의 맛이나 거짓말의 맛이 난다고 말하는 여자는 관심병이 지나친 철이 덜 든 여자 취급을 받을 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이런 이야기들, 어딘가 낯익기도 하다. 어느 포털 사이트 대문이나 스포츠 뉴스에서 봤던 가십거리 뉴스의 내용 같기도 하다. A양 B군 같은 이니셜을 매단 그 기사들 말이다. 그런 기사들의 특징은 대게가 아주 간단명료하다는 것이다. 물을 표를 단 남녀의 실루엣 그림과 덧붙여진 기사는 대게 네다섯 줄, 딱딱하게 ‘평범’을 벗어난 인간들의 실체를 고발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고발당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인민재판이란 냉소와 비난뿐이다. 사정을 전하는 후속기사 따위는 없다. 기자들마저도 ‘왜’를 궁금해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기사들은 눈에 띄고 자극적이기는 한데, 삭막하고 찝찝하다. OO구의 A군, △△시의 B양에게도 나름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을 것인데 말이다. 그들의 변명을 들어줄 만큼 너그러운 사람들이 적은 까닥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참 따뜻하다. 민망하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어쩌면 경멸해 마땅할 이야기인데 애정과 관심을 갖고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기분 좋더라. 어떤 이들의 어떤 에피소드이지만 그것에 대해 판단하고 비꼰다거나 어떤 경각심을 준다거나 하는 꼰대 같은 꼬장꼬장함이 아닌, 온갖 추태를 다 부려도 받아주는 가족 같은, 오래 사귄 연인 같은 시선이 있었다. 제목은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이지만 실상 제대로 된 연애를 하고 있는 인물들은 없었는데, 다 읽고 나니 오히려 작가와 인물들 간의 연애담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애란 강한 스킨십이나 섹스를 동반하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 감정적으로 서로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겠다는 정신적인 합일이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니까(라고 쓰고 보니 상당히 연애에 대해 감상적인 사람이 된 거 같다.) 어쨌든 추궁이나 비난을 위한 ‘왜’가 아니라,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한 ‘왜’를 끊임없이 외치며 이상해져버린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작가의 편안함에 덩달아 풀어져서 편안히 읽었다.

 

 

새삼 느낀 것이지만, 우리는 대게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야 어찌됐든 말이다. 만약 조금 이상하게 보이거나 미친것 같더라도 한꺼플만 뜯어보면 전혀 이해 못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있다면 그건 정말 미친 것이겠지) 다만 왜 그러느냐고 묻고 이유를 들어줄 사람이 적은 것 같다. 그냥 문득 도쿄에 있지만 도쿄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구레 빌라와 그곳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따뜻한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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