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 EBS 세계테마기행 1
이상은 지음 / 지식채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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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

다른 어디도 아닌 스페인 여행기라는 것에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에 끌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이 방송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기대는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고, 약간 느슨하게 진행되는 초반부와는 달리 이런저런 여행지로 급하게 발길을 돌리는 중후반부의 '강행군'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느긋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저자 이상은 씨의 감상이 방송을 옮긴 '재탕' 수준에 그칠 여행기를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때로는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때로는 낭만주의자의 풍부한 감성으로 스페인을 바라보는 그녀의 다양한 시선은 책 속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다. 뜨거운 태양처럼 열정적이지만 농업을 기반으로 한 나라의 넉넉함과 여유로움도 갖추고 있는 스페인. 그럼 이제 그녀의 발길을 따라가 보자.

여정은 수도 마드리드에서 시작한다. 수도지만 나라의 중추가 되는 문화적, 경제적 지위를 바르셀로나에게 빼앗겨 명목상의 수도로만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책을 보니 중심도시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게 역시 한 나라의 수도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드리드에 이어 도착한 세비야는 과거의 영광과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였다. 도시의 위용에서 대항해시대의 중심지였던 세비야의 옛 모습이 희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마드리드에서 세비야의 반대방향으로 가서 도착한 곳은 바로 바르셀로나다. 스페인 문화예술의 중심지이자 도시가 하나의 예술작품인 곳, 가우디가 사랑했고 피카소가 그림을 그렸던 그곳, 바르셀로나. 역시나 바르셀로나 여정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곳의 풍경과 가우디의 작품도 볼 수 있었다.

 투우의 본고장 론다를 지나 유럽 속에 스며든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그라나다에 다다른다. 스페인 문화를 다룬 교양 수업시간에 스페인 여행에서 맨 마지막에 가야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도시가 시시해진다고 교수님께서 강조하셨던 그곳, 그라나다. 그라나다의 풍경사진들과 그 모습에 매료당한 모습이 눈에 선한 책 속의 글들이 보지 못한 이국의 도시를 거의 낙원에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어버렸다. 그윽한 그라나다의 풍경은 아쉽게도 몇 장 되지 않았고, 여정은 어느새 플라멩코의 혼이 깃든 곳 안달루시아에 닿아있다. 집시의 한이 서린 춤, 플라멩코는 다문화국가인 스페인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집시의 도시를 지나서 알코이 축제를 잠시 즐기고 난 뒤 스페인 제3의 도시 발렌시아에 도착한다. 축구팀의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발렌시아에서는 예상과는 대한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이곳에 대한 설명은 녹지가 많고, 오렌지로 유명하다는 것 정도로 그치고 파에야라는 음식과 그곳에서의 짧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톨레도로 향한다. 수녀원에서 굽는 유서 깊은 빵과 내로라하는 왕들이 탐내던 톨레도 검으로 유명한 톨레도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예스런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톨레도에 이어 라만차 지방의 캄포 데 크리프타나로 여정은 이어진다. 이곳이 바로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다. 풍차는 멈춰있지만 그곳의 풍경은 정말 언제라도 돈키호테가 나타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여기를 끝으로 모든 여정을 마치고 일행은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간다.

바르셀로나의 한 갤러리, 저자인 이상은 씨가 그동안 좀처럼 함께 할 수 없었던 현지인들과 어울려 맥주를 주고받는 이야기가 나오는 그 부분에서 이상은 씨는 비로소 여행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선 안으로의 진입', 한동안 그녀는 선 밖에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뭔가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 선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몇 시간, 며칠에 거쳐 보았던 것보다 더 큰 감흥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한 그 시간이 '명쾌하게 나 자신이 되는 순간'이란 저자의 표현은 언뜻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타인으로, 이방인으로 머물러 있던 자신을 버리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았던 것이다. 여행지의 풍경 속,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결국 또 다른 삶 속에 녹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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