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먹어왔다."

 

 

 

 

 

 

 

 

 

 

 

 

 

얼마 전, 둘째 동생이 배가 아프다며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해서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진통제를 맞고 피를 뽑아 피검사를 했다. 밖에서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흰머리가 지긋하게 나신 한 할아버지가 수액이 달린 쇠 걸이를 끌면서 공중전화를 향해 느리게 걸어왔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가장 먼저 한 말은 “밥 먹었어?” 이었다.

그러한 질문들은 한국 고유의 걱정과 안녕이 담긴 단순한 통과의례적인 것인지 혹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볍게 쓸 수 있는 좋은 안부거리다.

 

 

 

 

 

 

김훈 작가는 돈을 벌라는 말을 뒤로하고 밥을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단순히 먹기 위해서가

우선순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먹고 사려고 그러니?”, “잘 먹고, 잘 살아라.”는 흔히들 듣는 말이다.
‘어떻게 살고 먹으려고 하니? 잘 살고 잘 먹어라.’ 라고 말하진 않는다. 먹는 것이 우위를 독점한다.

 

 

 

 

 

 

그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활했던 모든 경험들을 토대로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비법과 노하우들을 책 도입부분에 적어 놓았다. 아날로그적인 삶을 낙후된 삶이라고 표현한 그이지만, 그런 아날로그적인 삶이 여전히 통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음식이다. 여러 맛 집들이 TV에 소개 될 때 ‘30년 전통의 맛.’, ‘할머니의 손 맛.’ 등 다양한 수식어와 표현과 전통이 소개 된다. 이런 고유한 맛들이 주인이 바뀌어 가면서 서서히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재료 부위의 손질, 양, 비법양념의 제조방법, 보관법 등을 물려주며 최소한의 맛의 유지를 하려고 한다.

 

 

 

 

 

 

 

 

 

 

 

 

 

여러 가지 주제로 글을 쓴 김훈 작가의 생각을 읽으며 나는 특히 인간 뿐 아니라 여러 사물에 대해서 개별성과 고유성을 강조한 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의 생각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의 표현에 피식 웃기도 했다. 그가 제시한 그만의 라면 레시피가 라면을 좋아하는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맛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말했던 것처럼 사람의 혀 역시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도 맛처럼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있었고, 짜고, 쓰고 거부감이 드는 맛도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슬며시 가볍게 넘겨가고 맛있는 부분에서는 오래도록 머무르며 음미했다.

 

 

 

 

 

 

 

 

나는 김훈 작가와 반대로 연필로 글을 쓰는 것보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편하게 느껴진다. “연필로 글을 쓰면 밀고나가는 힘이 느껴진다.” 라고 연필이 아니면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고 김훈작가는 언급했다. 글과 생각은 시대의 흐름을 타기 마련인데, 그와 40년 넘게 차이나는 시대에 태어난 나에게 그의 글은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그냥 모르는 대로 느낌으로 뜻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쓴 일기장처럼 때로는 편안하고 안락했다.

 

 

 

 

 

 

 

 

지난 번 전시회를 둘러보다가 친환경 연필을 파는 곳에서 연필을 잔뜩 사고 덤으로 연필 몇 자루를 받았는데, 서걱서걱 되는 연필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나 역시 초등학생 때는 연필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앞뒤로 연필을 깎아서 한 쪽이 부러지면 다른 한 쪽을 썼고, 몽땅 연필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해맑게 웃었었다. 그리고 그 몽땅 연필을 새 연필과 바꿀 수도 있었다.
2015년에는 메모도 많이 하자는 다짐 하에 다이어리도 샀는데, 특정한 일이 있을 때만 적어대는 바람에 중간도 채우지 못한 채 뿌연 먼지가 쌓인 책장에 애석하게 박혀있다. 그리고 잔뜩 산 연필도 한 서랍장에 고이 잠자고 있다.

 

 

 

 

 

 

 

원고지를 사용해 본 게 언제인지 희미하다. 그 조그마한 정사각형 네모 칸에 기호와 띄어쓰기를 형식에 맞추어 해야 했던 그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아이들은 연필대신 샤프를 쓰고혹은 그마저도 이제 미래 사회가 되면 각자 태블릿 PC를 들고 전자펜을 사용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때마다 그와 관련된 서적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그만의 연륜과 관록으로 써내려가는 필력이 매력적이다. 영어와 컴퓨터를 못하는 것에 대하여 부끄럼이 없지만, 못을 밖을 때 못 머리가 구부러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그다.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자신만의 부끄러움이 있고, 자신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것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개별성이 더욱 도드라지고 돋보이기 마련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15년의 나날들을 잘 마무리 하고 새 해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꾸준히 이어나가길 바란다. 겨울이오면 겨울을 즐기고 다음 해의 봄을 기다리는 자연스러운 계절의 순환처럼 내일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여러 가지 고민도 스쳐가는 인연도 감사하다. 이제 곧 2015년의 12월이 온다.

 

 

 

 

 

 

 

 

 

 

 

 

 

 

 

바다는 시간을 통과해 나가지만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았다. 바다는 늘 처음 보는 바다였다. 바다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웠다. 바다는 논리나 개념이나 사유가 아직 빚어지지 않는, 언어 저 너머의 공간이었으므로, 나는 거기에 마땅히 말을 걸 수가 없었고, 바닷가에서 나는 바다로부터 밀려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수평선 너머에서 새로운 낱말들이 태어나 바다의 새들처럼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p49- <바다>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뜻으로 본 한국역사」한길사, 1977, 444쪽 -p177- <세월호>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나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p181- <돈1>

 

 

 

 

 

 

나는 백만 원이나 2백만 원의 위력과 구매력을 시시콜콜히 이해한다. 백만 원이 있으면 어느 정도의 물건을 살 수 있고, 어느 정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나는 훤히 알고 있다. 돈의 액수가 적어질수록 나의 이해는 점점 깊어진다. 그러나 천만 원이 넘으면, 돈에 대한 나의 이해와 감각은 단절된다. 나는 천만 원이 넘는 세상을 만질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불쌍하다 나여, 이래가지고 어찌 세상을 향하여 글을 쓴답시고 줄담배를 피우며 안자있는가.  -p183- <돈2>

 

 

 

 

 

 

아줌마의 유형화된 질감과 형태는 그것 때문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야 할 죄업이 아니다. 오히려 아줌마는 세월과 더불어 늙어가면서 여성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사내들의 성적 시선의 사슬을 끊어버린 자유인의 이름일 수도 있다. -p260- <여자6>

 

 

 

 

 

 

살은 오직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작동한다. 나는 살의 아날로그를 자세히 쓸 힘이 없다.

그것은 아직도 내 언어 힘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의 아날로그는 언어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언어의 반대말은 ‘살’ 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p276- <손1>

 

 

 

 

 

 

삶은 규격화되어가고 사물에 대해서 날(刀)의 힘을 작동시키는 기쁨도 점점 사라져간다.

슈퍼마켓의 생선이나 고기는 이미 칼질이 끝나 있고, 망가진 가전제품은 전문가가 아니면 손을 댈 수가 없다. 손은 점점 퇴화되어가고 있고, 확인될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세상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삶은 다만 간접적으로 수용되는 정보일 뿐이다. 손은 이제 백수다. 이 백수가 되어버린 손에, 구석기의 그리움은 살아 있다. -p282- <손2>

 

 

 

 

 

 

무기와 농기구는 세계를 개조하려는 인간의 도구다. 인간은 손에 연장을 쥐지 않고서는 이 세계와 맞설 수가 없다.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가 농기구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쇠롤 녹여서 끝을 뾰족하게 벼리면 창이 되고, 폭을 넓히면 호미가 된다. 무기와 농기구는 세계를 개조하려는 인간의 공통된 열망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무기는 전쟁의 도구이고 농기구는 평화의 도구이다.

-p339- <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희돌이 2015-11-3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인했습니다~이 책을 다시 뒤적이고 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