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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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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위대한 개츠비>는 읽어보아야 할 것 같은 고전이지만 어쩐지 끌리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 그렇지만 집에 책이 있길래 한 번 읽었고, 역시나 큰 감흥 없이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나는 사람들이 개츠비가 고전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왜 그런지 찾아볼 생각도 없었다), 몇 년 후 무려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서야 '진짜 뭔가 있는 책인가봐'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책을 집어든다면 그건 내가 아니지! 이 책을 읽게 된 이제서야 나는 다시 개츠비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개츠비는 한 번 읽어 봤으니까 다시 안 읽어도 되겠거니 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 몇 쪽 읽고 반성하며 원작을 읽었다. 몇 년만에 다시 읽어본 개츠비는 대충 읽어냈을 때보다 확실히 함축하는 것이 많다고 느꼈고, 다시 읽으면 뭔가 더 발견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언제 여행 갈 때 챙겨가서 한 번 조용히 읽어봐도 괜찮겠다. 낯선 곳에서 낯선 시선으로. 개츠비는 매력적인 책이란 걸 이제 알아봤다.

 

  개츠비에 관한 내 감상은 제쳐두고(또 이야기할 수 있을 때가 금방 올 것 같거든), 이제 이 책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 책이 평가단 리뷰에 꼽힌 것이 1)그만큼 우리 나라 사람들도 개츠비를 사랑해서 2)'계속 읽는다'는 말에 책을 좋아하는 평가단 여러분이 꽂혀서 인지 분간하지 못하겠다.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은 물론 1)내가 그만큼 개츠비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2)표지를 보고 내가 그런 착각을 했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정말, 이렇게 깊게 개츠비를 파헤치고 싶어하는 사람이 우리 나라에 많단말이야?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의 한 일면을 놀랄만큼 잘 포착했다는 점에서 미국 내 누구나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임과 동시에 수많은 콘텐츠를 재생산해는 작품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웠다'는 것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그것은 이야기를 이야기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없이 그 안의 함축적 의미, 심상, 감춰진 의도를 기계적으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개츠비에 느꼈던 감상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저자의 팬심과 분석에 의해 내 감상이 방해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책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중 나도 동의한 몇 군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시대 문제에 얽혀들면서도 1차원적인 정치 소설이 되지 않았다는 점은 <위대한 개츠비>가 거둔 놀라운 성과다.

 

비평가도 연구자도 입을 모아 칭찬하는 점이지만,

피츠제럴드가 <개츠비>에서 이뤄낸 가장 대단한 성과는

관찰력이 예리한 외부 화자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둘려준다는 점이다.

(중략) 개츠비를 둘러싼 신비로운 분위기는 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개츠비> 영화나 발레나 오페라나 연극이 나올 때마다 그와 비슷한 통설이 부활했는데,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거나 무대에 올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소설의 힘이 플롯이나 캐릭터가 아니라 언어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이 책은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을 정말 좋아하고 흥미롭게 읽었던 데다가 피츠제럴드에게까지 관심이 지대해했던 사람이라면 몹시도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소설과 피츠제럴드에 대한 저자의 모든 이야기가 다 담겨있다. 저자의 연구, 강의한 얘기, 사람들 반응 얘기, 조사 얘기(심지어 조사를 도와준 사서까지!), 파고들고 분석하고 느낀 모든 것들이 다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책을 다시 읽었고-재발견해서 몹시 기쁘고- 영화도 보려고 준비한 참이다. 개츠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파고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서 후회하지 않겠다.

 

  하지만 오로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므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이런 문구에 현혹되어 아, 개츠비를 시작으로 고전 일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인가봐- 하고 착각해서는 안된다(그건 바로 나다). 개츠비의, 개츠비에 의한, 개츠비를 위한! 분석서인 것을! 

 

 

* 맺으며

  나는 피츠제럴드가 생존했을 때 성공을 다 목격했기를 꼭 바라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가 1940년에 죽은 후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55년 이후부터) 특히 64년 즈음에 "걸출한 미국 작가"로 높이 평가받았다는게 안쓰럽다. 저자가 소개한 피츠제럴드의 한 일화를 보면 누구라도 처연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937년 피츠제럴드는 실라 그레이엄을 만난 직후, 패서디나 극장에서 그의 단편 <리츠칼튼 호텔만큼 큰 다이아몬드>를 개작해서 공연한다는 뉴스를 신문에서 읽었다. 그는 기분을 내기로 결심했다. 극장에 전화해서 자신이 작가라고 알리고 좌석 두 개를 예약했다. 또 기사 딸린 리무진을 예약하고 실라와 함께 야회복 차림으로 밖에서 저녁식사를 한 다음 극장으로 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알고 보니 몇몇 학생들이 위층 홀에서 연극을 공연하고 있었다. 위층 홀 또한 거의 비어 있었는데, 열두 명쯤 되는 관객들은 평상복 차림이었고 대부분은 배우들의 엄마로 보였다. 공연 후 피츠제럴드는 무대 뒤로 가서 학생 배우들을 축하했고, 나중에 실라에게 그들은 "멋진 꼬마였다고, 그들에게 잘했다고 말해주었다"고 전했다. 

 

  얼마나 잔인한 현실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은 그의 의지에 존경을 보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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