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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1.

 

우리가 일상으로만 소비해온 공간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출판계의 한 트렌드이다.

 

매일매일 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공간의 의미를 음미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공간은 '계속 그 자

 

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사회적 환경, 그리고 미래의 발전 방향

 

성이라는 '의미'를 지속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사람에게 의미가 없는 공간

 

은 있을 수 없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그것을 잊고 사는 것이 하나의 신선한 지적 충격이라, 이 지점을

 

다룬 책들이 인기를 얻어왔던 것이다.

 

 

근래에는 부산과 인천 등의 도시를 대상으로 하여 공간의 의미를 탐색한 결과물도 나오고 있지만, '일상'

 

'의미'와의 간격이 가장 현격한 곳은 역시 서울이다. 가이드 북 브랜드인 '100배 즐기기'의 '서울' 판

 

서도 즐비쇼핑 정보와 맛집 정보 사이로 '서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북촌'이나 '강남' 은 상징성 강한 공간을 특정하여 웅숭깊게 바라본 저작물도 적지 않다. 가장 최근에

 

는 '서울 사람이 사랑한 음식'이라는 문화사적 시각으로 이주민들의 도시인 서울의 근현대사를 엿보게

 

해준 <서울을 먹다>라는 수작이 있었다.

 

 

 

 

2.

 

이 책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그러한 '서울 찾기'의 지도책 가운데 역대 가장 깐깐한 가이드를 자랑

 

한다. 저자가 '소비자', '여행객', '서울 시민', '연구자' 등의,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하나의 자세를 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7쪽에서 17쪽까지 다섯 장 가량의 '책머리에'를 통해 저자

 

본인이 어떤 경험과 어떤 시각, 그리고 어떤 말투를 갖고 서울을 찾아나갈 것인지에 대해 꼼꼼하게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저자는 인천 출신으로 지금도 인천에 거주하나 낮 동안의 생활은 서울에서 하는 사람이다. '유년의

 

추억을 공유하지' 못했으며 사람 많고 시끄러운 서울은 그에게 낯설고 차가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

 

울이라도 오래 생활하다 보니 '애증'이 생겼다. 매일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공간'의 '의미'를

 

알고 싶어졌다.

 

 

둘. 한편 저자는 독일에서 유학한 독어독문학 박사이기도 하다. 독일에는 도시를 읽고 의미를 찾아가는 데

 

가장 유명한 방법론을 확립한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1892-1940)이 있다. 유대계 독일인인 벤야민은 나치

 

정권을 피하여 파리로 망명했던 시절, '아케이드 프로젝트'라 명명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파리 도시를 '산

 

책'하며 그 공간이 담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뿌리'를 예리하게 밝혀낸 바 있다. 저자는 서울을 읽는데

 

그의 방법론을 채택하기로 한다.

 

 

셋. 그 내용을 전하는 데에는 '구보 씨'라는 캐릭터를 빌려온다. '구보 씨'는 특히 박태원의 제 1대 구보에

 

서 한국 문학 작품 가운데 벤야민의 '산책자'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캐릭터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

 

가 구보 씨의 일일>의 주인공인 구보 씨는 하릴없이 서울을 걸어댕기며 시야에 포착된 근대적 일상을 관

 

하고 그에 대해 감상하고 지적인 성찰을 거친 뒤 그 결과물을 글로 적는다. 박태원 본인이 '고현학(考現

 

學)'이라고 표현한 이 방식은 벤야민의 기획 의도와 대단히 흡사하다. 바로 이런 구보 씨의 캐릭터와 소설

 

적 형식을 빌려온다.

 

 

넷. 이 때 해당 공간을 소재로 공유하고 있거나 혹은 저자의 감상 및 평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학작품, 그

 

림, 사진 등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도록 한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다. 인천 출신, 서울 생활, 독일 유학이라는 구체적 경험을 가진 저자가 서울의 구

 

체적 공간을 찾아 그 의미를 생각한다. 이때의 방법론은 벤야민의 '산책'과 박태원의 '고현학'이며, 형식은

 

'구보'를 주인공으로 하는 평론 + 소설이 될 것이다. 문학작품과 사진, 그림 등이 이해를 돕는다. 이런 설명

 

이 끝난 뒤 책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초반을 패러디한 '프롤로그'로 바로 뛰어든다. 

 

 

그러니까 이 책의 효율적인 감상법은 다섯 장 가량의 '책머리에'에 제시된 지침을 얼마나 습득하고 공감하

 

는가에 달려 있다. 대단히 특정한 방향으로 걸어가게 될 것이라 산책인지 탐험인지 알 수 없는 이 서울 찾

 

기 길에, 가이드를 얼마나 신뢰하는가가 독서의 만족도를 결정할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지엽적인 내용에

 

대해 심상한 감상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 그리고 자세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는 쪽이

 

건설적이겠다.

 

 

 

3.

 

첫번째. 실체적 자아인 저자 본인에 관해.

 

 

앞서 밝힌 것처럼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도 서울에 대한 '애증'이다. 부대끼고 살다

 

보니 정이 들었지만 애당초 내게 정을 줄 생각은 없었던 공간. 하지만 오래 붙어있기도 했고 앞으로도 그

 

안에서 살 것이다 보니 온전하게 사랑하고 싶다, 는 말일 것이다.

 

 

기에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내가 알고 사랑해야 할 공간이며 그 공간은 나에게 사랑을 돌려주어야

 

다' 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경험에 의한 것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나는 이런 인식의 냄새를 주로 '촌

 

사람'에게서 맡는다. 이 때의 '촌'이란 인구 수 만 이하의 행정단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 외의 모든

 

지역을 포함하며, '촌사람'이란 내 고장의 연원과 출신 연예인, 그리고 단골 술집과 숨겨진 맛집 따위를 일

 

거에 나열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사람들은 지리, 문화, 역사적 정보 등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인

 

식'하고, 소비 행위나 친목 관계 등을 통해 그 안에 자신의 '각인'을 남겨, 마침내 중립적인 '공간'을 사적

 

'영토'로 전환시키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삼수갑산 보다도 광역시로 호칭되는 대도시 출신의 '촌사람'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

 

표출되는 것 같다. 인구 수나 경제적 지표 등으로는 같은 '대도시' 급인데 서울/비서울의 프레임에서는

 

저 비서울일 뿐인 열등감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추측하고 있다. 인천 시장도 아니면서 '서울

 

외항이었을 뿐인 내 고향 연안부두에 흐르는 눈물'을 읊고 다니는 나 또한 그런 축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저자가 행정적으로는 인천 시민, 생활은 서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졌다는 점은 같은 특성을 공

 

유한 입장에서 볼 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집필 동기로 여겨진다. 쉽게 말해, 서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서울 책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서울 촌놈'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막상 서울 사람 가운데

 

서울의 정보를 곳곳이 꿰고 있거나 남다른 애향심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란 (경험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

 

다. ('내 공간'이라고 인식하기에너무 넓어서인지, 혹은 너무 많은 종류와 너무 많은 양의 사람이 있어서

 

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니까 서울 사람이라면 깊은 '애증'으로 서울 책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

 

다. 

 

 

이 동기는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독자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서울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나 새로운 시각 등을 전해 주면 좋을텐데, 굳이 '나는 촌놈이야'라는 자의식을 갖고 서울의 탈공

 

동체적인 면, 구성원을 소외시키는 면 등을 부각시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 혹은 살고 있는 '공간'을 굳

 

'영토'화, 더 속말로 말하면 '나와바리'화 시키고자 하는 그 욕망에서 폭력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도 역시 불편할 수 있다. 

 

 

 

 

4.

 

두번째,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방법론을 가져온 것에 관해.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그렇고 이 책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도 그렇고, 두 작가는 파리와 서

 

울이라는 대도시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아케이드'를 택했다. 이 책 뿐 아니라 복수의 사전에

 

서 공통적으로 택하고 있는 정의에 따르면 아케이드란 '열주(列柱)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군(群)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된 통로공간'을 가리킨다. 본래는 콜로세움 등에 사용된 장치라고 하나 오늘날에는 홍콩이

 

대만 등지의 쇼핑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상점 사이의 통로 위로 아치 형의 덮개를 쭉 덮어 놓아 비

 

더라도 상관 없이 쇼핑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아케이드이다.

 

 

벤야민이 언급한 것도 이쪽의 아케이드이다. 그는 '세기의 수도'였던 파리의 아케이드를 관찰하며 그 안에

 

서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자본주의의 문화적 뿌리'를 읽어낸다.

 

 

그런데 저자가 '관찰-성찰-평론'의 방법론만이 아니라 '아케이드'라는 상징까지 빌려왔다는 데 이 책의 특

 

징이 있다. 비록 '지하도, 공중 가교,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건축물'까지로 그 정의를 확장하고 '대형 쇼

 

핑몰, 지하상가, 버스 정류장'까지도 아케이드의 한 변형으로 간주했다고는 하나, '아케이드'라는 상징을

 

택한 순간 그가 보는 서울은 벤야민이 파악한 파리의 본질에서 멀리 갈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대도시', 그

 

것도 구성원을 고립화시키며 소비 자본주의에 매몰되게 하는 대도시이다. 본문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

 

는 이 시각은, 이전에 이러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독자에게라면 신선한 지적 쾌락이겠지만, 이 책이 아

 

니라도 여러 사건과 경험 등을 통해 절감해 온 독자에게는 다소 지겹거나 피상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5.

 

'구보 씨'를 빌려온 것에 관해.

 

 

서울을 걸어 다니며 관찰하고 성찰하는 책을 쓰는 데 있어 단 한 명의 캐릭터만을 패러디할 수 있다면 구

 

씨야 로 적격이긴 하다. 특히 종로구와 중구를 중심으로 하여 인근의 지리를 한번에 떠올릴 수 있는

 

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실제로 서울 길을 걸으면서 작품을 썼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서울을 걸었다든지 걸으면서 생각과 평론을 하고 소설 식으로 썼다든지 하는 의도는 새로운 '구보

 

씨'를 등장시키는 것 하나만으로도 명료하게 전달된다. 게다가 구보 씨라면 원작자 박태원 뒤로도 여러 명

 

의 후배 작가들에 의해 활발히 패러디되어온 바이다. 표절의 혐의는 걱정할 바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구보 씨'라는 캐릭터의 활용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나는 이 책 전에는 이 책의 저자

 

를 몰랐지만, 책날개의 정보와 저자 자신이 자신의 목소리로 밝힌 이력만을 가지고도, 본문 속에 등장하는

 

'구보'라는 인물이 거의 완전한 저자 자신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책의 주된 내용이 '관찰 - 성찰 -

 

평론'이기 때문에 시각이 주관적인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 서적

 

인 만큼 그 시각은 주관적이고 독창적일수록 좋다. 그러나 인천에 거주하며 서울에 오가야 하는 고충이라

 

든지, 독일 유학 생활의 경험담이라든지, 전공인 독문학에 대한 소회라든지, 이 책을 집필하는 데 영감을

 

준 발터민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라든지 하는 '개인적 경험' 차원의 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으로 서술되는

 

지점에 이르면, 왜 굳이 자신을 '구보'라는 3인칭으로 불러가며 '코스프레'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럴 거라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영감을 얻었다'라고 밝힌 뒤 담담하게 '나'의 호칭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아주 개인적인 감상임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나는 이 부분에서 자신을 '본좌는' 등으

 

로 호칭하는 부풀려진 과시욕이나, 'OO이는요-'라고 호칭하는 부담스러운 애교를 떠올렸다.

 

 

물론 저자는 이 책이 소설의 형식만을 빌려왔을 뿐 '소설+평론'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임을 수 차

 

례 명시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거니와, 특히 전공자가 대중서적을 집필

 

하는 데 있어 장르의 확장을 고민하는 것은 천금을 주고라도 따라 배우고 싶은 자세이기도 하다. 내가 느

 

이질감, 이물감은 그저 낯설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6.

 

나는 사실 좀 열없이 첫번째 독서를 마쳤다. 앞서 지적한 바의 '단점'들은 '이런 식으로 보면 단점일 수도

 

있겠지'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느꼈던 거북함이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독후감을 위한 발췌독을 마치고 나

 

면 다시 읽을 생각이 없었다. 와중 마지막으로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벤야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책의 마무리 중에서도 맨 끝 문단이었다.

 

 

산책의 보람은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의 아케이드를 걸으며 길바닥에 음각된 '나'라는 말의 희미한 윤

 

곽을 보았습니다. 저는 소망합니다. 제가 목도한 '나'라는 말이 당신이라는 '나'의 온몸으로 스며든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되울리기를. 그럼으로써 서울 거리에 새겨진 서로 다른 수많은 '나'들

 

이 공명하기를.

 

 

그렇지! 걸렸어! 나는 마음 속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형이 인천 출신이라 이런 글을

 

거잖아. 형이 서울 와서 쓸쓸했고, 독일 유학 가서 외로웠어서 이런 책을 쓴 거잖아. 형은 구보 씨 탈을

 

고서도 계속 형이 경험한 거랑 형이 생각하는 것만 얘기했잖아. 결국 '나' 얘기를 하고 싶었으면서, 서울

 

관해 이야기하는 척, 벤야민처럼 쓴 척, 구보의 생각인 척 얘기하다가, 끝에 결국 들통났구만! 마지막에

 

내는 사람에다 '서울 영등포에서 구보 드림'이라고 해 봐야 소용없어.

 

 

흥분한 나는 작가의 인터뷰를 탐색했다. 책에서조차 드러난 이 속마음이라면 구두 인터뷰에서는 속절 없

 

통날 것이다, 하고. 과연 하나 찾았고, 과연 서울에 대한 애증이니, 벤야민은 이런 사람이니, 구보를

 

택한 유는 무엇이니 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그런데 마지막 질답을 읽는 내 표정이 굳었다.

 

 

     마지막으로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의 화두는 공간입니다. 공간은 인간 실존 양식을 해독하는 실마리입니다. 독

 

자들에게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상 공간에 대해 애정을 갖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공

 

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품을 팔아 걸으며 그 공간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산타워에서 올라가 서울의 야경을 본다고 진짜 서울을 알 수 없습니다. 서울의 맨 얼굴은 거리입니

 

다. 아케이드죠. 그리고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보는 상상력도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죠. 예컨대

 

이 책의 주인공 구보는 63빌딩을 한강을 굽어보는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서울의 여신으로 해석하고, 대

 

형 쇼핑몰이 입점해 소비 공간으로 전락한 서울역을 롯데아울렛역으로 보며,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기둥을 6개월 이상 헬스클럽에서 운동한 근육질의 다리로 새롭게 읽습니다. 공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불

 

변의 조건이 아닙니다. 스스로 새롭게 상상해 창조하는 우리 삶의 토대입니다. 공간은 실존의 근거입니

 

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을 사랑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24203)

 

 

 

저자는 서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의 '도시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 것도 아니었

 

다. '공간'을 통해 '인간'을, 그리고 '인간의 실존'을 이야기하려 한 것이고, 공간의 소재로 '서울'을, 인간

 

소재로 '나'를 택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서울'과 '나'를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개인적일수록 좋다. 저

 

자는 구체적 사례를 보주려 한 것이지 일반적 공식을 도출시켜주려 한 것이 아니다. 존과 자기애를

 

말하는 인문학 도서인데 수도 울을 말하는 사회과학 도서로 읽어놓고 이러저러 불평을 늘어 놓니.

 

오독도 이런 오독이 없다. 부끄럽고 민했다. 화끈거리는 낯을 달래며 독서 중 끄적인 메모들의 맨 마지

 

막 줄을 보니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 책을 쓰기 위해 실제로 서울을 걸어 다니며 생각을 갈무리하고 추억을 되씹었던 저자의 경험과

 

 삶의 방식이 부러웠을 뿐 그 결과물인 이 책에는 큰 흥미를 못 느끼겠다.

 

 

 

그 부러운 게 핵심이었다고, 이 멍청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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