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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본 속임수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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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사람에게 추천을 하는 글이니 부끄럽지만 자기고백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나는 과학 도서를 거의 읽지 않는다. 화제가 되는 베스트셀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과학 도서를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쓴 과학 도서 독후감이다. 새 독자층을 과학 도서로 유입시키려는 편집자에게는 소소한 지침이, 이제야 과학 도서를 좀 읽어 보려는 동지들에게는 나만 답답한 게 아닌가봐, 라는 동병상련의 위로가 될 수 있겠지마는, 기왕에 과학 도서들을 섭렵해 왔던 독자들에게는 거의 쓸모 없는 글일 수 있다. 감안해 주시라.

 

 

2.

 

이 책은 진화생물학자인 저자가 '자기 기만'이라는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탐구하고 현실 세계에 적용시켜 그 효용과 명암을 증명해 낸 결과물이다. 책날개의 소개에 의하면 저자의 최신작이라 하니, 오랜 시간의 공력이 활용된 유의미한 저작이라 하겠다.

 

그런데 읽고 난 뒤의 나는, 모르겠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들었다. '살아 있는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라 하고, 유명 번역자가 그의 이름을 보고는 '내용을 보지도 않고 하겠다'고 했다 하며, 리처드 도킨스가 적극 추천한다고까지 하니, 내용에 가 닿지 못한 것은 오롯하게 내 집중력과 지성의 한계 탓일 것이라는 자책의 심정도 금할 수 없었다. 14장에 달하는 전체의 내용을 한 차례 브리핑하는 1장을 다시 읽어 봐도, 독서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읽은 내용이고 또한 방금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읽어 왔던 내용의 요약인데, 전혀 새로운 글처럼 보인다. 책장을 덮고 'The fooly of fools'라는 원제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의 추락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3.

 

그래서 나는, 일단 '왜 몰랐을까'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어려웠는지, 어느 부분에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는지, 어느 부분이 불만이었는지 등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나면 재차 독서할 때나 앞으로의 과학 도서 독서에 분명 변화가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눈에 걸렸던 것은 이따금 등장하는 번역투의 문장이었다. 속속들이 등장하는 과학 개념어들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채, 그러니까 당연히 텍스트의 맥락도 다 잡지 못한 채 번역투의 낯선 문장을 만나게 되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즉각적인 추측이 무척 어렵고, 그렇게 멈칫하는 잠깐의 사이에도 흥미는 급격하게 식곤 했다.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왜 의식적으로 거짓을 만들어내기 위해 받아들인 정보를 수정할까?'라는 문장을 보자. 맥락을 한 손에 쥐지 못한 채로 이 문장을 접하면, '의식적으로'가 '만들어내다'에 걸리는지, '받아들다'에 걸리는지, '수정하다'에 걸리는지를 고민하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어떤 동사를 수식하는지에 따라 문장의 함의는 꽤 현격한 차이를 갖는다. 각각의 뜻을 추론하고 원래의 맥락과 짜맞추어 보아 어떤 것이 맞는 것이었는지를 골라내는 과정은, 저자나 책, 혹은 설명하고 있는 개념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다면 즐거운 게임이 되겠지만, 단순한 지적 호기심 정도로 접근하는 이에게는 하나의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로 눈에 걸렸던 것은 논거로 취하는 사례의 광대한 폭이었다. 저자가 언급하는 바와 같이, 기만은 은밀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관찰하고 탐구하기 매우 어려우며, 그 중에서도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채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은 그 실재와 효용을 증명해 내는 데 있어 더욱 엄밀한 과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이미 이름난 실험과 이론 등을 통해 논리를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그저 하나의 주장을 다른 주장의 근거로 삼고 그것을 또 다시 다른 주장의 근거로 삼는 진행도 눈에 띄며, 자세한 제반 설명이 동반되지 않은 본인의 특수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논증을 펴는 시도도 보인다. 저자 스스로 '과학적으로 확정적인 것'과 '도발적이지만 확실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고 하였으며, 또한 내용 중 일부가 틀리더라도 곧 수정되어 '더 심오한 자기기만의 과학으로 발전할' 것이라 선언함으로써 비판적 독해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지만, '틀릴 각오가 되어 있다'와 '틀려도 관계 없다' 사이에는 분명 유의미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엄밀함에 빠져 큰 줄기를 잡지 못하는 것도 학자에게는 경계할 바이나 과감하며 논쟁적인 주장일수록 그 근거는 될 수 있는 한 객관적인 편이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세번째로 눈에 걸렸던 것은 낯선 목차 구성이었다. 이것은 특히 서양의 과학 도서에서 흔히 보이는 구성인데, 소챕터, 그러니까 '1장'이나 '2장' 안에 포함되어 있는 작은 챕터들 간의 상관관계가 일정하지 않다. 어떤 때에는 갑작스레 새로운 주장이 시작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하나의 예시를 따로 챕터로 분리하기도 하는데, 배치의 의도를 추측하여 다시 맥락을 잡는 데에도 꽤나 수고가 들어간다. 권두의 '차례'에 소챕터가 함께 기재되어 있었더라면 일단 일람하면서 흐름을 잡은 뒤 독서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차례'에는 총 14개의 큰 챕터의 제목과 해당하는 장의 본문 중 인상적인 부분이 서너 줄 가량 인용되어 있을 뿐이다. 각각의 등위를 따져 다시 배치해 주면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겠다는 것은 고루한 독서법에서 나오는 불퉁거림인 것일까?

 

네번째로 눈에 걸렸던 것은 주된 테마인 '자기기만'의 적용 범위였다. 이 책은 총 14장 중 7장까지는 이론을 설명하고 8장부터는 실제 사례에 적용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상 위의 글자들로 끝나지 않도록 현실 세계의 다종한 면에 적용을 시도하는 것은 이 책의 뛰어난 미덕이다. 그러나 그 범위와 방법은 앞서 이론 파트에서 설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분야에 한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가 7장까지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특별한 변수를 갖지 않는 생물들과 인간이 자신과의 관계, 혹은 가족, 배우자와 같은 가까운 관계에서 어떻게 자기 기만을 저지르는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 사례'를 취하기 위해 저자가 택한 필드에는 항공 우주 재난, 역사 기술, 전쟁, 종교, 사회과학 등과 같이 특정 개인의 정서 만으로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안에는 유의미한 해석이 분명 존재하며, 한 명의 학자와 한 권의 책이 모든 시각에서의 성찰을 보여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이론의 틀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을 경계하지 말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4.

 

위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셨겠지만, 내가 지적한 내용의 대부분은 사실 과학 도서 독서계의 뱁새가 토하는 투정에 가깝다. 편린적 이해로도 저자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한 동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른 뱁새 동지들에게는 위와 같은 지엽적 불만들이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나도 또한 곁에 두고 익숙해질 때까지 때때로 꺼내어 걸음마의 동반자로 삼고자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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