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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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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분주히 재잘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홀로'라는 '1'의 상태에서 금방이라도 '無'로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침대에 혼자 드러누워서는 느낄 수 없는 '0'의 존재성은 군중 속에서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관계망 속에 혼자 부유하고 있는 듯한 투명함을 즐긴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나만의 투명인간 놀이인 셈이다. 내가 투명인간이 되기를 자처하여,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게 된 이유는 오히려 투명해지지않기 위해서였다. 사람들과 섞이어 떠들다보면 때론 내 주장과 다른 이들의 말에 동조해야하거나, 뜻하지않은 기대나 오해가 입힌 가면에 진짜 '나'는 사라지고, 그들이 만들어낸 페르소나만 남게된다. 군중 속의 고독은 나의 진짜 영혼을 느끼게 해주곤 한다.

 

 만수는 역시 제 스스로 투명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 방향이 나의 존재성을 지키기 위함인지, 나의 존재성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함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흑과 백, 둘 중 하나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도망쳐 투명을 택한 이와 달리 만수는 흑과 백 사이를 오로지 '가족의 생존'을 향해 넘나들다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다. 만수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큰 것 말고 뚜렷한 개성이 없던 자식이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다른 형제들과 달리 어수룩하고 누이를 따라 나물 캐기를 좋아하던 만수에게 다들 커다란 기대나 몫을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고엽제'에 집을 책임지던 맏형 '백수'가 죽고 만수는 얼떨결에 집의 장남이 되어버린다. 그나마 보살핌을 주던 큰누나마저 시집을 가버리고, 만수는 완벽히 자기 아래 두 동생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이 된다. 존재감이 없던 만수에게 점점 짙고 무거운 책임의 그림자가 앉게 된다. 만수는 묵묵하고 미련할만큼 그 책임을 완수해내고자 노력한다. 타고난 재능이 없는 만수는 그저 '노력'만 할 뿐이다. 특별한 자신의 색깔도 주장도 없는 만수는 오히려 그 '투명성'을 특기로 물처럼 모든 사람들 사이를 넘나들고 아우르며 사회생활을 한다. 만수는 열심히 돈을 번다. 가족을 위해,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간다.

 

 만수는 그렇게 투명인간이 되었다. 좌파나 우파. 어떤 정치적 분파에도 가담하지않고 오로지 가족들만 생각하는 무식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모두를 아우르고 챙겨가며 가족과 동료에게 '염치'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때로는 떠안지않아도 될 책임까지 모두 떠안고 희생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살지않는다. 그가 꾸는 꿈에는 가족의 안녕만 있을 뿐, 만수의 세상 속에 자신의 정체성은 이미 오래전에 '투명'해졌다. 그리고 권력 아래 그는 투명인간과 같이 없는 사람처럼 무시당하는 노동자 계급에 속해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 중에서도 꽤 고위 관직을 맡고 있는 그는, 권력에 아부하면서도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깔보지 않았던, 흑과 백 모두에 속하지 않으며, 결국 모두에 속하고 말았던 '투명인간'이다. 그리고 만수는 정말로, 투명인간이 되었다. 

 

 상징적인 투명인간이 진짜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다. 향토적이고 현실적인 묘사로 유려하게 흘러가던 전개가 갑자기 끼익, 마찰음을 내며 뜬금없어지는 대목이다. 만수가 살아온 삶을 가슴 속으로 애잔하게 바라보던 독자들은 갑자기 진짜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앞에서 의아해진다. 거기다 투명인간이 된 사람은 만수만이 아니다. 태석도 석수도 명희도 만수의 아내도 투명인간이 되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진짜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사람들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태석은 부모의 버림, 같은 반 아이들의 끔찍한 괴롭힘, 선생님의 무관심과 폭력. 썩어빠진 학교. 어떤 울타리 안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안정하지 못했고, 결국 제 몸을 불태워버리듯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다. 석수는 고문 속에서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강제적으로 개조당하면서 만수의 세상 속에서 행방불명이 되어버렸고, 만수의 아내는 태석의 빗나간 반항심과 벽에 똥칠하며 저를 비웃어대는 시누이, 끝없는 노동과 가난 속에서 제 삶을 잃어버렸으며, 명희는 가스 중독으로 바보가 되어 넋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었다. 상징적인 투명인간과 '진짜 투명인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투명인간' 만수는 죽었다. 아니, 살해당했다.  뻑- 몸통을 날릴만큼 금속성의 자동차가 강한 속력으로 걷어차도, 꽥- 소리 한 번, 핏물 한 번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투명인간이기 때문에, 그와 동시에 너무도 사소한 소시민(小市民)이었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 살기 위해 투명인간이 되었던, 만수. 이세상의 모든 만수. 이세상의 모든 투명인간은 그렇게, 아무렇지않게 세상의 폭력에 사라지고 있다. 투명인간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두 눈을 뜰 생각조차하지않고 주먹을 휘두르기 때문이 아닐까. 투명인간도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그들은 일부러 간과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끔 사람들은 '투명인간이 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빈다. 이제 나는 그 천진난만한 바람앞에 무거운 상징을 얻게 되었다. 투명인간은 이제 SF공상과학 소설에나 등장하는 환상이 아니다. 지금 내 주위에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슬픔이 공허함만큼이나 무겁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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